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순간 포착! <영어완전정복> 포토코멘터리 [2]
2003-11-07
글 : 권은주

8) 쉬 이즈 프로!

김성수

조민환 대표의 눈은 정확했다. 안젤라 켈리는 정말 프로페셔널한 배우다. 낯선 곳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음식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텐데, 늘 밝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다. 한국어 대사 연습도 어찌나 열심인지, 연출부와 제작부들에게 한국어 대사를 발음해달래서 각각의 특징을 분석하고, 공통점을 찾아 거기에 자기만의 연기를 섞는 식으로 준비를 해온다. 촬영 마치고 돌아갈 때 서운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9) A는 B가 아니고, B는 C가 아니지

이나영

감독님과 장혁이 담배를 피우러 또 밖으로 나간다. 감독님은 내가 연기나 캐릭터의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 꼭 “이나영씨, 모니터 좀 보러오세요”하고 존댓말을 하신다. 그런데 장혁에게는 “담배나 피우러 가자”라고 한다. 음…. 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는지 궁금하다. 여자배우인 내가 모르는 둘만의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음…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장혁

감독님이 또 “담배나 피우러 가자”라고 한다. 백화점에 들어온 이래 반복되는 상황이다. 감독님은 내가 설정한 대로 문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마음에 안 드나보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담배만 피우다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올 뿐이다. 내게 그 상황은 ‘네가 설정한 문수 캐릭터는 틀렸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감독님은 아실까? 결국 내가 ‘압력’에 못 이겨 감독님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게 연기하면 “그게 바로 정답”이라고 오케이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문수는 결국 감독님의 분신이란 말인가?

김성수

장혁이 속을 썩인다. --;; 어설프게 바람둥이 흉내를 내느라 자꾸 오버하는 연기가 나온다. 내가 원하는 건 너스레 떠는 바람둥이가 아니라 영주의 왕자님인데…. 어쨌거나 영주가 첫눈에 반하는 것을 누구나 이해할 만큼은 되어야 하는데, 사기꾼 같은 느낌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혁이는 이 캐릭터가 어려운 모양이다. 자기가 준비해온 아이디어와 설정을 자꾸 꺼내기에 자제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볼수록 괜찮은 놈이다. 연기도,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쑥쑥 늘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근데 이놈 연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단 말야….

10)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

이나영

목욕탕 세트에서 목욕을 하며 잠수하는 신을 찍었다. 스탭들이 온도를 맞춰주는 척하면서 목욕물에 막 손을 담갔다. 금방 물이 시커멓게 변할 수밖에. 그래놓고선 때가 많아 구정물이 됐다며 나를 놀린다. --; 목욕하면서 발을 까딱거리면서 <사랑의 이름표>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감독님은 내가 창피해할까봐 그랬는지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가리지 않고 다 <사랑의 이름표>를 불러보게 하셨다. 보기와 달리 꽤 세심한 감독님….

11) 꿈속에서 만나요

이나영

영주는 꿈에서도 영어에 시달린다. 낭만적인 꿈속에서조차 갑자기 특공대가 튀어들어온다. 이 신을 준비하면서 나는 영주의 꿈이니까 영주가 평소에 못 보여줬던 예쁜 모습, 그러면서도 엉뚱한 캐릭터가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현정 언니(스타일리스트)와 ‘망가진 오드리 헵번’ 컨셉으로 가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머리도 헵번처럼 올리고 빨간 드레스에 빨간 장갑을 끼었다. 장혁은 나를 보자마자 바로 쓰러졌다. 내가 너무 아름다워서냐고? 하도 웃어서 몸을 못 가눴단 말이다. ㅠ.ㅠ 게다가 장혁은 특공대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나를 인정사정없이 밀어붙였다. 촬영할 때는 웃기기도 하고 정신없기도 해서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양쪽 팔과 발등,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호오∼.

장혁

나영씨는 자기 꿈장면이어선지 신나는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드리 헵번처럼 분장을 하고 나타나서 나를 웃겼다. 오랫동안 갈래머리에 안경 쓴 모습만 봐서 그런지 오드리 헵번처럼 예쁘게 분장한 모습이(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큰 액션신도 아니었는데 하도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웃느라 계속 NG가 나서 촬영은 힘들었다. 특공대원으로 나온 두홍이 형(정두홍 무술감독)까지 영어로 대사를 하는 바람에 더 웃겼다. 브러더 두홍, 스톱 플리즈.

김성수

상상신 촬영에 나름대로 꽤 신경을 쓰고 있다. 누구나 꿈에서는, 자기만의 상상 속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 아무리 거지 같은 인간도 마음속으로까지 스스로를 비하하지는 않는다. 영주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는 눈치없고 엉뚱한 왕따지만, 꿈속에서는 영주도 예쁜 옷 입고 예쁜 모습만 보이는 주인공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가진 오드리 헵번’ 컨셉은 꽤 근접했다. 촬영하면서 다들 웃겨서 껌뻑 죽는다. ㅎㅎ.

12) 엘비스는 수평선 저 너머에

이나영

이번엔 문수의 꿈이다. 촬영지인 주문진 해수욕장에 오니 촬영엔 별 신경을 안 쓰고 서로 바닷물에 빠뜨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도 스탭들은 감독님을 무서워했는데, 내가 대희 오빠(조명부)를 부추겨서 감독님을 바다 속에 빠뜨렸다. 푸핫!

장혁

내 꿈장면. 수염도 붙이고 보석 반지도 주렁주렁 끼고 하와이언 셔츠에 흰 양복 차림으로 해변을 바라보며 섰다. 덧없는 세상, 나는 떠나리…. 누아르영화의 주인공처럼 피를 떠올리고 총을 떠올렸다. 그러다 이 외로운 마피아의 눈에 띈 인어 공주 같이 아름다운 해변의 여인! 내 마음속의 암흑을 물리쳐줄 사람은 오직 이 여자뿐! 이렇게 진지하게 컨셉을 잡아가는데 다들 웃기만 했다. --;;

13) 에브리보디, 베리베리 땡큐∼

이나영

크랭크업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자꾸 의식하면, 더 슬퍼질 것 같아서 그냥 평소처럼 말하고 행동하려 애썼다.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만나 촬영할 사람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촬영을 마쳤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장혁, 정말 장혁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절대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단순한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도 고마운 우리 스탭들. 여러분이 없었으면 저는 절대 코미디영화 찍을 수 없었을 거예요. 에브리보디, 베리베리 땡큐랍니다. 꾸벅∼.

장혁

이 영화는 한마디로 이거다. ‘이나영의 (연기가 아닌) 삶+김성수 감독님의 코미디 자아 발견+장혁의 가식적인 바람둥이 연기=<영어완전정복>.’ 내가 배우가 된 뒤 처음 찍은 영화는 <짱>이었다. 그리고 6년 뒤인 지금 찍은 영화는 <영어완전정복>. 그러면 내 6년간의 배우 인생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영어완전정복 짱’이 되네? 영어완전정복 짱!!

김성수

다들 마지막 촬영이 실감나지 않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촬영 준비를 한다. 나영이와 혁이만 메이킹 카메라를 들고 스탭들 코멘트를 따고 있다. 나영이도, 혁이도, 정말 많은 걸 해줬다. 고맙다. 그리고 우리 스탭들. 정말 이 맛에 영화하는 거다. <영어완전정복>을 괜찮은 영화로 완성시켜서 여기 영화판 한구석에 단단히 자리잡고 싶다. 그러자면 흥행이 잘되어야 할 텐데…. 그건 내 운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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