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의 힘,배종옥
그는 참 ‘쫑옥쫑옥’하게 말한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런 표현은 배종옥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만한 것일 테다. 빠른 속도의 하이톤의 목소리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소화도 잘되게 꼭꼭 씹어서 이야기하는 그의 말투에는 가식적인 따뜻함도, 의도적인 예의바름도, 배타적 차가움도 없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질투는 나의 힘>의 첫 상영에 앞서 만난 배종옥은 무척이나 들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촬영 내내 “혹시 지루하진 않을까?” 고민했던 이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의 그 ‘쫑옥쫑옥’한 말투의 톤을 한 옥타브쯤 올린 상태로 “빨리 개봉했으면 좋겠어요”라며 하루빨리 이 자랑스런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반년이 지난 봄, 개봉을 앞두고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는 지난해 가을보다는 조금 지쳐 보였다. 미니시리즈 찍듯 찍고 있는 아침드라마의 빡빡한 촬영일정에, 예전 영화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와의 인터뷰와 사진촬영이 지난 몇 주간의 피로의 이유였을 것이다. 아마 지난 겨울, 어머니를 다른 세상으로 보낸 뒤의 마음고생도 있었으리라.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하고 훌러덩훌러덩 아무 데서나 옷을 벗어던지는 골초 아가씨, 세상에 어떤 것에도 큰 미련을 두지 않고 부유하는 <질투는 나의 힘>의 성연은 사실, 자연인 배종옥과는 대한민국과 남미 사이의 각도만큼 벌어진 존재다. “원래 나란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계획없이 사는 걸 싫어했거든요. 공인으로 살아온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스스로 제한도 많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성연을 연기하고 나서는 좀 달라졌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졌달까? 여유가 생겼달까?” 배종옥은 그런 변화의 은인으로 박찬옥 감독을 꼽았다. “박찬옥 감독이 하루는 ‘종옥씨 한 2, 3일만 세수 안 하고 살아봐’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해봤죠, 음… 그렇게 사는 삶도 괜찮던데요.” (웃음) 그렇게 ‘성연’이란 옷은 배종옥의 몸에 맞는 치수로 변해갔다.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해오면서 인물을 자꾸 유형화하려던 습관도 바뀌었다. “드라마 연기를 할 때는 많이 분석하고 계산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번 영화 찍으면서는 연기적 계산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저 수용하리라… 받아들이리라…, 그래서 정말 새로운 작업이었어요. 아, 그리고 담배 배우는 재미도 쏠쏠했구요.” (웃음)
사실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이 당신이 성연 역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왔을 때 그는 “이렇게 작고 가녀린 사람이 험난한 바닥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그러나 이내 “부드러움이 얼마나 강한가 ” 하는 깨달음을 그로부터 얻었다. 그가 생각한 성연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여자”였다. 어떤 역할을 대할 때나 “이 사람은 무슨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성연은 아직 그 꿈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공황상태죠. 그런 공황은 젊을 때만 찾아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30대에도, 40대에도 삶의 순간순간 늘 찾아오는 거죠.” 그래, 이제 그도 그런 공황을 몇번쯤 겪었을 나이가 되었구나.
‘푸른 해바라기’ 같던 귀엽고 철없는 아가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깊은 슬픔’도 ‘거짓말’ 같은 ‘바보 같은 사랑’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 예전엔 돌멩이 하나에도 큰 물결을 만들어낼 작은 연못이었겠지만, 이제는 망망한 푸른 바다의 품으로 스크린을, 브라운관을 품는다. 난류가 한류가 섞여 굽이쳐도 결코 미지근해지지 않을, 홍조와 녹조가 덮쳐온다 해도 결코 푸른 빛을 잃지 않을.
흐르는 강물처럼,박해일
촬영용으로 차려입은 흰 드레스 정장만 아니었다면, 그는 스튜디오 안 어디에 있어도 자신을 눈에 안 띄도록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발소리 없이 자리를 옮기고 목소리를 쉽게 들려주지 않으면서, 저는 저대로 적응해볼 테니 제 주변은 주변대로 돌아가라는 듯. <질투는 나의 힘>에서 여인들과 부대끼는 원상보다 혼자서 방 청소하는 원상이 더 편해 보였던 것처럼, 박해일은 공적이고 외적인 공간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뒤 텅 빈 집에 돌아와 거실 불을 켜는 순간 재충전이 시작되는, 혼자 있어야 살 기력을 얻는 사람인 듯하다.
영화에서 원상은 몇 가지 선택을 한다. 소유할 수 없는 연인 대신 자신을 따르는 여인을 안아보기로, 그 상처를 책임지지 않기로, 그리고 연인을 앗아간 남자의 신세를 당분간 지기로. 그런 선택을 충분히 공감했느냐고 물었다. 본인의 선택인 것처럼. 그러자 그는, 처음엔 그도 자신과 비슷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이해가 안 가더라고 한다. “감독님의 주변 사람들 얘기도 듣고 내 주변 사람들도 떠올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감독님이 원상에 대한 살을 더 붙여주시고….” 그렇게 질문하면서 그는 원상과의 타협점을 찾았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저런 선택을 할 수도 있구나, 라는 단 한줄의 수긍을 위해.
<국화꽃향기>의 인하도, 그래서 그에게 어려웠던 인물이었다. 원상만큼이나 박해일의 본질에 가까워 보였던 인하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렇게 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그럴 수 있으세요? ”라고 반문한다. 아마도, 그는 어떤 극중 인물을 맡아도, 그렇게 수없이 질문을 되풀이할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
흰 바탕에 파란 꽃무늬 셔츠로 갈아입은 그때까지도, 그는 언제고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스튜디오 안에 자기를 내려놓고 있지 않는 듯했다. (문)“그 옷 편하세요?” (답)“왜요? 안 어울려요?” 화려한 옷은 시선을 끌게 돼 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들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혹시나 그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피곤하기만 한 건 아닐까? “해야 되는 거라면 그래도 다 해요.” 그건 맞다. 인터뷰가 썩 편한 표정이 아닌데도 대답은 분명하고, 제 취향도 아닌 옷을 입고 “아니요, 좋은데”라며 자연스럽게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다. 느린 호흡을 타고 끊어지듯 이어지게 말을 완성해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몇 문장 좌악 지른다.
쉽게 감 잡히지 않는 그가,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1년에 한번씩은 연극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연극과 영화가 주는 매력이 달라서 지금은 둘 다 할 생각이라는데 그가 덧붙인 말은 너무 뜻밖이다. “왠지 연극 무대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긴 해요. 아무래도 저는 영화가 오래도록 필요로 할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이건 막 스타덤에 오른 젊은 배우가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인데, 그는 태연하다. 박해일에게 스타덤은 어색한 옷이다. 그는 어색한 옷을 입고 서성이고 있는 자신을 회의하고 연민하는 사람이다. 결국 어느 곳에도 자기를 내려놓지 않고 부유할 것이다. 연기하는 바로 그 순간만 제외하고. 그의 말과 달리, 영화가 그를 오래도록 필요로 한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