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타란티노의 귀환 [3] - <킬 빌> 감상기
2003-11-21
홍콩영화 키드 오승욱의 <킬 빌> 감상기

메이드인 USA의 義峽을 보다

<킬 빌>이 상영되는 극장 안, 뒤에서 누군가 끊임없이 껄껄 웃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웃음 소리인데? 거 참 많이 거슬리네…. 그는 거의 모든 장면을 껄껄거리며 보다가 마지막 결투장면에 가서는 “야, 이 영화 정말 웃긴다”라며 극장 안의 사람들이 다 듣게 말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물론 내 친구였다. 그는 홍콩 무협영화라고는 한편도 안 본 친구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와 마주치자 첫 마디가 “이 영화 정말 웃긴다”였다. “뭐가 그렇게 웃긴데?” 하려다가 나의 감언이설에 속아 귀한 시간을 쪼개 영화를 보러온 또 다른 친구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인다. 물론 그의 표정 역시 잘 봤다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과 친구들이 모여들고 우르르 몰려 커피를 마시러 갔다. 내가 눈치를 보며 자신없는 목소리로 “짝퉁이 짱깨 영화 봤으니까 이과두주에 탕수육 먹어야 하는 거 아냐?” 했지만 모두들 못 들은 척한다. 자리를 잡은 우리는 방금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고 모두들 열몇살 때 찾아다녔던, 70년대 삼류극장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친구들은 <킬 빌>보다는 그 영화를 보는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70년대의 어느 삼류 동시상영관에 와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들만 했다. 지구 저편에 비자가 없으면 못 가는 나라에서 만든 영화가 우리에게 70년대 삼류영화관을 생각하게 했다. 그거 진짜 웃긴다.

아시아 무협의 백미, 라스트 20분의 혈투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며 비웃겠지만, 나에게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멋있는 주인공과 그 반대편 또 다른 주인공과의 마지막 대결이라는 생각이 원초적으로 잠재되어 있다. 앞에서 전개된 이야기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 주인공의 감정선 따위도 저기 구석에 가서 혼자 등 돌리고 앉아주었으면 좋겠고, 영화의 마지막은 오로지 악당의 부하들과 싸우는 전희와 본격적인 삽입 섹스인 악당 두목과 주인공의 대결이다. 난 좀 그렇다. 내가 영화에 처음으로 매혹당하기 시작한 것은 홍콩 무협영화였고, 그 영화들은 거의 모두 라스트 20분을 대결투로 마무리한다. 피를 흘리며 배에 창과 단검이 꽂혀 무자비하게 죽어 넘어가는 대학살의 라스트 20분이 없는 장철 영화를 생각할 수 없고, 춤을 추듯 모든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대합전을 벌이는 호금전의 라스트 역시 20분이 안 넘으면 말이 안 된다. 피와 땀을 흘리며 손상당한 육체로 죽어 넘어지거나,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켜 석양을 바라보며 표표히 떠나가는 그런 라스트에 중독되어 인격이 형성되는 소년기를 보냈으니 어쩔 수 없다.

사실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은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도록 꾸민 장치들이 정교하지만, 주인공과 악당과의 대결이 10분 이상 넘어 가질 못한다. 추격전을 합해본다고 해도, 그들은 몇번의 주먹질이나 총 몇방으로 생사의 결투가 해결되니 마지막의 결투 신을 20여분 꾸밀 수가 없었고, 또 드라마를 중시하는 그들의 서사방식으로 보자면 주먹질을 20분이나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홍콩영화들은 경극에서 출발해서인지, 드라마를 이끌어갈 대사신 다음에 격투, 그 다음 역시 대사신 그리고 격투, 이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대난전, 그리고 주인공과 악당의 결투 뭐 이런 식이었다고 생각된다. 서양인들의 포르노가 그런 이야기 형식과 비슷한 것 아닐까 싶은데, 하여튼 중요한 것은 마지막의 대결투다. 관객은 홍콩 무협영화를 보러 들어가면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싸움을 얼마나 멋지게 연출하고, 우리에게 그 속에 빠져 주인공들이 흘리는 피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것이냐는 것이다. 친구는 라스트 30분의 청엽옥 결투가 감정이 실리지 않아 지루했다고 한다. 마지막 눈내리는 정원도 설득력 없이 마지막 싸움을 위해 억지로 그런 상황을 몰아간 것 같다며 구시렁거린다. 난 라스트가 죽이지 않냐고. 싸움이 멋지니까 다 용서가 되는 것 아니냐고. 설전이 오고가다 그러니까 니가 지금 그 모양이인 거야 하는 듯한 친구의 말투에서 그만 손을 들었다. 뭐 할 수 없지, 그렇게 생겨 먹은걸….

수다떠는 峽의 세계


많은 사람들이 타란티노 영화의 매력을 수다라고들 한다. 재미있게 수다를 떨기 위해 뒤에 할 이야기를 앞에다 갖다붙이고, 궁금하게 만들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찬탄을 뿜어내게 한다. 정말 그는 수다의 대왕이다. 나도 그의 수다에 매력을 느끼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다른 곳에서 타란티노의 영화를 좋아했었다. 그는 할리우드 감독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시아적인 의협을 이야기하는 감독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기사도라는 것이 아시아의 의협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내가 본 영화들 중, 아시아의 의협을 비슷하게 이야기한 서양 감독은 장 피에르 멜빌이 처음이었지 하는 생각이다(샘 페킨파의 영화에서도 협이 종종 출몰한다).

장 피에르 멜빌은 60년대 후반에 사무라이 검객과 킬러 알랭 들롱을 동일시하고 그를 검객의 자존심, 협을 손상당한 주인공으로 몰아 붙여 자살에 이르게 하는 <사무라이>를 만들었고, <레드 써클>에서는 의협으로 뭉친 범죄자들의 악몽 같은 몰살을 그려내고, <카사블랑카>의 의협판인 <리스본 특급>을 만들었었다. 멜빌이 사무라이나 수호지의 세계를 탐닉해서 그런 영화들이 나왔다면, 타란티노는 빈둥빈둥 백수 생활을 하며 사귄 건달 같은 친구들과 본 홍콩 무협이나 사무라이영화 비디오들 때문에 의협의 세계를 탐닉한 것 같다.

협이란 것은 그 태생이 왕조라는 절대폭력 속에서 독버섯처럼 생겨났고, 논리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격렬한 모습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내다움이라든가, 마초와는 거리가 먼 순교적인 느낌의 것이다. 협은 비겁함과 두려움, 배신과 술수 속에 피어나는 한순간 빛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이 가장 빛을 발하는 때는 모든 것을 잃으면서 어떤 것을 얻는 죽음의 순간에 불려온다.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픽션>에서 협의 냄새가 아우성쳤었다면 <킬 빌>은? 아시아적인 협의 세계를 얼마나 뻔뻔스럽게 수다떨까? 주인공의 육체가 땀을 흘리고 피를 쏟으면서 협을 강요하는 장철의 주인공들에 비교하자면, 글쎄다….

사무라이 영화에 바친다고?

이미 <킬 빌>에서 인용된 영화와 음악의 리스트야 고수들이 저마다 한 소리를 해서 더이상 열거하는 것이 뒷북이겠지만, 그 흥미로웠던 것은 <외팔이 드래곤>(외팔이 권왕, 독비권왕)의 속편 <독비권왕 대파 혈적자>(외팔이 검객)를 인용한 것이다. 고고가 가지고 싸우는 무기가 외팔이 왕우를 죽이려는 복수승 금강의 필살 무기 ‘플라잉 킬로틴’의 사생아인 것은 확실하고, 라스트 대난전에서 자신의 싸움을 준비하려 미닫이문 뒤로 사라지는 오렌 이시이의 뒷모습에서 잠깐 <독비권왕 대파 혈적자>의 주제음악까지 몇초 동안 사용되는 것을 보면 그 영화를 아주 좋아한 모양인데. 왜 속편보다 더 경배할 요소가 많았던 <외팔이 드래곤>이 아니었을까? 모를 일이다. 사실 웃고 즐기기에는 대단한 걸작보다는 좀 떨어지는 영화가 죄의식을 덜어줄 텐데, 그런 종류의 혼성모방인가? 어차피 <킬 빌> 1편은 사무라이영화들에 대한 경배라고 하더라.

하지만 청엽옥에서의 난전을 보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피가 튀고 머리가 잘려 피가 분수처럼 솟는 것만, 일본 사무라이영화를 닮았다. 좀처럼 일본 사무라이영화를 볼 수 없었던 나는 80년대 중반에 친구들과 여관을 잡고 한 이틀 틀어박혀 술을 마시다가, 여관에서 틀어주는 유선방송을 통해 처음 사무라이영화와 조우했었다. 물론 과감한 섹스신에 더 많은 흥미가 있었지만, 장철의 피바다를 통과한 나도 두눈 뜨고 보기에는 민망한 피바다가 연출되어 거의 질리곤 했고, 그 이후에 유명하다는 사무라이영화들 역시 기대와는 달랐다. 일본 최고의 라이벌 사사키 고오지로와 미야모도 무사시가 끝장을 본다는 <암류도의 혈투>를 보며 세기의 대결이 벌어질 거라 두근두근 기대를 했었다. 드디어 라스트! 앞으로 30분 동안 무사시와 고오지로가 싸우겠지. 나룻배에서 목검을 깎아 만든 무사시가 해안에 닫자마자 통성명도 없이(참 예의도 없다) 배에서 뛰어내려 칼을 겨누고 달려간다. 그러자 고오지로도 그의 긴 칼을 빼들고 무사시를 따라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을 달려간다. 그러더니 칼이 한번 번쩍하고 풀썩 사사키 고오지로가 쓰러진다. 뭐야 이거? 그들의 대결은 단 2분 정도였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어서 홍콩 무협영화를 볼 때처럼 ‘아직 안 싸우지?’ 하며 화장실 다녀왔더라면 그나마도 못 보고 말았을 뻔했다. 그 이후에 유명하다는 60년대의 <아들을 동반한 무사>(아기를 업은 늑대) 시리즈를 작심하고 보려다가 분수처럼 치솟는 피 때문에 질려서 단 한편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사람 반쪽으로 쪼개기, 이마 윗부분만 잘라내기, 무릎 위로 동강나버린 다리에서 분수처럼 피 솟기, 정말 체질상 안 맞아서 사무라이영화 순례는 일찌감치 포기했었는데….

어쨌든 이야말로 장르의 카오스

<킬 빌>에서는 사무라이영화에서 사람 죽이는 모든 장면이 컬렉션되어 보여진다. 심지어 사무라이영화에서 강간을 하다 혀가 동강나는 악당이 있었는데 <킬 빌>에서는 입술이 잘려나간다. 싸우는 모양새는 홍콩 무협영화인데 피가 솟고 죽어 넘어지는 건 일본 사무라이영화다. 그가 인용한 영화들의 냄새는 한결 같다. 아시아인인 우리가 걸작이라고 치부하는 그런 영화들이 아니라 좀 재미없어하던 아류작들뿐이다(우 탕 클랜이라는 미국에서 무협화를 파는 곳이 있다. 그곳의 리스트 대부분은 70년대 말 80년대 초, 정말 재미없어하던 아류 모방작들투성이로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의 왕호와 거룡이 주연인 한국영화도 홍콩영화로 둔갑되어 있었는데 미국 애들 취향이 그런 건지 아니면 싼값에 그런 영화들만 수입했는지 모를 일이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청엽옥 난전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갑자기 존 포드 유령이 출몰한다. 거구의 북군 장교 존 웨인이 총을 들고 부들부들 떠는 남군 소년병의 총을 빼앗아 엉덩이를 발로 차며 집에 가서 엄마 젖 더 먹고 오라는 장면이 있었다. <킬 빌>에서는 대사도 틀리지 않고 인용된다. 이거야 정말 카오스다.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쇼브러더스 영화들보다는 70년대 중반 이후 이소룡 붐 때문에 미국에 수입된 무협영화들과 일본 사무라이영화들만을 보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타란티노의 취향이 내가 정말 모르는 독특함 때문에 그런 이류 무협영화들만 가지고 혼성모방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킬 빌>이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점 때문에 나에게 <킬 빌>은 흥미롭다. 내가 광적으로 빠져들었던 그 세계를 타란티노가 대상화하여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기술적으로 너무나 훌륭하게(우마 서먼이 탁자 위로 올라서는 장면에서 나는 경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아시아영화들에서 대충 찍었던 저런 장면을 저렇게 균질하게 잡아내다니!).

홍콩영화에서 서양인들이 우스꽝스럽게 중국말을 하고 좀 비틀거리며 발차기를 하던 때가 있었다. 흑인들이 어쩡쩡하게 태권도를 흉내내는 그런 영화들도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시아인들이 기억 저편으로 치워버렸던 불균질덩어리 영화들을 들고 미국인이 돈 벌려고 날아들었다. 홍콩과 한국의 무협영화들을 불균질덩어리로 만들던 라스트 30분 대격투라는, 흥행카드가 될지 아니면 악몽의 카드가 될지 모르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이거야 정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래도 난 유가휘가 흰 수염을 날리는 사부님으로 나오는 2편이 보고 싶다. 빨리빨리….

글: 오승욱/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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