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씨네월드 3인방- 이준익 · 조철현 · 정승혜 [1]
2003-10-31
글 : 문석
사진 : 정진환
‘영화기획의 명가’ 씨네월드의 3인방, 이준익, 조철현, 정승혜

왠만해선 씨네월드 트리오를 막을 수 없다!

개봉 첫 주말에만 전국에서 9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들인 <황산벌>은 ‘사극을 통해 현대의 정치구도를 통렬하게 비판한다’는 호평부터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코미디로서 하나도 안 웃긴다’는 비판까지 상반된 반응을 얻고 있다. 논란 속에서도 이 영화에 관해 한 가지 일치되는 평가는 ‘다르다’는 것이다. 기존의 코미디와는 상이한 출발점과 결말을 보여준다는 얘기. 이 차별성의 근저에는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 등 색깔 뚜렷한 코미디를 만들어온 씨네월드라는 제작사가 존재한다. 씨네월드의 이 독특한 빛깔은 이준익 사장, 조철현 전 상무, 정승혜 이사 트리오의 10여년 동안의 오묘한 팀워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11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꿋꿋하게 충무로를 지켜온 씨네월드 3인방을 소개한다.

“그래도 씨네월드 영화는 뭔가 다르다.” 이준익, 조철현, 정승혜의 3인방을 개인적으로 알건 모르건, 충무로 인사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 <황산벌>뿐 아니라, <키드캅> <아나키스트> <공포택시> 같은 ‘실패작’까지도 기획이란 측면에서는 매우 독창적이라는 얘기다. <성스러운 피> <벨벳 골드마인> <메멘토> <헤드윅> <제너럴> 등 수입작들의 면면 또한 이러한 씨네월드의 색깔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요소. 굳이 설명하자면, 개성있는 영화를 존중하고, 유행에 편승하지 않으며, 웃음 속에 묵직한 무언가를 담으려 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이들 영화의 색채는 성격도, 배경도, 지향하는 바도 서로 다른 3인방의 오묘한 어울림 속에서 나온다. 때문에, 이 ‘색 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개인사를 파악해야 한다.

영화광고디자이너, 자막번역자, 그리고 광고카피라이터

이준익 | 동양화 전공. 1985년 학원사의 <주부생활> 디자인 아르바이트. 86년 학원사의 다른 잡지 <여성자신>의 편집장이던 이세룡 감독이 서울극장 기획실장으로 옮기면서 선전부장 겸 도안사로 서울극장 입사. 87년 영화광고 대행사 씨네시티 창립. 92년 영화 제작·홍보·수입·배급사 씨네월드 설립. 모두 1500여편의 영화 광고에 참여

정승혜 | 극단 ‘테멘’에서 근무하다 1989년 신씨네 입사. 91년 씨네시티 입사. 92년 씨네월드 기획실장. 1200여편의 영화 카피 및 홍보

조철현 | 영문학 전공. 방송사 프로듀서 시험 9회 낙방. 1987년 한국영화배급주식회사 입사. 91년 오픈시네마 기획실장. 92년 씨네월드 이사. 2003년 타이거픽처스 설립. 800여편 외화 자막 번역


이준익

대학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준익 사장은 온갖 직업을 전전했다. 정부종합청사 수위에서 날품장사까지 그가 거친 직업은 수십 가지다. 결국 “먹고살기 위해” 한 잡지의 디자인을 하면서 그의 인생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같은 회사에서 내던 다른 잡지의 편집장이던 이세룡 감독이 86년 서울극장 기획실장으로 가면서 이준익을 선전부장 겸 도안사로 스카우트했던 것. 마케팅이 분업화되지 않았던 시절, 그는 포스터, 신문광고, 전단까지 만들면서 영화의 전반을 깨쳐나가기 시작했다. 이황림 감독으로부터 배운 노하우에 젊은 마인드가 결합된 그의 신선한 감각은 소문이 나, 대한, 명보 같은 다른 극장으로부터 일을 맡기도 했다. 87년 지금은 씨네라인Ⅱ 대표인 석명홍씨와 함께 영화 광고대행사 씨네시티를 차린 이준익 사장은 한때 시장의 80%를 점유할 정도로 막강한 세를 과시했다. “어느 해던가 추석 때는 개봉작 7편 중 6편을 내가 디자인했다.” 서울극장 시절부터 씨네월드를 차릴 때까지 그가 처리한 영화광고는 모두 1500여편이었다.

조철현 타이거픽처스 대표(전 씨네월드 상무이던 그는 최근 독립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씨네월드와 계속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87년 한국영화배급주식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뒤 그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수입작인 <크로커다일 던디>의 자막을 마무리짓는 것. 재미동포가 번역한 탓에 글자 수가 자막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뭔가 매끄럽지 않았다. 호주 촌동네의 악어사냥꾼이 주인공이다 보니 영어 사투리가 튀어나왔는데, 그 맛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주인공은 ‘Don’t Worry’가 아니라 ‘No Warry’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을 ‘걱정하지 마’가 아니라 ‘염려 붙들어매랑게’라고 번역했다.” 전라도 토박이 말투를 사용하는 조 대표다운 행동이었다. 이 자막의 반응은 좋았고, 그에겐 일거리가 계속 들어왔다. 회사를 옮기는 와중에도 자막 번역 일만큼은 놓지 않아 그는 현재까지 모두 800여편의 영화 번역을 했다.

1989년 정승혜 이사는 극단 ‘테멘’에서 일하다가 노효정 감독 등의 소개로 신씨네에 들어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시작으로 그는 광고 카피를 뽑아댔고, <베를린 리포트>를 마지막으로 신씨네를 나왔다. “회사는 제작쪽으로 가닥을 잡고 나갔지만, 나는 광고쪽을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 최고였던 씨네시티로 갔다.” 신씨네에서부터 씨네월드까지 그가 관여한 영화광고, 카피는 1200여건이다.

씨네월드 주요작품

제작영화 | <키드캅>(1993, 서울 2만1454명), <간첩 리철진>(1999, 서울 17만2474명), <아나키스트>(2000, 서울 23만6990명), <공포택시>(2000, 서울 1만4651명), <달마야 놀자>(2001, 서울 130만4200명), <황산벌>(2003, 10월23일까지 서울 ??만명)

수입작 | <성스러운 피>(1995), <택시>(1998), <벨벳 골드마인>(1999), <제너럴>(1999), <나인 야드>(2000), <메멘토>(2001), <헤드윅>(2002)

두명의 천재와 한명의 휴머니스트

정승혜

이들 세 사람은 정승혜 이사가 씨네시티에 입사하던 1991년 7월 처음 교차한다. 당시 조철현 대표는 오픈시네마라는 영화사에 있었지만, “씨네시티로 출근했다가 씨네시티에서 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당시 씨네시티는 영화광고의 메카로서뿐 아니라 젊은 영화인들의 ‘소굴’로도 유명했다. 워낙 많은 영화가 왔다가다 보니 정보가 풍부했고, 달변의 이준익이 있었기 때문에 유인택, 안동규, 조민환, 심재명 등 당시 영화사 기획실에서 근무하던 젊은 영화인들은 이곳을 터전삼아 풍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준익 대표가 워낙 신감각 광고인으로 이름이 났고,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정승혜 이사가 있어 자주 찾았다”는 게 조민환 나비픽처스 대표의 회고다.

1992년 씨네시티는 씨네월드와 시네라인으로 나뉜다. 제작을 내세운 이준익 대표는 씨네월드를 만들었고, 광고 대행업을 지키려 했던 석명홍 대표는 시네라인을 창립해 각자의 길을 향한 것이다. 씨네월드 창립과 동시에 조철현 대표도 결합해 3인방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창립 초기 씨네월드는 표면적으로는 계속 영화 홍보를 했지만, 수면 아래서는 창립작 <키드 캅>을 준비하고 있었다. <키드 캅>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볼 만한 가족영화를 보여주자”는 이준익 대표의 의지가 반영돼 있었다. 이준익 사장이 감독을 맡기로 했고, 조철현 대표가 제작실장으로 참여했다. 두 남자가 밖으로 도는 동안, 정승혜 이사는 광고일을 계속 하며 회사 살림을 꾸렸다. 정 이사의 ‘소녀가장’ 노릇은 이때부터 <간첩 리철진>을 만들던 1999년까지 계속된다.

<키드 캅> 이후 씨네월드 3인방은 본격적인 기획작업에 돌입한다. 92년 <결혼 이야기>를 기점으로 기획영화들이 쏟아져나왔고, 그중 대다수가 로맨틱코미디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들은 ‘우리는 다르다’고 외쳤다. 밤낮으로 머리를 싸매던 이준익과 조철현은 역사 속에 묻혀 있지만, 멋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찾아낸다. 아나키스트 집단인 의열단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 것. <간첩 리철진>은 <아나키스트>가 여러 여건이 안 맞아 지지부진하던 와중 떠올렸다. 이 영화 또한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해 씨네월드 아이디어의 90%를 떠올린다는 조철현 대표의 작품. “뭔가 새 아이템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신문에 부부간첩단 사건이 실렸더라고요. 읽어보니까 남편은 술에 취해서 실수를 저지르고, 아내는 생리대가 뭔지 잘 모르는 등 어리버리한 간첩이더라구요.” 어수룩한 간첩 이야기는 조 대표의 머릿속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해 <간첩 리철진>으로 이어진다. <공포택시>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와중, 튀어나온 영화다. 전날 <월하의 공동묘지>를 본 정승혜 이사가 “무덤이 쩍 갈라지면서 관이 튀어나오는 장면이 정말 웃기더라”고 말하자, 듣고 있던 조 대표가 “아, 거기서 택시가 튀어나오면 허벌나게 재밌겄네”라고 맞장구치면서 출발한 작품이다.

<달마야 놀자>는 가장 힘들게 개발된 아이템이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 역시 조 대표의 머리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국 스님이 미국에 건너가는 설정으로, 상이한 문화가 충돌하는 가운데 잔잔한 웃음을 만들어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건상 무대를 국내로 옮겨야 했지만,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영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씨네21>에 실린 ‘이명석의 씨네콜라주’를 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이명석씨가 ‘화엄 컵’이라는 제목으로 조폭이 절에 가서 축구를 하는 얘기를 썼는데, 바로 뒤통수가 울리더라.” 한 걸음에 달려가 이명석과 계약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산벌>의 시작은 9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대선국면을 맞아 DJ를 지지하던 조 대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한번 찍어줘야 한다”며 설득을 하고 다녔다. 이 과정에서 친구와 싸우기까지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내가 왜 이럴까”라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이 지역감정의 문제를 떠올리며, 그는 먼 과거의 이야기로 이를 제기한다면 부담도 크지 않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조철현 대표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기획 아이디어는 이준익 사장에게로 넘어가면서 좀더 구체화되고 생생해진다. 그러니까 조 대표가 개념을 던지면, 이 사장은 이를 문장으로, 영화적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구체화된 영화는 정승혜 이사의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문구에 힘입어 대중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황산벌>에 참여했던 박중훈은 이들 3인방을 가리켜 “두명의 천재와 한명의 휴머니스트 집단”이라 일컬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내는 조 대표와 ‘땅 위의 천재’ 정승혜가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광고 카피, 그리고 이들을 인간적으로 포용하는 이준익 대표의 팀워크를 짚은 것이다. 김동주 쇼이스트 대표에 따르면, “이준익은 풍부한 경력과 인덕, 조 대표는 비상한 아이디어와 인문학적 교양을 갖고 있다. 여기에 정승혜 이사는 뛰어난 능력 외에도 냉철함을 갖고 있어 두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씨네월드가 ‘영화기획의 명가’가 된 데는 각기 다른 장점을 갖고 있는 3인방의 절묘한 팀워크가 자리하는 것이다.

씨네월드 3인방이 말하는 기획의 5계명

1. 새롭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남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말라.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놓고 우리가 먼저 시작했다며 싸우기 싫다. 남들이 10년 안에 따라올 수 있는 아이템은 하지 말자.

2. 나의 경쟁자는 전 국민이다

잘 나가는 다른 회사는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다. 수많은 대중을 자극하고 즐겁게 하는 게 문제지 영화계 안에서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전 국민 속에서 경쟁하겠다.

3. 먼저 확실한 카피가 나오지 않는 영화는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는 영화는 안 된다. 쌈빡한 카피가 나올 수 있는 명쾌한 컨셉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왜 만드나, 무엇을 만드나, 어떻게 만드나를 먼저 확고히 세워야 한다.

4. 행복해지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행복해져야 한다. 영화의 흥망성쇠를 떠나서 회사나 현장의 분위기가 즐겁고 신명나야 한다.

5. 돈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의 두 가지 가치인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균형있게 판단해야 한다. 돈만 벌기 위해 기획된 영화는 일시적으로 성공할지 몰라도 결코 오래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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