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계몽적이지 않고 재밌게,<여섯개의 시선>
2003-11-12
글 : 박은영
■ Story

여상 졸업반 선경은 취업에 중요한 것은 ‘외모 관리’라는 지도교사들의 닦달에 조바심이 난다. 쌍꺼풀 수술비를 벌어보겠다는 일념은 선경을 위험한 결단으로 내몬다(<그녀의 무게>). 이웃 감시 구조의 아파트에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 이웃의 오줌싸개는 소금을 얻어오라는 엄마의 명령을 따르느라 아파트를 헤매다 경계해야 할 ‘그 남자’의 집에 다다른다(<그 남자의 사정>). 뇌성마비 장애인 문주에겐 취직도 사랑도, 외출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리프트도 없는 지하도뿐인 광화문 네거리의 지상 도로를 무단 횡단하기로 한다(<대륙 횡단>). 아들의 영어 조기 교육에 열을 올리던 젊은 부부는 발음 교정을 위해 혀의 하단 근육을 잘라내는 설소대 성형술을 감행한다(<신비한 영어나라>).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운전자와 여성 매표요원 사이에 사소한 시비가 일고, 이는 ‘얼굴값한다’는 언쟁으로 번진다(<얼굴값>). 길을 잃은 네팔 노동자 찬드라는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행려병자 취급을 받고 보호소와 정신병원에 6년 넘게 방치된다(<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 Review

<여섯개의 시선>의 포스터엔 배우가 없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여섯 감독이 저마다 다른 포즈로, 저마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채로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있을 뿐이다. 감독들이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포스터는 처음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세울 만한 배우가 없었는지, 여섯개의 단편을 아우를 시각적 아이디어가 궁했는지 따져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설명은, 이 감독들의 명단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여섯개의 시선>의 단편들은 ‘차별’ 또는 ‘인권침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곤 서로 닮은 구석이 없다. “계몽적이지 않게 재밌게 만들자”는 것 정도가 합의된 사항일 뿐 장르도, 스타일도, 길이도 제각각이다. 각자 개성과 자율성을 발휘해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 만큼 이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니까 <여섯개의 시선>을 즐기는 방법은 이들이 인권이라는 동일 화두를 어떻게 ‘자기 식으로’ 풀어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일 터이다.

하나.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는 ‘용모 단정’의 필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 취업 전선에 뛰어든 여고생의 좌절을 따라잡고 있다. 학교와 사회는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를 권장하지만, 이는 집안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녀의 무게>는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경쾌하고 직설적인 코미디지만, 웃음의 끝맛엔 슬픔이 남는다. 출구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을 껴안아주던 임순례 감독의 품은 여전히 따스하다. 그리고 한결 넉넉해졌다. “저 뚱뚱한 아줌마가 감독이라구요?” 촬영장을 지나치던 행인의 한마디로 맺음하는 그 여유를 보라.

박진표 감독은 <신비한 영어나라>에서 영어 콤플렉스가 불러온 아동 인권유린에 초점을 맞춘다.

둘.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의 도전은 낯설고 야심차다. “보장받을 가치가 없는 인권이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 그가 품은 의문.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라는 민감한 사안을 골라잡은 그는 미래사회의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적 공간에 한번의 실수로 영원히 치욕의 낙인을 안고 사는 <주홍글씨>적 인물을 결합해, 매끈한 SF적 우화를 만들어냈다. 여느 우화와 달리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오줌 싼 아이의 옷을 벗긴 채 소금을 얻어오게 하는 벌칙과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제도에서 유사성을 찾으려는 시도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셋. 여균동 감독은 <외투> <내 컴퓨터> 등의 단편을 통해 인권이라는 주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대륙 횡단>에서 그는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대륙을 횡단하는 것만큼 힘겨운 장애인의 현실에 주목한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김문주씨의 일상을 따라잡은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각본’이 실종돼 있다. 외출을 하고, 사진을 찍고, 연애를 하고, 가족의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조차 힘겨운 일상이 십여개의 에피소드로 쌓이고 난 뒤, 영화는 리프트 없는 지하도뿐인 광화문의 지상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문주씨의 ‘1인 시위’를 따라붙는다. 이처럼 <대륙 횡단>은 ‘정공법’으로 만든 인권영화다. 현실로 현실을 이야기하기.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넷.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은 영어 콤플렉스가 불러온 아동 인권유린에 초점을 맞춘다. 낭랑하게 울려퍼지던 <알파벳송>이 R에서 막혀버린 것은 불길한 징조. 구강구조를 바꿔서라도 영어 발음을 좋게 해주겠다는 부모의 욕심은 어린 아들의 혀에 메스를 들이댄다. 아이의 울부짖음과 함께 적나라하게 중계되는 설소대 수술 실황은, 호러영화보다 끔찍한 공포와 분노를 전한다. 소재에 밝은 눈,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에 내디딘 발. <신비한 영어나라>가 <죽어도 좋아>와 같은 줄기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짐작게 하는 증거다.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은 일종의 ‘깜짝쇼’다. 박광수 감독은 ‘미녀’의 인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시되곤 한다는 이야기를, 호러의 틀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다섯.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은 일종의 ‘깜짝쇼’다. 그가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칠수와 만수> 같은 모양새가 될 것이다, 라는 안일한 예상을 보기 좋게 배반하기 때문. 기획단계부터 ‘가볍게’를 부르짖던 박광수 감독은 ‘미녀’의 인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시되곤 한다는 이야기를, 호러의 틀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차기작 <방아쇠>의 분위기를 가늠하게도 한다). 주차요원에게 ‘얼굴값한다’고 모욕을 준 운전자는 주차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그녀의 영정사진과 마주친다. 외모도 유령처럼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이 소름 돋는 결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여섯.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소재의 무게에 견주었을 때 미학적으로 대단히 자유로운 영화다. 행려병자로 오인받아 6년 넘게 한국의 정신병원을 전전한 네팔 노동자 찬드라의 실화는, 그가 거쳐간 관공서와 병원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현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시점과 시제다. 과거 찬드라의 시점과 현재 제3자의 시점이 공존하는 것. 90%가량을 차지하는 찬드라의 시점숏은 ‘당신이 나라면…’이라는 영문 제목처럼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무능과 무지, 오만과 편견에 관한 풍자코미디(이건 진정 코미디다!)는 네팔의 찬드라와 마주하는 에필로그에 이르러 조용히 옷깃을 여민다. 길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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