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회고전 열리는 칼 드레이어의 영화세계 [1]
2003-11-14
글 : 권은주
수난과 열정의 위대한 시네아스트

<메데아>는 노년의 칼 드레이어가 컬러- 그가 결코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영화의 한 영역- 이용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싶다는 큰 포부를 갖고서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으나 결국엔 성사되지 못하고 만 프로젝트였다. 유리피데스의 비극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드레이어의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중에 영화(TV용)로 만든 것은 같은 덴마크인 영화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였다. 이건 드레이어에 대한 폰 트리에의 흠모를 생각하면 사실 거의 자연스런 일처럼 여겨진다. 폰 트리에는 드레이어를 대단히 경배하다 못해 그와 텔레파시를 통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까지 주장하는 인물이니까 말이다. 그 실례를 몇 가지 들어보면 그 정도의 지나침이 거의 ‘광신’의 경지에 이르러 처음에는 우스꽝스럽다가 어떤 순간 이상한 경건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예컨대 폰 트리에는 자신이 기르는 개 역시 드레이어와 영적인 교분을 나누고 있어 드레이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짖는다고 주장했다. 언젠가 그는 드레이어가 <잔다르크의 열정>을 준비하는 동안 파리에서 샀던 턱시도를 구입해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 그것을 입곤 했었다. 그런 폰 트리에가 드레이어의 영화에 출연했던 나이 많은 배우들, 늙은 촬영감독, 심지어는 드레이어의 영화를 만드는 데 쓰였던 것과 같은 카메라까지 원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각각의 영화마다 스타일의 혁신을

그렇다면 드레이어라는 이 시네아스트, 현재의 덴마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폰 트리에의 영웅이며 역할 모델인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성급하나마 요약적인 짧은 대답은 무엇보다도 영화 자체로 돌아가서 이 둘의 영화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를 관망해봄으로써 도출될 수 있을 듯하다. 폰 트리에의 영화들, 특히 그의 초기 시절 이후 현재까지의 영화들에서 일종의 에센스 같은 것을 추출해보라면, 아마도 대담한 스타일을 이용하면서 인물의 감정에 몰두하는 영화라고 정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드레이어적인 자취 혹은 유산을 발견하게 된다. 폰 트리에가 열광했던 드레이어는 인간 감정의 영역을 중요한 탐구 주제로 삼았던 영화감독이었다. 단 드레이어에게 감정이란, 폰 트리에의 그것처럼 아주 강렬하지만 다소 공허하게 과장되어 있는 것, 그래서 센티멘털리티에 면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격전이 벌어지는 인간의 내면을 다소 고요하면서도 깊게 비추는 거울에 좀더 가까운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폰 트리에가 매혹되었던 드레이어는 형식적인 면에서 안이한 관습을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탐구한 시네아스트였다. 다만 드레이어가 지향한 스타일이란 폰 트리에의 그것과는 다르게 대담하긴 하되 종종 신심없어 보이기도 하는 센세이셔널리즘을 지향하진 않았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동시대 인물인 폰 트리에를 비교대상으로 놓고 이야기하자면, 요컨대 그의 영화세계에서 속류의 기미를 벗겨내면 드레이어 영화세계의 주요한 면모가 어슴프레 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장 뤽 고다르가 <비브르 사 비>(1962)의 한 장면에서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 것을 재차 언급하지 않더라도, 드레이어의 이 1927년작은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영화라고 말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우선 클로즈업에 대한 매혹 혹은 강박관념을 가지고서 혁신을 이뤄놓은 영화로서 우리의 기억에 값하는 영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과연 이 ‘클로즈업의 영화’는 마치 서로 싸움을 벌이는 듯한 수감자 잔다르크와 재판관들의 표정을 담은 클로즈업 숏들을 끊임없이 이어 붙여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서 공간의 전체 모습과 전반적인 위치 관계는 자연히 우리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고 크게 확대된 표정들에 담긴 고조된 감정들이 전면에 드러난다. 여러 비평가들이 이런 영화에서 지배적인 영화양식은 그저 컨벤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격정적으로 폭로하려는 거대하고 모험적인 시도를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잔다르크의 열정>이 보여준 이 강렬함에 그만 눈이 멀어 이 영화가 드레이어 특유의 스타일상의 인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분노의 날> <오데트> <게르트루드> 같은 드레이어의 후기 영화들에 이르면 <잔다르크의 열정>과는 형식적으로 완전히 딴판인, 그러면서도 역시 혁신적이라고 평가될 영화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후기작들에서 몽타주는 거의 배제되는 대신 롱테이크가 주로 활용되면서 결과적으로 굉장히 느리면서 우아한 걸음걸이가 느껴진다(이건 많은 이들이 드레이어의 후기작들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드레이어가 회고하기를, 어떤 덴마크인 평론가는 그의 영화들에는 그것들을 나눌 수 있는 적어도 여섯 가지 범주는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어서 드레이어는 그렇게 자신의 영화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자신만의 체계를 이룬 일관된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한 영화에서만 가치를 갖는 유일한 스타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드레이어의 초기 대표작인 <잔다르크의 열정>과 드레이어의 마지막 작품인 <게르트루드> 사이에는 37년이란 긴 시간의 흐름이 놓여 있는 만큼이나 큰 스타일상의 편차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일의 스펙트럼에서 멀리 놓여 있는 이 두 작품이 완전히 분리된 것들만은 아니다. 드레이어에게는 영화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자신만의 목표가 있었고 또 그걸 이룰 일종의 방법론 같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잔다르크의 열정>과 <게르트루드>는 다른 한편으로 서로 그리 먼 거리를 두고 있는 영화들이 아님이 밝혀진다.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

르네 마리아 팔코네티(<잔다르크의 열정>의 주연을 맡은 배우)의 생생한 얼굴에서 볼 수 있듯이, 드레이어는 자기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에게 분장을 절대 금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의 얼굴은 그 탐구가 결코 질리지 않는 하나의 대지”라고 이야기한 그는 인물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디테일을 관찰하고 그럼으로써 거기에서 자연히 한 인간의 영혼이 반영되기를 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기 영화 속의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그 주위 배경도 인물의 분장없는 얼굴처럼 최대한 현실에 밀착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드레이어는 그럼에도 결코 자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리얼리즘으로 귀착될 수 있는 자신의 세계에다가 드레이어는 거의 항상 추상화(abstraction)의 원칙을 도입해 그 리얼리즘을 중화해버렸다. 예컨대, <잔다르크의 열정>에서 흰색의 벽으로만 보여지곤 하는 리얼하지 않은 배경들과 지극히 양식화한 카메라워크는, 그 영화가 펼쳐지는 세계를 단지 재판이 벌여졌던 역사적 장소와 잔다르크의 내면적 투쟁이 벌어지는 현실 바깥의 어떤 시공간 그 사이에 위치해놓는다. 이건 단지 역사 속의 재판을 스크린 위에 재연하려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

드레이어의 다른 영화, 이를테면 <게르트루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충실하게 재현된 세기 초의 공기와 아울러 그것의 리얼리즘을 중화하는 세트와 카메라워크의 양식화는 이것이 몽상 속에 갇힌 세계- 바로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자리하는 세계- 임을 시각화한다. 이렇듯 드레이어는 리얼리즘에의 욕구와 그런 리얼리티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양식화에의 시도를 미묘하게 공존시킴으로써 그 자신의 세계를 그가 5차원이라 부르는 다른 차원(즉 심적인 것)에로 향하는 문을 열어놓는다. 그럼으로써 그의 영화는 외부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내면적인 리얼리즘을 향하면서도,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으면서 그렇게 하는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 드레이어적 세계에서 다뤄지는 감정은 한마디로 수난(혹은 고통)과 열정(또는 완고한 사랑)을 모두 의미하는 것으로 패션(passion)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담지자는 주로 여성들이다. 초창기 영화에서부터, 이를테면 <사탄의 책>의 마지막 장에서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핀란드 여인에서 보듯이, 드레이어는 여성들이 겪는 고난과 순교, 희생 등을 통해 인간의 심적인 면, 정서적인 면에 다가갔었다. 그의 영화들에서 남성들이 차지하는 영역은 권위, 법률, 말씀 등으로 정의될 수 있는 규칙의 세계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런 갑갑한 세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예컨대 <분노의 날>의 안느는 나이 많은 남편의 아들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성직자인 남편이 지배하는 엄격하고 무감각한 세계 그 바깥을 내다보게 된다. 한편 <게르트루드>에서 사랑을 일종의 이념으로 삼고 사는 동명의 주인공은 그런 자신과는 다른 신조를 가진 남성들과 (재)결합을 할 수가 없다. 그같은 드레이어 영화 속의 여성들은 다른 세계를 꿈꾸는 몽상가이면서 반역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순교자이다. 언젠가 <카이에 뒤 시네마>는 드레이어 영화의 사진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프랑수아 트뤼포의 1977년작 제목을 빌려)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런 별칭은 미조구치 겐지, 막스 오퓔스, 잉마르 베리만 등에 어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드레이어에게도 아주 적절한 것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드레이어가 자신이 사랑한 그 대상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손을 들어주는 무분별한 연인이 아니었다는 점은 여기서 꼭 지적되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앞에서 거론했던 <분노의 날>의 안느는 말씀의 권위에 희생당하는 가련한 여인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영화는 그녀에게 진짜로 마녀의 악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암시도 같이 흘림으로써 그녀를 일방적으로 연약한 선인/희생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게르트루드>의 여주인공 역시 입체적으로 살펴야 할 인물이다. 게르트루드는 마치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사는 듯하지만 그녀가 의지하는 사랑의 개념은 독선과 편견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결국 그녀가 선택하는 고독은 마치 스스로 벌을 달게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보듯, 이른바 대가라고 하는 이의 터치, 특히 인간과 그 감정을 다루는 그것에는 세밀함과 미묘함이 배어 있다.

영화를 열망하고, 영화를 위해 살다

언젠가 드레이어는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가질 때 “당신에게 영화는 무엇이죠?”라는 질문에 “그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위대한 열정(passion)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듯 드레이어의 영화세계는 패션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패션으로서 구축된 것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화에 특별히 애정을 갖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일단 자신의 천직을 찾은 뒤에는 그것에 위대한 열정을 갖고 임했다(그에게 자주 쏟아지는 완벽주의자 혹은 사디스트라는 비난은 그 하나의 방증이었다고 보면 된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탐구의 정신으로 가득한 그의 영화들은 그 자체가 드레이어라는 한 영화감독이 보여준 열정의 기록들인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무려 50여년에 이르는 긴 영화인생 동안 고작 열네편의 장편만을 내놓지 못한 ‘태만함’을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영화를 내놓지 못할 때조차 항상 영화작업을 해온 열정에 찬 영화감독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의 그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영화 <예수>를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로 여행하고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영화에 대해 가진 그의 열정의 너비를 일러준다. 그 프로젝트가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은 로베르 브레송의 <창세기>가 현실화되지 못한 것과 함께 영화사의 안타까운 공백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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