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린 미국, 할리우드와 TV는 어떻게 광기를 실어나르나
최근에 연달아 개봉한 <미녀 삼총사> <헐크> <컨페션>, 그리고 올해 초에 선보였던 <캐치 미 이프 유 캔>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섹시한 언니들을 내세워 소프트포르노의 쾌락을 노린 <미녀 삼총사>,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위반하면서까지 초록 괴물의 슬픔에 집착한 <헐크>, 미디어와 정치의 착란상을 요지경 속으로 묶어낸 <컨페션>, 유려한 솜씨를 가진 사기꾼이 날 잡아보라며 활개치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미국영화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외견상 아무런 닮은 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한석 기자는 이들이 ’미국’영화라는 바로 그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네편의 영화가 TV시리즈나 TV쇼를 통해 먼저 유명해진 다음 영화화됐거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대중문화 상품의 대대적인 인기는 그 사회의 집단 심리나 증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편의 영화는 상이한 소재, 상이한 스타일에 불구하고 한결같이 미국인의 내면에 관해 고백한다. 놀랍게도 그들이 그려내는 자화상은 분열증 환자다.
TV에 나와서 미친 척하고 ‘리얼리티 쇼’를 벌이던 척 배리스는 자신이 CIA 요원으로 3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고 고백한다(<컨페션>). 이같은 미디어와 정치의 광란을, 정한석 기자는 냉전시대 미국의 의인화라고 지적한다. <미녀 삼총사>의 세 미녀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보는 영화 속 남자/영화 밖 관객이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강하고 섹시하다’는 이미지는 미국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긍정주의적 환영에 다름 아니다. 10대 사기꾼이 흉내내는 것들은 또 무엇인가(<캐치 미 이프 유 캔>)? 그 소년을 ‘캐치’하는 것은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인지 알 수 없는 미국 시스템을 붙잡는 것이다. <헐크>를 만든 리안 감독은 미국적 히어로를 통해 미국의 슬픔을 우두커니, 그러나 예리하게 들여다보는 이방인이다.
TV에서 흘러나와 영화로 들어온 이들 네편의 영화는 미국사회에 넘실대는 분열증을 이러저리 실어나르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우리는 미쳐가고 있다. 어쩔래?
마이클 무어가 바라보는 미국은 ‘미쳐버린’ 미국이다. 한때, 마이클 무어는 그런 미국을 (1994년부터 1995년까지 1회 60분 분량으로 에서 방영되었다)이라고 불렀고, 흑인 연기자와 함께 거리로 나가 뉴욕의 택시는 정말 흑인 승객의 승차를 거부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말하자면, 이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텔레비전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과 미국이 곧 텔레비전 국가라는 사실. 무엇보다도 그의 장기는 논쟁과 육탄전이지만, 숨은 효력은 연출과 조작에서 온다. 그는 ‘미국이 얼마나 미쳤는지’를 말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상황을 연출하고, 또 조작한다. 쇼를 한다! 이것이 마이클 무어가 미국의 관객을 사로잡은 전략이다. 현재 미국에서 그보다 더 쇼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사기와 조작을 동원하여 쇼를 보여주고, 거기에 시선을 꽂고 웃고 있는 미국의 대중에게, 미국이 앓고 있는 분열증을 고스란히 되돌려 보여준다. 대중이 욕망하는 모습에 가장 가까이 갔을 때, 그 친근함으로 그들을 사로잡을 때, 숨겨진 분열의 증상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텔레비전은 영화보다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요즘 할리우드가 과거의 텔레비전 프로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현상은, 이미 거기에서 확인된 인기를 재영유해보겠다는 계산에 의해서지만, 그건 자연스럽게 그 안에 있던 어떤 증상까지도 같이 실어나르는 결과를 갖는다. 할리우드가 ‘과거의 텔레비전’ 문화를 끌어들이면서 대중의 욕망을 사로잡으려 하는 순간, 그것에 묻어 있는 분열증적 증상까지도 휘어들이게 된다. 올해 개봉한(개봉하는) <캐치 미 이프 유 캔> <컨페션> <미녀 삼총사2: 맥시멈 스피드> <헐크>는 모두 과거의 텔레비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거나, 그 소재이거나, 주인공들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분열증적 증상들에 관한 몇 가지 보고서는 위의 영화를 바탕으로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vs 10대의 이상한 분열
스필버그가 믿고 싶은 미국은, 미쳤지만 아름다운 미국이다. 여기에서는 미국을 속이고, 미국의 역사를 속여야만 쇼가 이루어지고, 스타가 탄생할 수 있다. 10대 소년 프랭크 에비그네일 주니어의 실제 사기행각과 그 전기를 영화로 옮긴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원작을 가져오며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바꿔놓았고, FBI 요원과 주인공 프랭크 사이의 관계를 심화했고(실제 프랭크 에버그네일 주니어는 크리스마스에 전화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당대의 대중문화를 투입하여 길 잃은 늑대소년의 변장술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원작에서 종종 끊겨나가는 개연성들은 스필버그가 삽입해넣은 대중문화의 코드들로 다시 이어진다. 스필버그는 생각한 것이다. 10대 사기꾼 소년은 과연 무엇을 보고 흉내를 낼 것인가?
H. 램버트의 코믹북 <The Flash>의 주인공 배리 앨런, 영화 (1965), <Dr. Kildare>(1961년에서 1966년까지 방영된 젊은 인턴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Parry Mason>(1957년에서 1966년까지 방영된 능력좋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은 그런 이유로 쓰여졌다. 때문에, 스필버그는 당당하게 “그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지 프랭크 에버그네일의 자서전을 쓰려는 건 아니었다”고 못박는다. 사실이다. 오히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플레이하우스90>(1956년에서 1961년까지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 같다”고 말하거나, “TV 라이브 쇼 같다”고 비유한다. 10대의 사기꾼은 텔레비전을 모방하여 미국의 시스템에 구멍을 내고, 또 그 이유로 텔레비전 스타로 인기를 얻는다. 오스카를 타고 싶을 때면 여지없이 역사를 끌고 들어오는 스필버그- <아미스타드> <칼라 퍼플>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가 그 역사를 외면하면서 넓힌 영화적인 풍성함은 ‘60년대의 순수’를 자극한다. 그러나 역사를 지우고 만든 복고적인 60년대의 아름다움은 지구상 한쪽에 ‘베트남이 없었던 척’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오프닝으로 등장하는 쇼. 당대 최고의 가짜를 데려다놓고, 이 셋 중 누가 진짜 프랭크 에비그네일 주니어냐고 묻는 이상한 분열의 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컨페션> vs 냉전 시대의 기괴한 TV 프로듀서
조지 클루니가 엮어내는 미국은 인물을 미치게 하는 미국이다. 우선, <컨페션>은 아주 사적인 설정인 것처럼 보인다. 감독 조지 클루니는 말한다. “<컨페션>은 어느 날 깨어난 한 남자가 그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어느 것 하나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후미진 모텔 방에 벌거벗은 남자가 서 있고, 보이스 오버가 들려온다. “젊음은 곧 무한한 잠재력. 거칠게 없다. 까짓 아인슈타인 못 되란 법 있나. 근데 나이를 먹으면서 죄다 물 건너간다. 아인슈타인은커녕 개뿔도 못 되니.” 한 인간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평범함에 대한 탄식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감독으로서 말하고 싶은 영화적인 욕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탄식에 앞서 들려오는 텔레비전에서의 목소리. “나 로널드 레이건은 미 대통령 직책을 충실히 이행한다….” 1981년이 시작되고 있고, 1970년대가 끝났다. 그 순간 한 남자는 자신의 인생이 끝이라고 말하고 있다.
<컨페션>은 실존인물 척 배리스의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그 믿지 못할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텔레비전 프로듀서였지만, 살인기계 CIA 요원이기도 했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가? 어느 것이 허구이고, 어느 것이 실재인가?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달리 <컨페션>은 그 질문 자체가 관건이고 대답이다. <데이팅게임>(1965∼73), <신혼부부쇼>(1966∼74), <땡쇼>(1976∼80). 텔레비전 역사학자가 “최근 미국 텔레비전 방송 중 가장 기괴한 프로그램”이라고 평하고, 저널리스트들이 “텔레비전을 망치는” 저속한 쇼라고 악평한 그 쇼의 프로듀서가 동시에 냉전의 무대 동유럽을 떠돌며 살인을 일삼던 정부의 대리인이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수많은 대중 앞에서 그들의 유치하고 저속한 노출증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자의 등에 걸쳐져 있는 냉전의 분위기. 말 그대로 <컨페션>에서는 척 배리스의 개인적인 분열의 삶 안으로 미국의 시대적인 분열증이 쏟아져 들어온다(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컨페션>이 그 분열의 결을 묻혀 오는 것은 다름 아닌 척 배리스가 누구보다 대중 가까이 있는 텔레비전 쇼의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방송을 통해 개인적인 인준과 끝없는 섹스, 재정적인 성공을 찾았던 냉전 세대”, 척 배리스의 이야기는 미국 한 시기의 증상을 의인화하여 담아내고 있다.
국내 개봉을 하지는 않았지만, 폴 슈레이더의 <오토 포커스>(2002) 역시 <컨페션>과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주제와 소재를 다뤘다. <오토 포커스>는 가죽 비행사 재킷을 입고 텔레비전 시트콤 <호건스 히어로>(1965∼71)에 출연하여, 전 미국의 호인으로 통했던 배우 밥 크레인의 불운한 생애를 다룬다. 시트콤 <호건스 히어로>는 미국 신디케이션의 녹색 평원의 희망을 유포시켰다. 그러나 영화는 한 모텔 방에서 카메라의 삼각대를 쥐고 살해당하기까지의 그의 행로를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며 고통스럽고, 염세적인 미국에 대한 논문 한편을 완성한다. 밥 크레인은 전 미국의 가족주의자로 통했지만, 결국 섹스에의 독을 매개로 양면적인 삶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한 <호건스 히어로>가 밥 크레인을 인기 정상에 올려준 쇼이지만, 그는 전쟁 캠프 안에 갇혀 있는 죄수를 주인공으로 코믹함을 만드는 그 쇼를 “나치같다”고 경멸했고, 그의 부인은 “홀로코스트 코미디”라고 불렀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