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죽기 아니면 죽는 거다,무술감독 정두홍 [2]
2003-10-02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액션스쿨의 비전

-액션스쿨이 없어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무술감독과 배우로 활동할 수 있지 않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내 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애초 액션스쿨을 만들 때도 친한 사람들이 다 반대했다. 고생만 할 거라고. 그래도 만들었던 이유는 액션배우를 키우고, 그들에게 운동할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내 몸뚱이 하나로 일군 집인데 그게 없어지면 노숙자 아닌가.

-파주로 옮긴 뒤엔 액션스쿨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현재 수련생을 빼고나면 30명 정도 되는데, 몇명을 더 정리하고 간소하게 움직일 생각이다. 워낙 부상도 많이 당하고 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해서 인력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나선 좀더 전문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그동안은 액션을 하고 싶은 사람을 받아서 해왔는데 한계가 있다. 6개월 정도의 철저한 과정을 만들어 이를 통과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시스템을 만들 거다. 와이어 액션장면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생각이다. 그렇게 틀을 잡아서 전통을 세우려 한다.

-시네마서비스 소유의 아트서비스 스튜디오가 있는데, 뭔가 연계하는 방안도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한 10년 뒤에는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워터월드> 쇼와 유사한 형태의 스턴트 쇼를 만들어보고 싶다. 일반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스턴트맨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이젠 스턴트맨으로선 서서히 한계를 느끼지 않나.

=아직은 아니다. 물론 스턴트맨에겐 정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년이란 몸의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스턴트맨의 정년은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하고 싱싱한 마인드를 따라잡는 바로 그때를 의미한다. 그리고 몸관리를 위해 술과 담배, 커피까지 피하고 있다.

-술은 꽤 좋아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지난해 12월, 뜻한 바가 있어 술을 끊고 한 방울도 안 마셨다. 이번에 강 감독님에게 액션스쿨에 관해 조르기 위해 10개월 만에 처음 술을 마셨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이건 쪽 팔려서 말 안했던 건데…. 지난해 12월 <올인> 촬영을 위해 미국 LA에 들렀을 때,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술을 엄청 마셨다. 그런데 시비가 붙었다. 미국사람과 싸움이 시작됐는데, 엄청 두들겨 맞았다. 처음엔 1대1이었는데, 나중엔 떼로 몰려와 마구 때리더라. 기절했을 정도다. 깨고 나서 엄청난 수치심에 시달렸다. 그렇게 맞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니까. 씩씩거리며 그놈들을 찾는다고 식당이란 식당을 다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들이 내게 깨달음을 준 거라고. 그 이후에 ‘내가 3년 동안 술을 마시면 개새끼다’라고 다짐했는데, 결국엔 개새끼 됐다. (웃음)

나는 독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남자가 그렇게 살긴 쉽지 않은데.

=자연 친한 사람들과도 자주 안 만나게 되고, 연락도 피하게 되더라.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운동과 일에만 집중하게 됐다.

-참 독한 것 같다.

=나는 독해야 한다. 돈도 백도 없고 내가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뿐 아닌가. 흔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아니다. 수도 없이 까무러쳐 봤다. 내 신조는 ‘죽기 아니면 죽는 것’이다.

-이후에 많이 달라졌나.

=담배 끊은 지는 2년, 커피 끊은 지도 10개월이 넘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다. 꽤 바쁜데도 끈기와 지구력이 훨씬 늘었다. <실미도> 현장에서 3, 4일 연속으로 술을 먹으니까 삭신이 쑤셔서 걸어다니지도 못하겠더라.

-그렇게 몸을 추스르는 데엔 뭔가 큰 꿈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젠 여러 작품을 하기보다는 ‘액기스’있는 작품만 하고 싶다. 오래도록 남을 영화를, 선구자적인 영화를 하고 싶다.

-현재 하는 작품에서 그런 욕심을 불어넣고 있나.

=<아라한…>의 경우, 새로운 와이어 액션을 많이 시도 중이다. 한국 와이어 액션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순전 라이브 액션인데, 육박전 장면 같은 게 굉장히 힘들다. 앞의 적을 개머리판으로 때리려다 옆에 있는 아군을 대검으로 베기도 하니까. 쉬워 보여도 실제로는 어려운 장면이 많은 영화다. 사실, <실미도> 같은 경우는 스턴트맨들이 부끄러운 영화다. 30명의 연기자가 정말 눈에서 불이 나도록 열심히 하다보니 우리가 나설 일이 거의 없다. 어쩌다 찍게 돼도 그들은 잘 단련된 병장 같고, 우리는 이제 막 입대한 신병 같더라.

-무술감독, 스턴트맨으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

=아직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꿈은 버리지 못했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정두홍은 이 장르, 저 장르 가릴 것 없이 무엇을 맡든 열심히 하는구나, 액션이 좋구나, 이런 소리를 듣고 싶다. 그리고 이제 쟤는 갔구나, 하는 소리를 듣기 전에 고향 가서 특용작물이나 재배할 것이다.

-배우로서의 목표도 있는 듯 보인다.

=솔직히 영화의 꽃은 배우가 아닌가. 사실, 이전에는 배우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피도 눈물도 없이>를 하면서 조금 욕심이 생겼다. <실미도> 촬영을 하면서 모니터를 보니까 더 욕심이 나더라. 정말 배우가 멋지구나, 저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배우로 자주 얼굴을 비출 생각인가.

=아니다. 요즘 들어 무술에 집중하라는 말을 듣곤 한다. 강 감독도 너 그만 출연해라, 열심히 무술해라, 그러더라. 사람들마다 정해진 길이 있는 것 같다. 내 길은 전문적 스턴트맨, 무술감독일 거다. 사람들도 내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게다가 내가 뭐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멜로를 연출한다고 하면 믿을까?

-그래도 배우 출연 요청이 많지 않나.

=어디…. 요즘에 날 배우로 써주는 사람은 류승완 감독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류승완 감독이 나를 두 번째 태어나게 했다. 그래도 연기는 좀 늘긴 한 것 같다. (웃음) 예전에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멋쩍어서 웃음이 터져나왔는데, 최소한 웃지는 않으니까.

-<네 멋대로 해라>의 연기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나도 그때 알았다. 여자들이 어딘가 허술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웃음)

-연출에 대한 욕심도 늘 갖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름의 준비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떤 제작자가 자꾸 연출을 공부하라고 해서 고민이다. 액션장면 편집도 여러 번 해봤고, <무사>에선 일부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대망> <무인시대> <올인> 같은 드라마의 액션장면도 연출했다. 하지만 욕심은 많지만 솔직히 무섭다. 그렇게 능구렁이 담 넘듯 감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남들의 충고를 듣고 기어내려오곤 한다.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작품들을 접하고나서 단편영화부터 찍어보겠다고 말했다던데.

=<태극기…>를 끝내고나면 10월부터는 스케줄이 비어 있으니까 그때 찍어볼 생각이다. 특용작물 재배하는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울까? (웃음)

-아무래도 연출을 한다면 정소동, 원화평 등 무술감독 출신의 감독처럼 액션영화를 찍을 것 같다.

=오히려 아니다. 가능만 하다면, 멜로를 찍고 싶다. 선생과 제자, 부모와 자식이라든가 특별한 관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액션은 오히려 더 못 찍을 것 같다. 상투적인 액션이 될 것 같은 우려가 든다. 김지운 감독이 그러더라. 스탭은 뛰어난 전문가이고, 감독은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의 상상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으로 딱 나뉘는데, 감독의 상상은 훨씬 자유롭다. 그런 탓에 감독은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액션을 찍기 싫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물론 누아르적인 느낌, 사나이적 정서가 있는 영화도 해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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