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씨네월드 3인방- 이준익 · 조철현 · 정승혜 [2]
2003-10-31
글 : 문석
사진 : 정진환

영화계의 주류? 세상의 주류!

조철현

기획력에 있어선 독보적이라고 해서 이들이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최초로 상하이 제편창에서 모두 촬영된 <아나키스트>는 드라마가 소재의 스케일을 잡아내는 데 실패했고, B급영화도 나름의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공포택시>는 전반적인 함량이 떨어지는 결과를 빚었다. 이 두 작품은 결국 아무리 기획이 독창적이고 특이해도 이를 대중이 소화할 수 있도록 담아내지 못한다면, 기획조차 빛이 바랜다는 사실을 이들에게 알려줬다.

특히 <공포택시>의 실패는 씨네월드에 큰 타격이었다. 씨네월드는 당시 투자자가 없어 <택시>와 <나인 야드> 등 외화로 번 돈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는데, 총제작비 13억 중 1억원 정도만을 건졌을 뿐이다. 결국 엄청난 빚이 쌓였고, 회사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외에서 600만달러짜리 외화 패키지를 가져왔지만, 큰 손실만을 남겼다. 30여억원을 가져다준 <달마야 놀자>가 없었다면, 씨네월드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전히 30억원이 넘는 빚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황산벌>의 성공은 이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인 셈이다.

이렇게 씨네월드가 지속적으로 빚에 시달리게 된 것은 분명, 경영상의 실수, 영화제작 실패 등 스스로의 잘못에서 기인한 게 사실이지만,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말처럼 ‘정면돌파 의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다른 이의 자본을 끌어서 일을 벌이기보다 최대한 스스로의 힘으로 처리하려는 태도가 없었다면 씨네월드는 빚도 지지 않았겠지만, <달마야 놀자>나 <황산벌> 같은 뚝심있는 성취 또한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황산벌>로 그간의 빚을 모두 청산한다 하더라도(전국 400만명 이상이 들어야 가능한 얘기지만) 씨네월드가 어떤 ‘정면돌파’를 또 벌일지 모르기에 이들의 진정한 ‘안정화’는 요원한 얘긴지도 모른다. “3∼5년 전 기획했던 아이템이 서서히 나오는 시기이므로 이제부터”라는 정승혜 이사의 말대로라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씨네월드를 보고 있노라면, 보수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시네마서비스의 계열사를 제외하면 지리적인 의미에서 거의 유일하게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 돼버린 점이나, 제작·수입·배급을 모두 맡는 방식이나, 그 흔한 펀드 하나 만들지 않는 데서 이들은 어쩌면 과거지향적인 조직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 대해 이준익 사장은 오히려 “우리는 과거지향이기도, 미래지향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충무로 구세대 아래서 자라났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유산을 계승하는 가운데 현재에 임한다는 이야기다. 그의 말은 이들 3인방이 모두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말에 따르면 씨네월드는 구충무로와 현재의 충무로 사이의 이음새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다들 돈이 영화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우리는 지금 팽배한 자본의 논리, 금융의 논리를 별로 따를 생각이 없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이들의 색깔은 명확해진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이들 3인방 중 그 어느 누구도 영화광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영화계에 들어온 이후 한번도 영화 이외의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스스로를 시네필의 전당 속으로 빠뜨린 적이 없기에 본질적으로 영화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이준익 사장은 “영화와의 거리감은 애초 영화계에 들어왔을 때 이후로 한번도 좁혀진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역설의 논리를 편다. 이들의 논리를 종합해본다면, 영화를 하는 것이 스스로의 만족만을 위한 것도, 돈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이 차후에 벌일 영화가 도시로 내려온 스님들 이야기를 그리는 <달마야 놀자2>(타이거픽처스와 씨네월드 공동제작 예정)와 웃음 강박 시대를 풍자하는 <코미디 클럽 살인사건> 등이라는 점에서도 이들이 가고자 하는 노선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대중이 호응하고, 무언가 메시지가 존재하며, 웃음이 풍부한, 그러니까 좋은 대중영화야말로 3인방이 갈망해 마지않는 바다. 이쯤 되면 “씨네월드가 현재 영화계의 주류가 아니라고 누군가 말하더라도 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세상의 주류 아닌가”라는 이준익 사장의 호방한 코멘트도 이해가 된다.

이제 이들 3인방은 조금 더 서로에게 독립성을 부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조철현 대표가 타이거픽처스라는 영화사를 만든 것이나, 이준익 감독이 회사 안보다는 작품 활동에 몰두하려는 것, 정승혜 이사가 외부 작업에도 짬짬이 참여하려는 것은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렇다고 뭔가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타이거픽처스가 씨네월드의 길 건너편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에서 짐작되듯, 이들은 여전히 기획을 만들고 구체화시킨 뒤, 짜릿하게 알려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0년 뒤엔 3인방이 충무로를 바꿔낼 거냐고? 그거야 알 수 없지만, 확실한 점 하나는 이들 세명은 2013년에도 충무로 뒷골목 맥주집에서 영화를 기획한다며 여전히 쉴새없는 이야기 잔치를 벌이고 있으리란 거다.

외부인이 본 3인방

“<삼국지>의 유비, 제갈공명, 관우를 보는 듯”

김동주 | 쇼이스트 대표 나는 이들과 어울리며 영화를 배웠다. 이준익 사장을 포함해 세명은 내 스승인 셈이다. 영화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영화계에서 떠나려고 할 때 용기를 준 것도 이들이고, 일신창투로 옮길 때, 코리아픽쳐스로 옮길 때나 쇼이스트를 차릴 때 이들은 내게 힘을 줬다. 내 영화는 다른 제작사가 기획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따라가려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 셋을 보고 있노라면 <삼국지>가 떠오른다. 이준익 사장이 유비라면, 조철현 대표는 제갈공명, 정승혜 이사는 조자룡 또는 관우다. 영화판에 있으면서 3년 이상 함께하는 사람들을 거의 못 봤는데, 이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배를 타고 있다. <황산벌>은 이들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본다. 정말 엉뚱하고 대단한 이들은 충무로에서 가장 빛나는 기획영화집단이 될 것이다.

강우석 | 시네마서비스 감독 한마디로 셋은 영화의 도사들이다. 이준익 사장과의 인연은 20년이 다 돼가는데, 될 영화와 안 될 영화를 보는 눈이 남다르다. 누구도 100% 맞힐 수야 없겠지만, 대단한 능력이 있다. 그에게서 내 영화가 괜찮다는 얘기를 들으면 용기를 얻을 정도다. 다른 제작자보다 좀더 오래가지 않겠는가. 외화보다는 한국영화에 집중하면 오래갈 제작자다. 그리고 나는 그가 감독도 잘할 수 있다고 예전부터 판단했다. <황산벌>은 이를 증명하지 않았나. 정승혜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카피를 써주며 처음 만났는데, 좀처럼 접하기 힘든 캐릭터다. 천재다, 천재. 기획능력이나 카피나 굉장히 비범하다. 만약 정승혜 이사가 나간다면 씨네월드는 분명 망한다. 나는 보통 카피라이터나 이런 데 의지하지 않는데, 정승혜는 다르다. <투캅스2> <마누라 죽이기> 이런 영화도 다 그 친구가 카피를 뽑았다. 정승혜가 내 일을 도와주면 그건 모두 대박이다. 다른 사람은 다 대안이 있어도, 정승혜에는 대안이 없다. 조철현 대표는 개인적으론 자세히 모르지만, 우직함이 대단하다. 한마디로 어른이다. 기획한 것 보면서 대단한 아이디어맨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사심이 없는 사람 같다. 영화 보고 판단하는 능력도 좋고 기획능력도 출중하다. 어쨌건 이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씨네월드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심재명 | 명필름 대표 영화계에 들어온 초창기부터 세 사람을 접했다. 이준익 대표는 내가 서울극장에 입사했을 때 선전부장이었다. 그에게서 영화에 관해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다. 씨네시티 시절에도 마케팅에서 나는 굉장히 많은 것을 익혔다. 씨네월드는 한국 영화계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제작을 함에 있어서 접근방식이 남들과 다르다. 한마디로 정면돌파 의지다. 이준익 대표의 말처럼 이들은 유명감독을 모셔오거나 돈으로 영화나 사람을 보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영화의 기획은 씨네월드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외부의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갖고 온 아이템을 활용하지 않는다. 이들의 정면돌파 경지의 극한은 제작자가 감독으로 나선 것 아니겠는가. 세 사람이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고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인간적 믿음이 확실히 예사롭지 않다. 클래식한 스타일이지만, 자신들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놀라고 부럽다. 언젠가 이준익 사장이 “돈 때문에 영화한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난 아니라고 본다. 24시간 내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자기 돈으로 수입하고 제작해서 고생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즐거워하지 않으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영화계에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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