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인디다큐페스티발 2003 [2]
2003-10-24
글 : 박은영

<플래시백>

“한눈은 말랐으되 다른 한눈은 젖어 있던 동료 촬영감독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를 돌리는 이들에겐 ‘젖은 눈’과 ‘마른 눈’이 함께 필요하다. 피조물을 향한 시선에는 온기와 물기가 있어야 하지만, 기록하는 이로서는 언제나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막이 오름과 동시에 자막으로 뜨는 ‘헌사’가 알려주듯 <플래시백>은 다큐멘터리스트의 일과 인생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적인 작품이다. 평생 다큐멘터리 작가로 살아온 감독은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데 힘을 기울여왔지만, 점차로 남의 인생을 조명하는 것에 회의와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남의 인생을 필름 캔에 가두거나 세상에 노출할 권리가 과연 자신에게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무렵, 그는 자신이 중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수술대로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지나온 인생과 작업물을 반추해본다. 인생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독의 진한 사색이 담긴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자의 지혜와 대가의 예술혼을 동시에 느끼게 해줄 것이다. 올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쉿!>

집 앞 도로를 향해 거의 고정돼 있는 카메라. 빗자루와 물줄기가 훑고지나간 거리에 포클레인과 인부들이 도착한다. 소음과 함께 맨홀 부근의 도로가 파헤쳐지고 다시 덮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도로 공사는 이후 수차례 반복된다. 비둘기들이 노닐고, 개들이 뛰어가고, 사람들이 스쳐지나간다. 청소, 공사, 기후변화 외에는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던 이 거리에서 카메라는 때로 범죄용의자인 듯한 사내가 경찰에게 붙잡혀 반항하고 구타당하고 연행되는, 비교적 드라마틱한 순간도 포착하게 된다. 시끄러운 집 앞 풍경에 대한 길고 집요한 관찰은, 거동이 불편한 이웃 노파의 힘겨운 외마디 “쉿! 조용히!”를 마주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대사도 사건도 없고, 소소한 일상과 풍경만이 삽화처럼 나열되어 있는 다큐멘터리 <쉿!>은 기이하게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몇날 며칠을 우두커니 창 밖만 응시하는 작가의 짓궂은 취미, 관음증적 시선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하게 되는 까닭이다. 눈비 내리는 거리의 불빛과 도면이 만들어내는 낯설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뜻밖의 선물. 김영 프로그래머는 이 작품을 “풍자적 논버벌 퍼포먼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상관하지 마>

부전자전. 고집이 막상막하다. 감독은 그의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있고, 아버지는 대답을 회피할 뿐 아니라 걸핏하면 화를 낸다. 자신의 조상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궁금해진 감독은 폴란드계 유대인인 아버지의 가계에 대해 캐묻는다. “그게 뭐 어쨌다고? 나는 모른다. 왜 그런 걸 물어보니?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 알 바 아니다. 진실? 진실 따위 집어치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 상관하지 말란 말이다.” 부자가 서로 언쟁하는 동안 화면에는 격렬한 권투시합 장면이 소개된다. 이 대결에선 카메라의 권력을 가진 아들이 우세를 보인다.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는 물론 부계를 훑어올라가면서,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의 비극적 역사에서 그의 조상도 자유롭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가족과 친척을 대상으로 한 밀착 인터뷰, 아버지가 수십년간 찍어온 8mm 홈무비, 다양한 자료화면 등이 경쾌하게 어우러져 있는, 유쾌하고도 가슴 찡한 다큐멘터리 작품. 베를린영화제, 플로리다영화제 등에서 관객과 심사단의 고른 지지를 얻은 바 있는 수작이다.

<미친 시간>

<미친 시간>은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전쟁’, ‘민족해방전쟁’이라 부르는 그 전쟁(베트남전쟁)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외면해온 역사의 치부, 바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사건이다. 보이는 건 모두 베트공이다, 놓치는 것보다 오인사살이 낫다, 어린이도 첩자다 등이 한국군의 전술 지침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노출되자마자 생존자들이 분노와 슬픔으로 회상하는 그날과 그 이후의 삶을 전해듣게 된다. <미친 시간>은 사건의 전말을 드러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대신 전쟁의 광기와 야만성에 희생당한 이들이 겪었고 또 겪고 있는 고통에 주목한다. 감독은 우리가 기억에서 지워낸 과거가 그들에겐 비통한 현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전쟁과 학살에서 살아남은 중년 여인의 한마디는 오래도록 아프게 메아리친다. “궁금한 게 있어요. 그들도 후회하고 있나요?”

로버트 크레이머 회고전

다큐의 혁신, 세계의 혁명을 바란 작가

1980년 <뉴욕타임스>에는 흥분과 분노가 뒤섞인 한 영화평론가의 글이 실렸다. “현역 영화감독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인 그가 단지 프랑스에서만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다.” 미국 출신이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크레이머의 이야기다. 로버트 크레이머가 ‘흥미롭고’,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는 것은 그가 급진적인 사상가이자 운동가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넓히는 다양한 형식실험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로버트 크레이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아이스>(1969)는 픽션과 다큐의 요소가 혼재하는, 당시로서는 (사실은 지금 봐도) 상당히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실존했던 지하혁명조직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가장하고, 이를 다시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 담아내는 등의 독창적인 시도가 돋보인다. 프랑스로 이주한 뒤에도 여전한 미국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반영하는 <미 1번 국도>(1989)는 배우가 등장해 허구적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식으로 픽션의 요소를 가미한 다큐멘터리다. 미국 동부해안을 가로지르는 1번 국도를 따라가는 여행에서 주인공은 미국사회의 다양한 갈등구도를 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크레이머의 베트남 3부작 중 첫 번째인 <피플스 워>(1969)는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월등한 미국과 오랜 시간 대치할 수 있었던 베트남의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크레이머와 반전운동가 그룹이 함께한 하노이의 전후 풍경 스케치다. 2부 <출발점>(1993)은 24년 뒤에 다시 찾은 하노이의 활력과 낙천적 에너지를 리드미컬하게 그려냈고, 3부 <그러니까 이런 거지>(1998)는 세계화에 대한 크레이머의 숙고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