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2]
2003-11-21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박찬욱 감독 셀프 인터뷰

“아무리 짐승만두 못한 감독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씨네 | 우선, <올드보이>를 만들어놓고 제일 뿌듯해 하시는 부분은?

박 | 두 시간 안쪽으로 끊었다는 겁니다. 앞으로 봉준호, 이재용, 강우석, 이런 감독님들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주려구요. “어유- 어떻게 두 시간 넘는 영화를 만들어요, 그래? 나 같으면 힘들어서 못하겠네….”

씨네 | 그럼 <올드보이>는 정확한 러닝타임이…?

박 | 한 시간 오십구분 삼십팔초.

씨네 | (한숨 한번 쉬고)… 또 하나의 복수극이라… 물리지도 않나요?

박 | 왜- 여기서 실명을 밝힐 수는 없음을 이해하시고- ‘연애박사’ 허모 감독한테는 그렇게 안 물으면서 나만 갖구 그러나요?

씨네 | 그래도… 비슷한 영화 또 만들기가 그렇게도 싫다더니 이 어인 일인지요.

박 | 글쎄, 허진호도 자기가 비슷한 영화를 또 만들었다고는 생각 안 할걸요?

씨네 | 그렇다면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차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차이와 비슷한 건가요?

박 | 아, 거 왜 자꾸 죄없는 허진호 감독을 물고늘어지는 거요?

연달아 복수극 두편 만든 게 무슨 죕니까?

씨네 | 아니, 제가 언제….

박 | (손을 홰홰 내저으며) 아, 그대가 꼭 연애박사 허모 감독의 두편을 <봄날은 8월을 거쳐 크리스마스로 간다>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러든지 말든지…. 내 두편을 <복수는 올드보이의 것>으로 통칭하든지 말든지!

씨네 | 뭐 그런 걸 가지구 화를 내구 그러십니까?

박 | 내 말은, ‘주먹대장’ 류모 감독이나 ‘총잡이’ 강모 감독한테는 안 하는 질문을 왜 나한테만 자꾸 해대느냐 이겁니다. 연달아 복수극 두편 만든 게 무슨 죕니까? 아니 막말로, 내가 뭐 사람을 찌르기를 했어요, 무슨 사기를 쳤어요? 이래 뵈두요, 내가….

씨네 | (잽싸게 말을 끊으며) 아, 찌른단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올드보이>도 또 꽤나 잔인한 장면을 많이 담고 있다던데… 그런 게 그렇게 재미있으십니까?

박 | 남자 여자 만났다 헤어지고 뭐 그러는 얘기보다는 재미있습니다, 왜, 뭐, 불만 있나요? 연애박사 허모 감독은….

씨네 | (또 말을 끊으며) 언제까지 이렇게 잔인한 영화들만 찍을 생각인가요? 로맨틱코미디나 이런 쪽으로는 영 자신이 없으신가 보죠?

박 | 아, 박찬욱판 <영어완전정복> 말인가요? 폭력영화를 즐겨 찍던 감독이 방향 급선회해서 내놓은? 어허-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요, 별로 로맨틱하지는 않아도 코미디는 벌써 하나 찍었답니다. 일명 <네팔어완전정복>, 또는 <국가의 영광>, 때로는 <위대한 산>이라고도 불리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섯개의 시선> 중 하나의 에피소드죠. 참고로,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며 한마디, ‘여섯 마리 개들의 시선’이 아니라, ‘감독 여섯명의 시선’입니다. 이달 십사일 대개봉, 되겠습니다. ‘내 멋대로 찍었다, 네 멋대로 봐라’, ‘대표영화, 대표감독’. <장화, 홍련>의 명가 청어람 배급 전격 결정! ‘골라먹는 재미- 푸짐한 뷔페 같은 컴필레이션영화’. 즐거운 영화관람은 예매로….

씨네 | (얼굴에 묻은 침을 묵묵히 닦으며)… 끝났나요?

박 | 그러니까 제 말씀은, <올드보이>는 별로 잔인하지… 뭐, 좀 난폭한 장면이라고 해두죠… 어쨌든 그다지 난폭한 영화가 아니라 이겁니다. 시사 때 뒤에 서서 가만히 보면요, 극중 인물들이 뭐 좀 해보려고 그러면 바로 눈 가리기 모드로 돌입하는 여성분들이 더러 계시거든요? 근데요, 그거 다 불필요한 행동입니다. 괜히 아까운 연기만 못 보고 놓치는 짓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영화요, (적어도 비주얼의 차원에서는) 전혀 안 잔인합니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 때 데인 가슴, 다 이해합니다. 죄송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잔인한 장면이 많을까봐 <올드보이>를 안 보려고 하시는 분들,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저요, 인간 박찬욱,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 만든 게 무슨 전과도 아니고, 제게도 갱생의 길을 찾을 기회를 좀 주십쇼. <올드보이>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바로 제 심정을 표현한 말이죠. “아무리 짐승만두 못한 감독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씨네 | 그 짐승만두 못한 분이 어떻게, 배우들과는 잘 지내셨나요?

박 | 아항, 강혜정양과의 스캔들 얘기 못 들으셨구나? 어유, 그때 스포츠신문 막느라구 고생한 생각하면… 그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말이죠….

씨네 | (재빨리 끼어들어) 최민식씨는 어떤 배우죠?

박 | 재밌는데, 그 얘기… (반응이 없자, 마지못해)… 최 선배요? 글쎄요… 그의 얼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올드보이>는, 최민식의 풍모를 전시하는 일종의 갤러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씨네 | 최민식씨는 송강호씨와 어떻게 다르던가요?

박 | 강호씨가 드 니로 타입이라면 최 선배는 파치노 타입이라고나 할까요?

씨네 | 좀더 구체적으로….

최민식씨 얼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입니다

박 | 그냥 알아서 새겨들으세요. 예술가들끼리 비교는 무슨 비굡니까? 그저 최민식이라는 배우에 관해 이렇게만 말해둡시다. 그 헤어스타일 하고도 주책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십대가 그말고 누가 있겠냐고, 장도리로 남의 이빨을 뽑을 때조차도 따뜻해 보이는 사람이 또 어딨겠느냐고, 나는 훗날 <올드보이>를 오직 그와의 공동작업이라는 의미로만 기억할 거라고.

씨네 | 유지태씨는요?

박 | 그야 물론 길다는 거죠. 걸을 때 보면 꼭 젊은 날의 피터 오툴 같다니까.

씨네 | …길다구요? 그게 단가요?

박 | 그 말에 다 들어 있어요, 말은 길면 안 좋아….

씨네 | 그래두 몇 마디만 더….

박 | 정 그렇다면… (한참 생각하다가)… 가늘다는 거죠.

씨네 | 몸이 길면 가는 거 아닌가요? 같은 소리를….

박 | 어허- 몸이 아니라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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