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매치스틱 맨> 미리보기
2003-09-15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블록버스터 대가의 첫 코미디<매치스틱 맨> 뉴욕시사

늦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밤. 미드타운 맨해튼의 로스시어터에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매치스틱 맨> 시사회가 열렸다. 오는 9월12일 미 전역에서, 10월3일엔 국내에서 개봉예정인 이 영화는 <어댑테이션>으로 다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니콜라스 케이지와 최근 개봉된 <컨페션>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샘 록웰, <화이트 올랜더>에서 미셸 파이퍼와 연기 대결을 벌였던 앨리슨 로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그러나 <매치스틱 맨>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최근 몇년간 <글래디에이터>와 <블랙 호크 다운> 등의 블록버스터를 연출해온 리들리 스콧 감독이 폭력장면이 거의 없고 최근 작품들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작은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의 두 작품이 1년6개월가량의 촬영기간을 가졌던 반면, <매치스틱 맨>은 2개월 동안 모든 촬영이 끝났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덧붙인다면 <매치스틱 맨>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첫 코미디영화라는 것.

그래서 그런지 액션 스펙터클을 기대하고 온 관객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 전경들을 담은 도입 부분을 보면서 약간 의아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관객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하는 신경과민 증세의 로이에게 빠져들어간다. 문 손잡이를 반드시 몇번씩 돌려야 하는 등 마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처럼 일상생활을 시작하기 전 의식처럼 치르는 여러 행동들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밖에도 니콜라스 케이지와 샘 록웰, 앨리슨 로먼의 절묘한 연기 호흡도 눈요깃거리다. 리들리 스콧 역시 단순한 장면이라도 액션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다양한 촬영 기법을 도입해 관객의 시선을 경쾌한 리듬을 타듯 절묘하게 조절해 큰 호응을 얻었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정통 코미디

로이(니콜라스 케이지)의 집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완벽해 보인다. 뒤뜰에 있는 수영장에는 푸른 물이 출렁이고, 마루에 깔려 있는 하얀 카펫에는 얼룩 자국을 찾아볼 수 없다. 턴테이블에서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악이 들려오고, 창 밖을 내다보던 로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평온하게 보이던 로이의 표정은 금세 바뀌고 만다. 카펫에서 실오라기가 몇 가닥 나와 있는 것을 보자 그의 한쪽 눈은 발작적으로 깜빡이기 시작한다.

로이는 신경과민의 일종인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라는 병에 걸린 사기꾼이다. 그는 파트너 프랭크(샘 록웰)와 함께 전화판촉을 이용한 사기행각을 벌인다. 승용차나 보석, 해외 여행 등을 미끼로 싸구려 정화기를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어리숙한 소비자들에게 팔아넘기는 것. 이렇게 수백, 수천달러의 돈이 모이고, 로이와 프랭크는 매우 효과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해간다.

이렇게 은퇴해도 좋을 만큼 돈은 모았지만 로이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14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애인은 고사하고 친구도 없다. 이때부터 시작된 신경과민 증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일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마침내 로이는 프랭크가 소개해준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게 된다.

치료로 안정을 찾아갈 무렵 로이는 자신에게 14살 난 딸 안젤라(앨리슨 로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젤라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로이의 정돈된 일상생활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느닷없이 아버지 역할을 떠맡게 된 로이. 그러나 로이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화를 내거나 창피해하기보다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안젤라에게 한두 가지 속임수를 가르쳐주면서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로이와 안젤라의 관계는 수년간 유지해온 로이의 생활방식과 프랭크와의 파트너십까지 위태롭게 한다.

<매치스틱 맨>은 팀워크로 이뤄졌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다보면 신경과민 증세를 연기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도 재미있지만, 프랭크 역의 샘 록웰과 안젤라 역의 앨리슨 로먼의 연기가 더 눈길을 끈다.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우승자로 당첨됐는데, 아직 모르고 있었어요? 이번 기회 놓치면 진짜 후회합니다”라며 능청맞은 목소리로 사기를 치는 샘 록웰의 연기는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그동안 <미녀 삼총사>와 <컨페션> <그린 마일> <세이프 맨> <박스 오브 문라이트> 등에서 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록웰은 이 영화에서도 역시 빠져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존재로 출연한다.

23살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앳된 얼굴의 앨리슨 로먼은 이번 역할을 위해 15살짜리 사촌과 한달 동안 같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짧은 머리를 양쪽으로 질끈 동여매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그녀는 영락없는 10대 소녀. 특히 아버지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은 아무런 대사도 필요없을 정도다.

"리들리가 정말 연출에 응할 줄이야"

리들리 스콧 감독은 <매치스틱 맨>을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정통 코미디로 만들기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극히 제한했다. 각본에서 안젤라가 가짜 총을 쏘는 장면도 삭제했을 정도다. 완벽한 3막 형태로 구성된 이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할리우드식의 현란한 범죄영화가 아니라 사실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구성돼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갖도록 유도했다.

에릭 가르시아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니콜라스와 테드 그리핀 형제가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테드 그리핀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2001년 히트 코미디 <오션스 일레븐>과 누아르드라마 <베스트 레이드 플랜스> 등을 쓴 이다. 그리핀 형제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각본을 보냈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에 응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판이하게 다른 실제 성격을 반영하듯 꼼꼼하고 섬세한 로이와 엉뚱하고 능청맞은 프랭크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시나리오에 옮겨 담아, 영화사나 감독, 배우들이 거의 수정을 하지 않았다는 뒷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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