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1]
2003-11-21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금지된 욕망, 과잉의 미학

박찬욱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 <올드보이>가 11월2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사는 단 한번뿐이었고, 영화의 내용은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올드보이>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우회적인 코멘트와 박찬욱 감독이 직접 보내온 가상의 ‘셀프 인터뷰’를 묶어 그 궁금증을 대신한다.

기억나는 대로 대사를 적어본다. 오대수와 이우진의 문답. “넌 도대체 누구냐?” “에이, 질문이 틀렸어요. 왜냐고 물어야죠.” “왜 날 가둔 거냐?” “아니죠,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가뒀을까, 가 아니라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풀어줬을까, 이렇게 물어야죠.” 이것이 <올드보이>의 미스터리를 푸는 방법론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오대수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8평짜리 사설감금소에 갇힌 이유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첫 번째 비밀의 문턱을 넘는다. 그리고는 15년이 지난 뒤 이유없이 오대수를 풀어준 이우진의 그 행동이 두 번째 더 큰 비밀의 문턱으로 우리를 이끈다. 영화 <올드보이>가 꽁꽁 싸매고 싶어하는 비밀이 이 두개의 질문 안에 들어 있다.

영화 <올드보이>가 아이디어를 빌려온 동명의 일본 만화 <올드보이>에서 재벌 카키누마는 초등학교 동창생 고지마를 10년간 사설감금소에 가둔다. 그리고는 10년이 지나서야 고지마를 세상에 내놓고 그를 조종한다. 카키누마가 고지마에게 그런 형벌을 내린 이유는 음악시간 그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던 고지마가 그 눈물의 의미를, 즉 고독을 함께 나눈 듯한 소통의 의미를 망각해버렸다는 배신감 때문이었다. 박찬욱은 오래전에 (봉준호의 소개로) 이 만화책을 읽었고, 한 남자가 오랫동안 감금 뒤 풀려난다는 초반 설정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갇혀 있는 사람이 할 일도 없이 자기 생활을 복습하는 면”을 추가해 넣었다. 영화 속에서 오대수는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왜 내가 여기 있게 된 걸까? 누구에게 어떤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내가 저지른 모든 악행들을 적어보자. 그러면서 이른바 ‘악행의 자서전’을 써내려간다.

최민식이니까!


이 오대수의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가 <올드보이>의 관건이었다. 박찬욱은 자신의 작업방식에서 처음으로 배우를 먼저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순서를 선택했다. “최민식이 아니었다면 영화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오로지 텔레비전만 보며(감금소 안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생활했던 오대수가 바깥으로 나와 뱉어내는 문어체의 대사는 누가 해도 실감나지 않을 거라는 걱정과 달리, 최민식은 “황량한 느낌 그대로였고, 기분좋게 어색한 면”이 있었다. 박찬욱은 이 점을 두고 “김기영 감독에 대한 오마주”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만족했다. 또한, 박찬욱이 그리고 싶었던 ‘영웅’, “힘은 부족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내면이 붕괴될 때까지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적격이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었고, 오대수의 상대역 이우진으로 유지태를 캐스팅했다.

“오대수의 힘으로 굴복시킬 수 없는, 굉장히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을 무화시킬 수 있는 사람, 흔히 로맨스영화에서 감미로운 역할을 하는 사람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의 결과이다. 이 두 배우의 대조적인 캐릭터는영화 속에서 긴장감 있게 어울리는 짝패이다. 감금소에서 풀려난 오대수는 무작정, 그야말로 무식하게 돌진하며 이우진을 찾아다닌다. 장도리 하나를 들고 18 대 1의 격투를 벌이고, 10개이든지 100개이든지 중국집을 뒤지며 군만두의 맛 하나로 갇혀 있던 장소를 찾아낸다. 그러나 오대수의 모든 행동반경을 주시하는 이우진은 침착하고 여유있다. 눈앞에 금방 내리칠 것 같은 장도리의 위협이 들어와도, 나를 죽이면 갇혔던 이유를 알지 못할 거라고 말하면서 오대수를 놀려먹는다. 분노하지도 않고, 미치지지도 않으면서 계획적으로 천천히 그를 유인하여 마지막 장소로 불러들인다.

그렇다면 다시.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감금했는가,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풀어주었는가. 감금과 출옥의 이유는 원작과 다르다. 그보다 더 슬플 뿐만 아니라, 더 폭발적이다. 여기에서 박찬욱은 원작의 설정들을 저 멀리 벗어난다. 오히려 여기에 닿아 있는 것은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이다(사실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사이에 연관성을 지으려는 ‘작당’을 와 <봄날은 간다> 사이에 연관을 지으려는 정도의 억지로 받아들인다. 셀프 인터뷰를 참조할 것).

<올드보이> vs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가 <복수는 나의 것>에 선형적으로 달라붙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관계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영감’은 앞뒤로 고리를 맺고 있다. 적어도 <올드보이>에 “영감”을 준 부분들이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박찬욱도 동의하는 듯하다. 캐릭터의 관계들을 따라가자.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에게는 누나가 있다. 동진의 회사에서 류가 쫓겨나고, 류는 누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신장을 떼어 판다. 그러나 장기밀매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회사 사장 동진의 딸을 유괴하여 대신 돈을 벌려 한다. 유괴 사실을 알게 된 누나는 자살을 하고, 동진의 딸은 물에 빠져 죽고, 동진은 복수극을 이행한다. 다시 동진에 의해 류의 여자친구 영미가 죽고, 류는 동진에게 죽고, 동진은 영미의 동지들에게 죽는다.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은 누나가 있(었)다. 과거 오대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의 관계에 ‘무언가’ 상처를 주었고, 누나는 죽고, 그 대가로 이우진은 오대수를 납치하여 사설감금업자들의 감금방에 가둬놓는다. 풀려난 오대수는 우연히 미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도움을 얻어 이우진에 대한 복수를 실행한다. 그러나 끝내 오대수는 이우진이 미리 짜놓은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대수는 말이 너무 많아요.”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말이 너무 없는 자’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어떨까?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15년 만에 풀어준 것일까? 이우진은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말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경찰서에 끌려들어간 오대수는 그러나 훈방조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우진이 말하는 공소시효 말소는 대한민국 법이 아니라, 이우진의 법이다. <복수는 나의 것>의 모든 인물들이 자신만의 사적 법으로 모든 것을 주관했던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15년이라는 세월은 죄값의 마무리였을까? 오대수가 15년을 감금당해야 했던 것은 대한민국 법이 용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간이 아니라, 이우진이 오대수가 진짜 아픔을 겪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15년을 갇혀 있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5년 뒤에 풀려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누군가’를 제외하고, 그 관계의 구도를 빌려 <올드보이>의 캐릭터를 이항시키면 이 동기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스타일상의 변화이다. “아마도 사전정보가 없는 외국인이 본다면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만큼 <복수는 나의 것>과 달리, <올드보이>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스타일을 추구한다. 오대수를 맡은 배우 최민식의 갈기머리는 곧 폭발할 것 같은 분노와 절망의 결정체이다. 그리고 오대수와 이우진을 대비시키는 색감의 분명한 대조가 이들을 구분한다. 또한, 남들 같으면 잘 쓰지 않으려 하는 보이스오버의 효과적인 선택과 인물들의 표정을 하나의 “장관”으로 만들어내는 클로즈업 등이 그렇다. 박찬욱은 덧붙여 스타일뿐만 아니라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계급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었다. <올드보이>에도 완전히 다른 계급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나오지만, 좀더 신화나 동화에 가까운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또 다른 차이점을 설명한다.

'원형적 욕망'을 둘러싼 미스터리


박찬욱은 이 ‘원형적 욕망’의 금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복수극으로 <올드보이>를 만든 것이다(이것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가장 개념적인 대답이다). 그는 일렉트라와 판도라의 이야기를 가져와 그리스 비극의 모티브를 반복하면서, 한편으로는 파멸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잠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구약성서적 세계관이 그 안에 녹아들어가기를 바란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새가 그물을 벗어나듯이.” 여기에 또 다른 격언들이 따라붙는다. 영화 속에서 그 격언들은 일종의 예시이자, 은유이자, 플롯상의 암시로서 떠돌아다닌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식으로. 박찬욱은 그 격언들 중 마지막 격언, 즉 가장 어깨에서 힘을 뺀 세속적 격언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드보이>는 대략 대칭과 반복의 형식으로 서 있다. 어느 정도까지 쫓아오게 만든다. 캐릭터의 관계(거울로 서 있는 오대수와 이우진)가 그렇고, 상황(첫신의 자살남과 오대수, 육교 위에서의 이우진과 이수아)이 그렇다. 또한, <올드보이>에는 도상을 통한 암시(우산, 손수건, 상자, 치마의 같은 무늬)가 있고, 수수께끼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소품들(‘실비아 플라스’의 책을 읽고 있는 수아)이 있다. 그러나 순간이 되면 머리로 세워놓았던 대칭점을 깨버리거나, 무너뜨리고, 빼버리면서, 해석들이 그 공터 안으로 들어와 자기네끼리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박찬욱도 이 영화의 말미에 불분명한 지점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그렇지만 이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원형적 욕망’앞에 놓인 딜레마라고 주장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상황에 놓인. 이런 이유일 수도 있다. 박찬욱은 ‘복수’가 ‘연애’만큼 세상에서 얼마든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자들이 하도 되물어 ‘복수 삼부작’이 될지도 모른다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복수의 정의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많듯, 복수에 대한 정의도 그러할 테니까.

사실 <올드보이>에 대한 이야기는 ‘알아먹기 편하게’ 좀더 쉽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관객이 미리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결론을 내비치지 않고서는 많은 부분을 말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질문을 잘해야 한다. 이 영화가 정작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타당하지 않은 질문이다. 대신, 이 영화가 지금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아야만 한다. 이제 곧 불이 붙을 것이다.

<올드보이> 초미니 제작일지

이모저모갈기머리 하는데 5시간 걸렸어요

캐스팅 박찬욱 감독은 그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으로 최민식을 선택했다. 최민식 역시 나이 불혹에 ‘액션배우’로 등극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0kg을 감량하고, 5시간에 걸쳐 갈기머리를 하고 오대수 역에 뛰어들었다. 이우진 역의 유지태는 시나리오를 받고서는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꼭 출연하고 싶습니다.” 최민식이 그 문자를 받았다. 긴 팔, 긴 다리로 박찬욱 감독의 마음을 휘어잡은 유지태, 하지만 양복에서 셔츠 일체까지 그 긴 몸 때문에 모든 옷은 맞춰 입어야만 했단다. 미도 역의 강혜정. <나비>에도 출연한 적이 있던 그녀는 300명의 지원자 중 박찬욱, 최민식, 김지운, 설경구의 특별 심사위원단으로부터 동시에 엄지손가락 선물을 받은 ‘똑똑한 배우’.

세트디자인 64층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우진의 펜트하우스. 창 너머로 보이는 배경을 만들기 위해 108평짜리 거대 세트의 배경사진이 사용됐다. 총제작비만 4천만원. 도저히 미술팀과 세트팀만으로는 세울 방법이 없어서 옥외배너 전문가들이 출동하여 겨우 세웠다. 그러니까 이우진의 펜트하우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편 수직의 선을 강조하여 만들었다는 이우진의 펜트하우스에는 온갖 명품들이 즐비하다. 나오지는 않지만 크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PDP, 특수 제작된 유리 장롱. 이우진의 취미를 보여주는 카메라 30여점. 그 가격만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또 시가 3천만원짜리 오디오세트와 몽블랑 만년필까지 그 모두가 명품이다.

보안 <올드보이>의 결말 숨기기 노력은 대단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스탭 계약서에는 절대 이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문항도 있었다고 하니. 결국은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하는 법적 수준까지도 서로 인정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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