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은유와 장르의 모자이크 <굿바이 레닌>
대한민국에 <친구>가 있다면, 독일에는 <굿바이 레닌>이 있다. <친구>처럼 자국 흥행에 별천지 신기록을 세우면서 바야흐로 <친구>처럼 통일독일에 복고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굿바이 레닌>은 독일사회에 그 옛날 못 먹고 못 살아도 정 많은 동독사회가 좋았다며 다시 한번 ‘오스트’(Ost)와 향수의 ‘노스탤지어’(Nostalgia)가 결합된 ‘오스탤지어’(Ostalgia)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물론 <굿바이 레닌>에는 사시미칼에 찔려 죽어가는 친구들은 나오지 않는다). <굿바이 레닌> 이전의 통일독일은 통일 이후에도 외적 장벽이 아닌 내적 분단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동독인들은 하루아침에 자유를 찾아 멀쩡한 집을 버렸고, 서독인들은 동독에 있는 분단 이전의 내 땅을 돌려달라고 정부에 떼를 썼다. 하루아침에 ’금강산 참기름‘ 대신 ’오뚜기표 참기름‘이 동독 시장을 점령하고 동독 화폐의 가치는 폭락했다. 한마디로 서독인들 눈에 동독인들은 게으름만 피우며 공짜를 바라는 “오시”(Ossi)였고, 동독인들의 눈에 서독인들은 돈만 밝히고 거만을 떠는 ”베시”(Wessi)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굿바이 레닌>의 흥행자릿수, 700만명은 한국 시장의 저력을 넓힌 <친구>의 800만명이란 숫자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상징이다. 90년대 이후 이른바 로맨틱코미디영화들의 관객동원이 최대 500만명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도 할 수 있듯이, 서독의 풍요로운 삶 속을 기반한 영화 속 뜬구름 잡는 자유연애 이야기가 동독지역 관객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단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 <굿바이 레닌>이 나타남으로써 독일 국민은 오시, 베시 할 것 없이 함께 영화를 보았다. <굿바이 레닌>은 독일 영화사에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을 성취한 최초의 영화였던 것이다.
책임 추궁의 전통 대신 신·구 화해를
SF-코미디-멜로-정치풍자-가족영화인 <굿바이 레닌>은 지구 근처에서 자세히 보면 통일을 즈음한 독일의 상황에 대한 수많은 은유로 모자이크된 우화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우주비행사와 버거킹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다시 없는 독일 효자가 산삼 대신 비디오 클립을 어머니께 드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하는 주인공 알렉스는 TV에서 방영되는 동독 최초의 우주비행사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1978년 동독은 세계적 수준에 올라갔지만, 우리 가족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얼핏 동독의 우주로의 비상과 교차하는 가족의 몰락은 대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는 동독사회의 내적 몰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독은 외적으로는 고공 비행을 계속했지만, 국가의 기간이 되는 고급두뇌이자 가족의 주체인 의사 아버지의 망명이 암시하듯, 내적으로는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1년이 지난 뒤, 건국 40주년을 기념하는 사열식이 진행되면서 탱크가 거리를 지나가자, 주인공의 허름한 아파트는 아예 사정없이 ‘흔들린다’. 이러한 면에서 알렉스의 어머니, 남편의 서독 망명 이후 “사회주의 조국과 결혼한” 크리스티아네는 기호학적으로 동독이 끝까지 포기 못했던 이상적 사회주의의 어떤 표상일 것이다. 말 그대로 순수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옷과 흰 옷을 걸친 그녀는 심장마비 한번에 통나무 쓰러지듯 의식의 세계를 저버린다. 동독은 심장마비에 걸려 쓰러졌고,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더이상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그녀는 혹은 동독의 이상은, 한줌의 재가 되어 우주로 날아간다. 이러한 면에서 아버지로 대변되는 보호자와 모범이 부재했던 알렉스 역시 동독의 젊은이들이 처한 과거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는 인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위해 옛 동독의 물건들을 그대로 재현하고 TV를 통해 동독의 현실을 오도하는 알렉스의 행동은 과거 동독 정부가 국민들을 기만하고 서독 타도를 외쳤던 전례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것 같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근대 독일은 동과 서뿐 아니라 구세대와 신세대가 사정없이 충돌하는 뇌진탕의 역사를 갈피마다 지니고 있는 나라였다(그 기간과 강도에 있어서 우리의 4·19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셔야 한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사회주의를 신봉했던 부모들은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아이들로부터 비판당했고, 나치를 추종하던 부모들은 전후 자식들로부터 전 인류적 범죄인 유대인 학살에 대해 죽도록 추궁을 당했다. 예술 분야에서도 “0시 Stunde Null, zero hour”는 과거 세대와의 역사적, 미학적 단절을 표명한 표어가 되었고 뉴 저먼 시네마 감독들은 “낡은 영화는 죽었다”고 외쳤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놀던 가락이라면 <굿바이 레닌>에는 통일 이후 40년 동안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맹신했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위대한 조국”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던 구세대가 실업과 불투명한 미래에 직면했던 “통일세대”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하는 장면이 한번쯤은 있음직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굿바이 레닌>은 이러한 책임 추궁 대신 신·구세대의 화해를 제안한다. 쓰러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독일 통일을 실패로 받아들인 교장 선생이나 학업을 팽개치고 햄버거 가게에 취직한 누나는 영화의 말미에 힘을 합친다. 죽은 어머니의 재를 우주선 모양에 담아 쏘아버리는 그들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서로를 용서한다. 볼프강 베커는 죽은 공산주의의 이상을 비료 삼아 다시 한번 독일이 명실상부하게 우주 끝까지 도약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과 테오 앙겔로풀로스를 인용해도 끝까지 독일적이다.
스타일보다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마치 신성처럼 나타난 듯 보이는 볼프강 베커란 이 감독은 과연 누구인가. 일단 그가 나타나기까지, 독일영화에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파스빈더가 죽고, 보수정권이 등장하면서 예술영화에 대한 돈줄이 막히자, 80대 중반부터 뉴 저먼 시네마는 쇠퇴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명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한 이른바 “조이스틱 세대” 감독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사회적 발언에 치중하는 작가영화 대신 개인의 사적인 문제를 발랄하게 풀어가는 감각적인 영화들을 추구했고, 그 결과는 볼프강 베커와 그와 동년배인 도리스 되리의 처지를 비교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남자들>(Maenner)과 <파니 핑크> (Keiner liebt mich) 등을 감독한 도리스 되리는 데뷔작과 후속작의 엄청난 국제적 성공으로 뉴 저먼 시네마 이후 새로운 독일영화의 시작을 알린 대표적인 감독으로 부상하였다. 반면 1988년 졸업작품이자 데뷔작인 <나비>(Schmetterlinge, 1988)로 아카데미 학생영화상과 로카르노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베커는 평단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를 거듭하였다. 사실 도리스 되리는 뮌헨파의 거봉인 빔 벤더스처럼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뮌헨영화학교’를 나온 반면, 베커는 사회적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노동자들의 삶을 담고자 했던 이른바 “노동자영화”(Arbeiterfilm)를 만들어내던 ‘베를린영화학교’ 출신이었던 것이다. 결국 영화를 통한 사회적 발언이 쇠퇴했던 독일 영화계의 상황은 켄 로치를 존경하는 ‘베를린파’ 감독 베커에게 지속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커는 TV형사물 <현장>(Tatort) 시리즈로 기획된 <소시지 왈츠>(Blutwurstwalzer, 1991)와 역시 TV용으로 기획되었다가 극장에서 상영된 <아이들 놀이>(Kinderspiele, 1992)를 만들었고, 1994년 신세대 감독들인 <롤라 런>(Lola rennt)의 톰 티크베어와 <고요한 밤>(Stille Nacht)의 데니 레비와 함께 “X-Filme creative pool”을 설립했다. 이후 그는 <인생은 공사장>(Das Leben ist eine Baustelle, 1996)을 거쳐 <굿바이 레닌>(2003)을 내놓기에 이르른다.
독일 영화역사에서 베커는 특히 독일에서 사회로 향해 있는 시선과 함께 늘 가족의 문제를 영화 핵심에 놓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사회의 문제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연골이 베커 영화에서는 가족이고, 그 취약한 영점에서부터 베커는 다시 독일사회의 비판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데뷔작인 <나비>에서 그는 실업으로 인한 가족 해체와 청소년의 방황을 그렸고, <아이들 놀이>에서는 이혼과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족파탄의 문제를, <인생은 공사장>에서는 통일과 실업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한 가족을 다루었다. 그런데 더욱 더 흥미로운 점은 그가 존경하는 켄 로치처럼 정말 베커의 초기 영화들이 정통 사실주의에 근거해서 현실의 세밀한 모습들에 냉정하게 거리를 두었다면, <인생은 공사장>부터는 후반기의 켄 로치가 그러하듯 인간미와 따뜻한 유머가 꿈틀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다음 영화를 만들기 위한 타협인지 인생에 대한 감독의 개인적인 연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건 베커는 스타일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중요시 여기고, <굿바이 레닌>에서도 독일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메스보다는 결국 웃음으로 소독한 붕대를 꺼내든다.
무엇보다도 <굿바이 레닌>은 중견감독의 젊은 영화였다. 영화는 젊은이들의 우상인 신세대 스타와 옛 동독의 늙은 배우가 어우러지고, 버거킹과 스프리발 오이 피클 (옛 동독의 피클 상표)이 함께 나온다. 또한 <굿바이 레닌>이 젊은 까닭은 주인공 알렉스 역의 다니엘 브뢸과 함께,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각본가 베른트 리히텐베르그가 젊기 때문이다. 특히 <굿바이 레닌>의 어떤 설정은 독일이 낳은 저명한 소설가 하인리히 뵐의 단편 <크리스마스 때만은 아닌>과 비슷해서 흥미롭다. 소설은 아주머니의 발작으로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 파티를 치르는 한 가족 이야기가 나오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하인리히 뵐은 이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인간의 무모한 집착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보냈었다. 침실 안에서 신기루 같은 동독을 재건한다는 <굿바이 레닌>은 이렇게 이미 타계한 하인리히 뵐이 통일과정을 목도했다면 썼음직한 인간에 대한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수작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아카데미협회는 모처럼 나온 좋은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에 최우수 외국영화상의 월계관을 씌워줄 것인가? 지난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영화상 수상작인 카롤리네 링크 감독의 <노 웨어 인 아프리카>가 <굿바이 레닌>보다 두배는 눈물을 짜는 평범한 신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카데미가 연속해서 두번씩이나 같은 국가에 오스카를 안기고 싶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볼프강 베커는 이번에 ‘굿바이 아카데미!’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진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