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타란티노의 귀환 [2]
2003-11-21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유창한 이야기꾼 혹은 거짓말쟁이

<재키 브라운>
<트루 로맨스>

타란티노의 ‘영화는 모두 다 혼돈인 채로 존재한다. 지금까지 봐온 영화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들어가 있다. 그의 영화제작 자체가 영화에 대한 트리뷰트 행위다’ .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들어낸 세계가 현실과 부딪치면, 그 세계는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타란티노가 <올리버 스톤의 킬러>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내가 쓴 것은, 약간 비현실적인 세계를 방랑하는 오락영화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만들었다. 영상만으로 본다면 굉장히 테크닉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한 뒤,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나의 시나리오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내 경우는, 설명하지 않은 채 그냥 놔둔다. 그는 테마를 보여주고, 주장하고, 영상으로 보여준다. 관객이 영화관을 나올 때, 무언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는 거다. 그는 고상한 영화를 찍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나는 오락영화를 찍는 것에서만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4와 1/4. 이것이 지금까지 타란티노가 만든 영화다.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재키 브라운> <포룸>의 한 에피소드. 그리고 <킬 빌>(아직은 1/2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을 떠올려본다면 뒤틀린 캐릭터와 신랄한 대사, 시제의 재편성, 복수(複數)의 주관(主觀), 맞물린 시공간 등이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건 무엇에 관한 이야기냐는 것이다. 여기에선 스토리가 모두다. 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은 스토리와 스토리 사이에 일어나는 것 즉 대화, 캐릭터들이다. 우선 인간에서부터 시작해 그들을 어떤 설정에 던져놓고, 그리고 뭐가 일어나는가를 지켜보는 것뿐이다.” 펄프 장르의 뻔한 전형적인 인물과 플롯에서 출발하지만, 전혀 의외의 사건과 감흥으로 드라마틱하게 달려나가는 것이 타란티노의 특기다. 자신은 이야기보다 이야기의 사이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이야기가 구축되는 지점은 바로 그곳이다. 그래서 타란티노는 위대한 이야기꾼, 혹은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쟁이 타란티노의 이력은 오래전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해 죽음을 꾸며내기도 했다. 배우 지망생 시절 이력서에는 고다르가 만든 <리어왕>에 출연했다는 거짓말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 영화를 안 볼 테니까 거짓말도 안 들킬 거라 생각해서”라고 태연하게 농담성 변명을 하는 그 순수함. 타란티노는 장 뤽 고다르를 대단히 존경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사의 이름을 고다르 영화 <외부인들>에서 가져왔고, <저수지의 개들>을 찍을 때에는 모든 스탭에게 <네 멋대로 해라>를 보여주면서 “할리우드 B급 범죄영화를 자신들 나름대로 리메이크했던 누벨바그의 방법을 나 나름대로 시도해보겠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말할 때마다 바뀌는 베스트 10에서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대신 짐 맥브라이드의 <브레드레스>를 슬쩍 올려놓는 위악을 떨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이야기’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올리버 스톤의 킬러> 프로듀서를 공격한다던가 하는 해프닝까지 포함하여 쿠엔틴 타란티노의 세계는 수많은 거짓말과 농담, 전설과 신화로 풍성해졌다. 어쩌면 그 모든 이야기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자신도 관객도 함께 즐기는.

경박하지만 깊이있는

<황혼에서 새벽까지>
<포 룸>

타란티노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로 영화를 만든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저 모방만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그의 영화는 번들거리는 포즈만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재키 브라운>까지 꾸준하게 전진해갔다. 타란티노는 영화의 소재 속에 자신의 경험을 집어넣는다. 비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진실한 어조로 들려주는 타란티노의 영화는 현실과 픽션이 절대 분리할 수 없는 긴밀함으로 엮여 있다. <펄프픽션>처럼, 시공간의 구조가 마구 맞물리는 듯한. “<저수지의 개들>의 녀석들은 뭘 해도 안 된다. 올바른 일을 해도 세상은 등을 돌리고 있고. 그걸 썼을 때, 난 내 작품의 영화화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영화로 먹고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란 생각에 필사적이었다. 10년 동안이나 그렇게 고전해왔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이, 모든 것이 예상과는 다르게 나와서,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운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남자였다. 그게 <저수지의 개들>에는 잘 반영되어 있다. 최악의 운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거다. 어긋난 기대의 연속으로 폭발 직전인 남자들의 이야기. 그런데 <펄프픽션>은 행운이 따르고, 자비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수지의 개들>의 뜻하지 않는 성공으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가 됐을 때 그걸 썼다.” 그 진솔한 고백처럼, 타란티노의 영화는 결코 그 자신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쿵후와 코믹북에 미쳐 있는 <트루 로맨스>의 클레런스가, 타란티노의 젊은 날의 자화상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허구적인 이야기와 나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뭉개버리는 방법’은 타란티노의 영화가 관객을 매혹하는 주된 이유다.

<펄프픽션>이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뒤에도 너무 경박하고 세상을 ‘유희’로만 바라보지 않느냐는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타란티노의 행보는 정말 종잡을 수 없었다. <데스페라도>와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멍청한’ 연기를 하고, 연극 <어둠이 올 때까지>의 연기는 ‘최악’이라는 비난을 받고, 그를 비난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싸움을 했다. 타란티노가 ‘원 히트 원더’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다수의 희망섞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재키 브라운>으로 역전 홈런을 날렸다. 전작들과 다르게 <재키 브라운>은 젊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며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중년 남녀의, ‘어딘가 삶에 지친 일상의 미묘한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타란티노의 최고작이라 할 <재키 브라운>은 그 천방지축의 타란티노에게도 ‘깊이’가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준 작품이다.

그는 영화광이다, 200% 확실한

그 이상으로 확실한 것은, 타란티노가 세상 그 누구 못지않게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감독의 조건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영화를 사랑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에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혹은 감독하는 것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사람들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폴 토머스 앤더슨, 웨스 앤더슨, 캐슬린 비글로…. 모두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작품에 나타난다.” 타란티노의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는 속도가 상당히 더딘 이유도 그것이다. “최근에는 더 작은 규모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찍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내가 찍는 모든 영화를 사느냐 죽느냐의 물건으로 만들고 싶다. 나의 지금까지의 ‘영화사’를 보면 알겠지만, 10년 뒤에도 모든 영화를 가리키며, 저 영화는 살아서 호흡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 영화는 만들어져야만 했었다, 그게 나에겐 전부다. 내 영화를 좋아하는 팬에게, 내 새 영화가 이전 작품과 비슷한 정도의 흥분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처녀작과 비슷할 정도로. 아직 안 본 팬들에게도 마찬가지고. 20년 뒤에 내 영화를 발견하면, 다른 작품들을 모두 보고 싶어질 정도로,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찍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킬 빌>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한없이 가벼운 스타일, 특히 아시아 무술영화의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 같은 것들은 단지 제스처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본 것은 <킬 빌>의 전반부뿐이다.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후반부를, 결말을 봐야만 한다. 수많은 비난들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한 가지만은 말하고 싶다. <킬 빌>은 타란티노가 말하는 ‘오락영화’다. <킬 빌>에는 타란티노가 좋아했던 수많은 영화와 CF, 만화 등의 기억이 현란하게 재현되어 있다. <킬 빌>을 보면서 내내 든 생각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타란티노가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였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세트에서 배우들의 연기지도를 하면서, 타란티노는 얼마나 기쁘고 벅찼을까. 그런 즐거운 마음이 <킬 빌>을 보는 내내 전해졌다. 그 순수한 열정, 그 단순한 유희정신이 일말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2편을 보고도 아쉬움이 지속된다면 곰곰이 따져보아야 할 일이지만, 지금은 그 유혈낭자한 오락을 즐기는 것이 우선이다.

타란티노가 말하는 ‘나의 베스트 장르영화’ #2

이탈리아 호러

<킬 빌>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지알로영화’(이탈리아의 대중영화)와 닮은 곳- 아마도 영상에서- 이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지알로 영화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루치오 풀치의 <사이킥>(The Psychic, 감독 루치오 풀치, 1977)인데, <킬 빌: Vol. 2>에 나올 브라이드가 땅속 관에 들어 있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제니퍼 오닐을 떠올리며 찍은 것이다.

홍콩 쿵후영화

홍콩영화는 말하자면 끝이 안 난다. <금연자>(감독 장철, 1968)의 장철 감독은 한마디로 홍콩의 존 포드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외팔이 시리즈로 유명한 왕우가 감독한 <외팔이 권왕>(감독 왕우, 1972)도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원화평이 성룡을 스타로 만들어준 <취권>(감독 원화평, 1977)도 다른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우선 생각나는 것이, <코피>(감독 잭 힐, 1973)와 <폭시 브라운>(감독 잭 힐, 1974). 잭 힐의 천재적인 연출과 복수심에 불타는 팸 그리어를 보고 있자면 가슴이 울컥 해온다. <맥>(The Mack, 감독 마이클 캠퍼스, 1973)은 <스카페이스>를 뒤집어놓은 듯한 느낌으로, 이 장르에서는 드물게 리얼한 감각이 좋다.

필름누아르

<아웃 오브 더 패스트>(Out of the Past,감독 잭 터너, 1947)는 로버트 미첨과 커크 더글러스의 조화가 끝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영화가 <환상의 여자>로 윌리엄 아이리시의 탐정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이것도 물건이다. 하워드 훅스 감독의 <빅 슬립>(Phantom Lady, 감독 로버트 시오드막, 1944)은, 이 장르에서 최고의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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