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니, 네 멋대로 해라!
조지 클루니는 블록버스터와 조지 부시를 혐오한다. 기이한 일이다. 그는 할리우드 최고의 실력자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랐고, 몇편의 블록버스터에서 지구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었더랬다. 1천만달러의 개런티를 받아챙긴 적도 있고, 파파라치들의 입맛을 당기는 먹잇감이 된 지도 오래다. 누가 뭐래도 그는 지금 할리우드의 중심에 선 스타다. 그런데 그는 좀 별나다.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것은 스튜디오고, 스튜디오를 움직이는 것이 블록버스터일진대, 그는 블록버스터와 절연선언을 해버렸다. 대중스타에겐 정치와 사회에 대한 발언이 금기시돼 있지만 그는 조지 부시의 하야운동에 버금가는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현지언론은 반할리우드적인 조지 클루니의 최근 행보를 “자기를 먹여주고 키워준 주인의 손가락을 깨물어버리는” 배신행위로 간주한다. 이상한 것은 앙탈도 심하고 오지랖도 넓은 이 배우를, 보수적인 할리우드가 먼저 껴안았다는 사실이다. 2003년 ‘조지 클루니의 힘’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25위로, 미국판 <프리미어>는 29위로 가늠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녀들의 사랑, 그들의 대장 몇년 전만 해도 조지 클루니는 그냥 ‘섹시한 남자’였다. 그가 <E.R.>의 바람둥이 소아과 의사로 인기 몰이를 하던 무렵, 여자들은 팬레터를 빙자해 낯뜨거운 로맨스소설을 전했고, 남자들은 그에게 다가가 “당신 때문에 아내가 날 떠날 것 같다”고 쏘아붙이곤 했다. 클라크 게이블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추억하게 하는 그의 고전적인 기품과 남성적인 아름다움은, 낯설고도 익숙한 매혹이었다. 그러나 조지 클루니는 엇비슷한 역할을 되풀이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보여주던, 그때 그 배우들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처럼 조지 클루니도 당대 최고로 매혹적인 여배우들(니콜 키드먼, 제니퍼 로페즈, 줄리아 로버츠, 캐서린 제타 존스)을 파트너로 맞았다. 그러나 고독하고 터프한 바다 사나이(<퍼펙트 스톰>), 쿨한 도적단의 리더(<쓰리 킹즈> <오션스 일레븐>), 사랑에 빠진 속물 변호사(<참을 수 없는 사랑>)일 적에 그는 험프리 보가트 스타일의 터프가이에 더 가까워졌고, 남자들의 경계심을 해제시켰다. 유난히 강도와 절도 행각이 잦은 그의 분신들은 그나마도 인정(또는 사랑)에 이끌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인간미’는 이 고전적인 미남이 머무는 곳이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
조지 클루니는 액션과 멜로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멜 깁슨, 해리슨 포드, 덴젤 워싱턴의 계보에도 속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없고 조지 클루니에게만 있는 미덕이 바로 비주류 감성이다. 그들이라면 문신투성이 몸으로 흡혈귀와 맞붙어 싸우지 않을 것이고(<황혼에서 새벽까지>), 불경한 애니메이션에 그것도 동성애 성향을 지닌 강아지 캐릭터에 목소리를 빌려주는 일(<사우스 파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조지 클루니는 여자들의 연인이고, 남자들의 리더이면서, 비주류의 상징적 대변자로, 운신의 폭을 넓혀왔다.
그럼에도 조지 클루니를 ‘연기파 배우’라고 부르기는 여전히 망설여진다. “<심판>의 폴 뉴먼과 <나의 왼발>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를 봤을 때 나는 결코 그런 연기를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조지 클루니는 자기에겐 배우가 지녀야 할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실토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결핍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이 파는 것은 연기가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마르지 않는 자신감의 원천은, 조지 클루니가 정통파에서 변칙 복서로 선회한 과정과도 맞물린다.
쇼비즈니스 가문 출신의 잡초 인생
성장 배경을 살펴보면,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조지 클루니를 키운 것은 5할이 무명 시절의 그늘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지역방송인이었고, 어머니는 미인대회 입상자였다. 재즈가수 로즈마리 클루니가 그의 고모였고, 훗날 그에게 배우의 길을 열어준 사촌이 배우 미구엘 페레였다. 온 가족이 엔터테이너로 꾸려진 특수 환경 속에서 어린 조지는 냇 킹 콜을 흉내내면서 일찌감치 주목받고 사랑받는 법을 터득해갔다. 하지만 프로 야구선수의 꿈이 좌절된 뒤,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고모의 차를 대신 몰아주고, 숙녀화 외판원으로 일하면서도, ‘영화배우’가 되리라는 생각을 그는 해본 적이 없었다. ‘영화현장’의 실체를 접해보기 전까지는.
사촌 덕에 작은 영화에 단역을 따내긴 했지만, 조지 클루니의 화려한 족보도 할리우드 입성의 프리 패스가 돼주진 못했다. 첫 영화는 미완으로 남았고, 그가 참여한 드라마 파일럿 프로그램은 번번이 사장됐다. 그는 시시한 소프오페라와 <토마토 공격대> 속편 같은 영화로 20대를 소진했다. 이 시절 조지 클루니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브랫팩’ 대열에 끼지 못했고, <델마와 루이스>의 히치하이커 역을 엉덩이가 더 예쁜 브래드 피트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까지 그렇게 10년이 걸렸다. 조지 클루니가 집안 덕을 봤다거나 <E.R.> 한 작품으로 벼락스타가 됐다는 건 오해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도 조지 클루니는 ‘핀업스타’에 불과했다.
조지 클루니가 소더버그를 만났을 때
<E.R.>로 스타덤에 오른 뒤, 그는 한동안 정해진 수순을 밟았다. 다정다감한 닥터 로스의 이미지를 차용한 로맨틱코미디 <어느 멋진 날>을 거쳐, 액션블록버스터 <배트맨 & 로빈>과 <피스메이커>에 연달아 출연했다. 개런티도 1천만달러대로 치솟았다. 그러나 그를 VIP로 모셔간 <배트맨 & 로빈>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에게 “나쁜 시나리오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는 치욕스런 교훈만을 남겨줬다. 그는 블록버스터의 경제학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며, 수천만달러의 개런티가 어떻게 배우를 망가뜨리는지를 똑똑히 깨달았다. 그 즈음 스티븐 소더버그와의 만남은, 안개 속을 헤매던 조지 클루니의 시야를 틔워줬다. ‘감독’이 가장 중요하다는 깨달음. 자신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절박함. 1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얼굴을 내밀기 위해 <씬 레드 라인>(테렌스 맬릭) 촬영장에 달려간 것이나, <쓰리 킹즈>(데이비드 O. 러셀)의 개런티 절반을 자진 반납한 사실이나, 시나리오도 읽지 않은 채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조엘 코엔)에 출연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고, 그 작품들은 그를 담보로 제작이 성사됐다.
돈에 이어, 커리어도 그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지루했다고 할까. 영화의 제작 여부가 내 손에 달려 있었지만, 정작 나는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지 못했다. 할리우드가, 그 시스템이 좋은 시나리오를 죽이고 있었으니까.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나누며 친구로 가까워진 소더버그를 부추겨, 조지 클루니는 아예 영화사 ‘섹션 에이트’를 차렸다. 그는 자신의 안목과 이름값을 믿었고, 그렇게 섹션 에이트의 지붕 아래서, <인썸니아> <파 프롬 헤븐> <웰컴 투 콜린우드>와 관객의 만남을 주선했다. 조지 클루니가 캐스팅 디렉터를 자청한 <오션스 일레븐>은 그의 친화력 덕에 모인 드림팀의 선전으로 눈부신 결과를 낳았다. 척 베리스의 소설을 각색한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 <컨페션>의 4년에 걸친 방황에 종지부를 찍어준 이도, 연출과 조연 출연을 자청한 조지 클루니였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가 골라낸 작품들은 요령 부득의 작가주의를 지향하지도, 기존 대중영화의 소재와 화법을 반복하지도 않았다. 대중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션스 일레븐> <쓰리 킹즈> <표적> 등 그의 분신들은 유난히 강도와 절도 행각이 잦다. 그나마도 인정에 이끌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모습은 조지 클루니를 더욱 ‘인간적’인 미남배우로 각인시켜주었다.
방탕하지 않은 자유주의자 지난해, 조지 클루니는 데뷔 이래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참을 수 없는 사랑>과 <솔라리스>에 출연하면서, <컨페션>의 연출과 출연을 겸하느라, 양말 갈아신을 짬조차 내지 못했다. “타락할 시간조차 없다는 건 참으로 지루한 일”이라고 그는 회상한다. 아직도 오랜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바비큐를 해먹고 야구 중계를 보는, 그런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그다운 답변이다. 조지 클루니는 “여섯살 사내애처럼 자신의 유명세를 즐기는” 흔치 않은 스타지만, 동시에 자연인으로서의 사생활도 온전하게 사수할 줄 안다. 공인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도 없고, 내키지 않는 일을 공인이기 때문에 하는 법도 없다. 그는 자신의 우주에서 완벽하게 군림하는, 자유주의자다.
조지 클루니는 스타덤에 오른 직후, 자신의 사생활을 무단으로 침해한 연예 프로그램 <하드 카피>와 그 자매 프로그램인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을 보이콧하면서 이를 이슈화했고, 동료들은 물론 대중으로부터도 뜨거운 호응을 얻어냈다. 올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솔라리스>가 지루한 영화라고 깎아세운 기자에게 소심한 감독 대신 폭언을 퍼부어줬다. 무례하고 경솔한 언론을 그는 방관하지 않는다. 조지 부시를 비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라크 전쟁 반대를 목청껏 외치고, 대안적 리더로 민주당원 출신의 전 뉴욕주지사 마리오 쿠오모를 지지한 바 있다. 이런 정치적 발언은 ‘의식있는’ 또는 ‘지적인’ 배우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제스처가 아니다. 뭔가를 의도했다면, 그건 스타의 발언이라는 프리미엄이 얼마간 파장을 일으키리라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보편적이고 주류적인 가치를 체현하며, 목적 지향적인 행보를 보여온 톰 크루즈의 삶과 커리어, 그 정반대 지점에 이렇듯 조지 클루니가 있다. 둘 다 할리우드의 생리를 잘 알고 있지만, 가는 길은 달랐다. 조지 클루니는 ‘모범생’이 되는 대신 ‘잘 노는 아이’가 되는 쪽을 택했다. “나이가 들수록 난 자유로워지고 명쾌해진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영화 안에서는 자신을 지우고 부수느라, 영화 밖에선 대중의 사랑을 좋은 영화로 환원하느라 분주한 그의 행보가 꽤나 흥미진진해 보인다. 클루니, 네 멋대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