[스페셜1]
장국영(張國榮) 세대에게 바친다 (1956.9.12∼2003.4.1) [3]
2003-04-1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더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았던

언제부터인가 장국영은 “이젠 느긋하다. 이루고 싶은 건 많지만, 당위나 강요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만 하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돈과 명예를 모두 얻은 그는 더이상 인형 같은 아이돌 가수나 덜 자란 풋내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성 정체성을 의심받았던 그에게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장국영은 <패왕별희> <해피 투게더>로 위태롭게 뛰어올랐다. 장국영이 자신과의 러브신을 눈앞에 두고 이틀 동안 침대에 파묻혀 괴로워하던 양조위에게 건넨 위로는 잘 알려져 있다. “이봐, 이건 연기야. 내가 그동안 정말 좋아서 여자들하고 키스하고 가슴을 만졌는 줄 알아? 그리고 넌 내 취향이 아니라고.”

짓이겨진 두손을 붕대로 싸매고 밥 먹여줘, 담배 사다줘, 조르는 야멸찬 남자. 그래도 차가운 타일 바닥 위로 연인을 이끌며 탱고를 추고 싶어해서 안쓰럽기만 한 남자 보영. 이 남자의 이야기를 끝으로 장국영은 홍콩을 제외한 나라의 관객에게 잊혀졌다. 그러나 장국영 자신만은 스스로를 기억했다. 더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았던 그는 감독이 되려 했고, 애인이든 친구든 상관없이 당학덕과 함께 살고자 했다. 장 폴 고티에의 크로스오버 의상을 입고 긴 머리를 붙인 2000년 세계순회콘서트 ‘Passion’은 그 거리낌없는 욕망이 가장 충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이벤트였다. 팔랑거리는 짧고 하얀 치마, 그 아래로 소녀처럼 뻗어나와 장난치던 두 다리, 이브닝 드레스처럼 유혹적인 곡선을 그리는 은색 가운, 틀어올린 머리, 깃털이 날리는 천사의 날개. 장국영은 홍콩 언론을 경악시킨 콘서트 ‘Passion’을 진행하면서 <나>(我)를 주제곡으로 택했다. 유명한 나르시시스트였던 장국영은 끊임없이 “이 옷 괜찮아 보여?”라고 친구들에게 묻곤 했다지만, <나>는 겉치레가 아니었다. 그는 싱가포르 콘서트 도중 한 남자 관객을 향해 <금지옥엽>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이라고 외쳤다. 그의 마지막 용기였고, 열정이었다.

지금은 나한테 아무 일도 없군.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을 때, 누군가 날 터널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난 도망치고 싶었고 신호를 보내고 싶었어. 꿈결에 울려퍼지는 한마디, 연인의 눈물. 다시 깊은 잠을 청하면 많은 이들이 보내준 장난감들이 꿈속을 누비며 성벽을 만들어줘. 14일, 15일, 16일…남아서 뭘 하고 싶은 거야? - <밤이면 나타나는 꿈 夜有多夢>

“나도 이젠 늙어가나보다.” 장국영은 마지막 영화 <이도공간> 홍보를 위한 인터뷰 도중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조금 침울했다지만, 보고 싶었다. 홀로 시간의 고삐를 잡은 듯했던 그가 늙어가기 시작하면, 스무살 언저리에 밀봉해두었던 시간도 함께 흐르기 시작할 것 같았으므로. 그러나 장국영은 늙어가려는 그 순간 느닷없이 죽어버렸다. 이제 중요한 건 그가 왜 죽었을까, 라는 질문이 아니라 그가 없다, 는 엄연한 사실뿐이다. 우울증이나 삼각관계를 논하는 추악한 보도가 홍콩을 뒤덮으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도 목숨을 끊은 장국영은 생전에 “내 열정과 선의만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선의는 남겠지만, 그 얼굴은 보내야 할 것 같다. 살아가고 늙어가야 하는 남은 이들에게 장국영은 다시 붙잡지 못할 한 시절을 한숨으로 돌이키게 할 테니까. 그가 묻히고 나면 우리의 청춘도 끝난 것이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천녀유혼>

<상해탄>

장국영 주변인들이 말하는, 그는 이런 사람

“나를 이끌고 가르쳤다” - 막문위(가수 겸 배우)

♣ 내가 공연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준 사람이다. 신인이 장국영 같은 스타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할 기회는 많지 않은데, 그는 기꺼이 나를 불러줬다. 지금도 그는 나를 이끌고 가르친다. 콘서트가 좋지 않으면 꾸짖기도 하고.

“누구든 사로잡는 눈동자” - 매염방(가수 겸 배우)

♣ 영화에서 장국영이 내 연인을 연기하면 난 정말 그를 좋아하게 된다. 장국영의 눈동자가 가진 매력은 대단한 것이다. 물론, 촬영이 끝나면 그는 오빠 같은 친구로 돌아와 “밤 늦게까지 놀면 안 돼”라고 나를 타이르곤 한다.

“항상 완벽하고 싶어했다” - 이인항(<성월동화> 감독)

♣ 항상 완벽하고 싶어하는 장국영은 <성월동화>를 찍을 때 그림자만 나오는 부분까지도 직접 연기했다. 촬영이 끝나면 “내 연기가 만족스러웠나”라고 불안하게 묻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좋은 사람이다.

“한번 좋으면 끝까지 간다” - 장지량(<유성어> 감독)

♣ 장국영은 감정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한번 좋다고 느끼면 득실을 따지지 않고 끝까지 정열을 다한다. 그런 스타가 <유성어> 같은 저예산영화에 러닝 개런티만 받기로 약속하고 출연한 건 후배들에게 큰 모범이 될 것이다. <유성어>에 출연한 아역배우는 영화 출연이 처음이어서 장국영이 없으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는데, 장국영은 촬영이 없는 날에도 나와 아이가 연기하도록 도와주었다.

“어린아이 같고 지나치게 솔직한” - 진숙분(Fun Entertainment 대표·매니저)

♣ 어린아이 같다. 신인 시절 어느 가요상 시상식 제작팀이 내게 장국영이 상을 탈 거라고 말해줬다. 그건 신인가수가 당황해하는 표정을 잡으려는 속임수였는데, 나는 그대로 믿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공연을 위해 조명이 꺼지자 그가 울기 시작했다. 지금은 성숙했지만, 어린아이 같고 지나치게 솔직한 면은 여전하다.

“시대의 아픔을 가진 어린양” - 첸카이거(감독)

♣ 데이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그는 어머니 대신 찾은 사랑을 모두 놓친다. 장국영은 상실감에 젖은 데이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를 보면 그 시대의 아픔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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