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태극기 휘날리며> 현장 급습 [2]
2003-10-02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전국 19곳 로케이션, 유랑하듯 촬영한다

“순제작비 140억원. 촬영기간 9개월. 촬영횟수 136회. 군복 1만9천벌, 군화 1천 켤레 제작. 1950년대 의상 4천여벌, 물품 6천여점 제작. 200여구의 시체 제작. 1천여점의 총기, 실제 크기의 탱크 , 장갑차, 증기기관차 제작. 엑스트라 동원 수 2만3천명. 주요 배우 80여명. 전체 스탭 규모 150여명.”(<태극기 휘날리며> 보도자료에서)

제작진의 자평이 아니더라도, <태극기 휘날리며>의 프로덕션 진행은 규모에 비하면 매끄러운 듯 보인다. 대규모 장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날 합천 현장에 상주하는 배우, 스탭만 어림잡아 400명. 많은 날은 촬영장에 800명의 인원이 오간다. 제작부가 17명, 연출부가 9명 등인 것만 봐도 여타 영화의 3배는 족히 됨직한 크기다. 제작진에 따르면, 인건비만 전체 제작비의 1/3 수준인 5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엄청난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규모 군단이 예정된 시간에 고지 점령을 예감할 수 있는 8부 능선을 넘은 데는 촬영, 동시녹음, 소품 등을 2팀제로 운영하는 등 과감한 인력시스템 도입 덕이 컸다.

일례로 <태극기 휘날리며> 현장에는 생소한 직책의 스탭들이 눈에 띈다. 먼저 촬영부 5명, 조명부 8명 외에 그립팀 소속의 스탭들 4명이 그들이다. 레일을 까는 등 카메라를 세팅하고 조명을 이동하는 게 임무다. 효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총기를 전담해서 관리하는 스탭, 배우들의 스케줄을 따로 담당하는 스탭을 둔 것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조감독이나 특수효과 등 현장의 주요 스탭에게 일이 몰릴 경우, 촬영 진행이 더뎌질 것을 예상한 조치다. 장비도 마찬가지. 이성훈 프로듀서는 “<쉬리> 때 스테디캠이 들어온다 하면 하루에 몰아찍느라 실수도 많았다”면서 “촬영시간과 예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력과 장비에 아낌없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숙소 아줌마가 아들처럼 챙겨주니까 견딜 만하긴 한데. 그래도 문명의 혜택을 못 받으니까 그게 좀 갑갑하죠. 서울이 그립기도 하고. 촬영 시작하고 전국을 떠돌았으니까. 매번 험한 산 타고 그랬지만, 지금도 헉헉대는데. 여기 낙동강 싸움만 끝나면 아래 평양 시가전만 남았으니까 남은 체력을 비축해야 해요. 근데 날씨가 추워지는 걸 보니까 한달 전에 벗었던 내복을 다시 입어야 할 것 같네요.”(진태 역 장동건)

“세트는 딱 하루 찍었다. 나머지는 모두 로케이션이다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마이크만 10자루를 들고 다니는데도 자연과 싸워 이기지 못할 때는 죽을 맛이다.” (동시녹음 이태규)

<태극기 휘날리며>는 유랑단이라 할 만하다. 전주를 시작으로 로케이션 장소만 무려 19곳이다. 합천을 비롯하여 경주, 인제, 양구, 순천, 아산, 전주 등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녔다. 이성훈 프로듀서는 촬영 직전 구입한 차량의 주행거리가 1만km였는데, 계기판이 벌써 6만km를 넘어섰다고 덧붙인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뜨듯한 밥 한숟갈 뜨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밤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찢어진 막사에서 차디찬 도시락으로 한끼를 해결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근처에서 수백여명의 제작진의 식사를 맡을 업체가 없어, 도시락은 서울에서 직접 차로 공수해온다. 불어대는 칼바람 앞에서 방금 뜨거운 물을 부은 간이미역국조차 금세 식는다. 그러나 전쟁터와 흡사한 어두컴컴한 막사에서 컬컬한 불만을 듣긴 힘들다. 반찬을 묻더니 외려 상찬이라며, 허기를 달래느라 바쁜 스탭들뿐이다.

“구급차, 구급차!"

“두밀령 전투장면을 찍는데 사고가 났다. 연기내느라 타이어를 태우고 있는데, 우르르하고 주저앉는 소리가 나서 봤더니 크레인이 넘어져 있는 거다. (홍)경표 형이 저 위에서 카메라 잡고 있었고, 동건이가 그 아래 있었는데. 순간 주저앉고 싶었다. 높이는 5m 정도지만, 깔리거나 암반에 부딪히면 그냥 골로 가는 거니까. 누구 하나 갔구나. 30m쯤 달려가는데 구급차 부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프로듀서 이성훈)

7개월 동안의 행군에 부상병도 속출했다. 현장에서 본 스탭과 배우들 중 다리를 절뚝이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합천에서 스탭들이 읍내에 달랑 하나 있는 패스트푸드점만큼이나 문턱이 닳도록 오가는 곳이 한의원이다. 인대가 늘어나는 건 부상 축에도 못 낀다. 그 정도는 하루에 세건은 발생한다는 것이 스탭들의 전언이다. 육박전을 치르다 머리가 깨지거나 화상으로 인한 손마디만큼의 수포를 지녀야 환자 취급을 받는다. 곽경택 감독이 언젠가 “카메라만 잡으면 작두 타는 무당 같다”고 한 홍경표 촬영감독도 하마터면 부상자 리스트에 오를 뻔했다. 좋은 그림 잡겠다고 부실한 지대에 크레인을 세웠다가 사고를 당한 것. 다행히 떨어진 곳이 암반이 아니라 푹신한 흙이라 변고는 없었다.

그러나 용한 점집 찾아다니듯 험한 고지대만을 찾아다니며 폭파를 밥먹듯이(?) 해 온 제작진은 현장 사고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이번 영화에 쓰이는 폭약만 6t. 여기에 실제 대검을 장착한 육탄전까지 벌어진다. 특수효과 유영일 팀장은 “이제는 다들 전문가가 되어서 스탭들이나 보조출연자 중에 직접 땅을 파서 폭약을 묻을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고 말한다. 9월22일 밤 촬영 분량은 폭파신 장면. 불과 2시간 만에 준비를 끝낼 만큼 놀라운 숙련도를 보여줬지만,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제규 감독과 유영일 팀장은 스탭과 배우들에게 안전을 연신 강조한다.

“대구에 가끔 옷 사러가면 다들 물어봐. 산에서 내려왔냐고. 새카맣거든. 그래도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여기가 사는 맛이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넘어가거든. 그때마다 살아내고 있구나 느껴.”(촬영감독 홍경표)

비단 홍경표 촬영감독뿐일까. 감독부터 보조출연자까지 똑같이 감내해온 지난 200일간의 합숙생활. 앞으로 한달간의 촬영이 남아 있지만, 그들은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원했기에 악천후를 넘고, 그들은 제 길을 간다. 담금질을 거쳐 한편의 영화가 제련되는 내년 설까지. 그때쯤이면 앞뒤 꽉 막힌 귀향행렬 속에서도 그들은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곱씹을 것이다. 지난 1년의 고통스런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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