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원조 갱스터와 필름누아르를 교배한 <무간도2> [1]
2003-11-28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글 :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홍콩 누아르의 영광이 돌아오는가?


진가신의 <첨밀밀>은 홍콩영화 특유의 호들갑스러움을 등졌었다. 디아스포라(이산)의 상흔이 개인에게 착지한 묵직한 로맨스였고, 영화는 성공했다. 왕가위의 <해피투게더>나 <화양영화>, 더 거슬러 <중경삼림>도 허공에 뜬 냉소나 절망은 아니었다. 이 진지한 낭만주의는 자신에게 열광하는 대중을 목격했으나 쇠락하는 홍콩영화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무간도>라는 한편의 영화에서 드디어 탈출구를 찾은 것마냥 홍콩이 들썩거렸다. 누아르라는 장르의 힘 때문이었다. 마침내 홍콩 누아르의 영광이 되돌아오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 같은. 정작 ‘홍콩 누아르’라는 이름을 붙여준 한국에선 침착했다. 홍콩 누아르의 재림이라기보다 아련한 향수를 세게 자극해준 일종의 돌연변이쯤으로 받아들였다. <무간도2 혼돈의 시대>(12월5일 개봉)는 우리에게 좀더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 같다. 홍콩 누아르에 어떤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라고. 그게 무엇인지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특히 1, 2편의 각본을 쓰고 공동연출을 함으로써 <무간도> 시리즈의 ‘결정적 배후자’로 떠오른 맥조휘 감독과 서둘러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장르를 거론하기에 앞서 <무간도2 혼돈의 시대>는 속편의 완성도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게 마련인 추측을 확실히 ‘배반’한다. 대개의 속편이 취하는 방법처럼 1편의 전사(前史)를 담았지만, 1편과 전혀 다른 스타일과 꽉 짜인 이야기로 뒤통수를 후려친다. 2편은 시간과 캐릭터의 흐름에선 1편과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지만 완전히 다른 영화다. 장르로 따져보자. <무간도>는 홍콩 누아르의 피를 타고났지만 가문의 구습과 분명한 거리를 뒀다. 과장된 비장미나 발레같이 안무된 우아한 총격전은 제거됐다. <무간도2…>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식된 피의 근원을 찾아간다. 미국의 갱스터와 그 서브 장르인 필름 누아르로. <대부>를 떠올리게 하는 많은 장면들이 그렇듯 <무간도2…>는 홍콩 누아르이면서 홍콩 누아르가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임영동의 <용호풍운>에서 <저수지의 개들>을 가져왔다고 공언하고, <킬 빌>이 홍콩과 일본의 수많은 영화의 인용이라고 자랑해도 결국은 훌륭한 다른 영화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무간도2…>는 정치적으로 교묘한 수를 놓은 영화 같다. 내용이 정치적이라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의 위치가 그렇다. 두편의 이야기가 갈리는 분기점은 97년 홍콩 반환이다. 중국으로 귀속된 97년 이후가 배경인 1편은 아주 밝고 세련된 MTV식 누아르였다. 홍콩이란 도시도 그렇게 그려졌다. 반면 <무간도2>에서 금융자본주의의 번영을 구가하던 97년 이전의 홍콩은 극단적으로 느껴질 만큼 어둡고 지저분하며 암울하다. 관습적으로 보면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애초부터 3부작으로 출발한 게 아니니, 이런 대비는 그냥 무계획의 산물이라고 치자. 그런데 <무간도2…>가 홍콩 누아르의 관습을 버리고 원조 갱스터와 필름 누아르로 멋지게 ‘투항’했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홍콩 누아르는 필름 누아르에 중국 고유의 무협적 전통을 가미해 탄생했다. 스타일화된 액션을 빼면 홍콩 누아르는 필름 누아르와 별 상관없지 않느냐는 시각마저 있다. <무간도> 시리즈가 영화의 계보학, 혹은 장르의 지형도에서 어떤 길을 가려는지 그래서 궁금해진다.

<무간도> 시리즈의 계보학


<대부> 3부작에서 코를레오네 패밀리를 위협하는 도전자와 배신자는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처형을 당하곤 한다. 처형의 순간은 아주 짧다. 웅장한 건 그 응징에 이르기까지의 긴 서사다. 그 끝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스타카토의 마무리가 강렬한 쾌감을 줬다. <무간도2…>는 <대부>의 이 관습화된 기법을 능숙하게 써먹는다. 돈 코를레오네가 저격을 받은 뒤 붕괴 위기에 처했던 것처럼 삼합회의 오랜 보스 곤숙이 암살되자 곤숙의 패밀리는 위태롭다. 그 아래에 있던 침사추이의 4개파 보스들은 세금 내기를 거부하며 항명의 움직임을 보인다.

예외는 또 다른 중소 보스 한침(증지위, 1편에서 유건명을 경찰 스파이로 키웠던)인데 그는 곤숙에 대한 충성을 걷어들이지 않는다. 코를레오네 가문을 구하는 인물이 갱스터의 풍모와 거리가 멀었던 세째아들 마이클이었듯 여기서 곤숙의 패밀리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학구적 풍모를 풍기는 둘째아들 예영효(오진우)다. 여기엔 4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아버지의 네 번째 기일이 디데이다. 예고된 그 집단 처형식이 특히 닮은 것은 <대부> 3편이다. <대부> 3편의 마지막 시퀀스는 바티칸 주교를 포함한 실력자들에게 각기 다른 암살자를 보내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정치와 종교와 마피아가 연합해 또 다른 헤게모니를 구축해가던 반역의 형세는 일순간에 뒤집어진다. 예영효가 한침을 포함한 5개파의 보스를 제거하는 방식이 딱 이것을 닮았다. 홍콩 반환 시점인 2년 뒤에 밝혀지지만 <대부>와의 차이점은, (스포일러 주의!) 그중 한명이 생존에 성공해 삼합회를 접수하는 또 하나의 역전극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1편보다 많아진 캐릭터들은 더 넓고 깊어졌다. 각 캐릭터는 한번 구축되면 분할된 자기 공간에서 자기 논리를 가지고 기막히게 살아 움직인다. 1편의 주인공은 삼합회에 잠입한 경찰 진영인(양조위)과 삼합회의 조직원으로 경찰에 잠입한 유건명(유덕화)이었다. 이들의 아버지 격인 황지성 국장(황추생)과 삼합회 보스 한침은 주연급 조연이었다. 이번에는 뒤바뀐다. 2편에도 젊은 진영인(여문락)과 유건명(진관희)이 나오지만 주인공은, <대부2>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그랬듯, 아버지들인 황 국장과 한침, 그리고 예 회장이다. 여기에 팜므 파탈 아닌 팜므 파탈로 한침의 아내 메리(유가령)가 가세한다. 갱이냐 경찰이냐 하는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황 국장과 한침의 관계는 모종의 협력관계에 있는 것으로 암시된다. 흥미로운 건 거꾸로된 듯한 그들의 ‘전사’다. 1편에서 단호함과 현명함이 잘 어울렸던 황 국장은 법을 초월한 냉혈한에 가까우며, 인간적 면모라면 갱스터 한침에게서 더 찾아진다.

홍콩 누아르의 전통과 변주


<무간도2…>가 홍콩 누아르의 전통을 가장 잘 활용한 요소는 ‘복수의 테마’다. 진영인이 끊임없이 경찰로의 ‘복귀’를 원하지만 스파이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황 국장은 살인 교사도 마다않는 ‘복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침과 예영효도 같은 굴레에 묶여버린다. 그래서 “모든 복수는 자멸의 드라마”라는 박찬욱 감독의 코멘트가 적확한 건 <올드보이>가 아니라 <무간도2…>처럼 보인다.

선을 향한, 의리를 향한 최소한의 의지는 설 곳이 없다. 비극의 팡파르를 울리기 위한 ‘포매팅’이 끝나면, 프레임에는 낭비가 없다. 가속도만 붙을 뿐이다. 혹 누군가 자비를 베풀고 싶고, 그럴 위치에 있어도 그는 그걸 허용할 수가 없다. ‘복수의 테마’라도 지독하게 냉정한 것이 <무간도2…>를 옛 홍콩 누아르와 차별짓는 지점이 된다. 홍콩 누아르의 최후가 비극적임에도 대중의 선호도가 높았던 건 그 운명이 일종의 장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간도2>는 비극적 운명이 장식물이라는 걸 자각할 틈을 좀체 주지 않는다(단, 4개파 보스들의 회동이 동네 양아치 아저씨들의 계모임 같은 분위기를 낼 때, <대부>의 결혼식 에피소드를 예 회장 딸의 생일파티 에피소드로 끌어올 때, 예 회장의 심복이 처형식을 거행하며 하모니카로 <올드 랭 사인>을 연주할 때는 ‘깬다’). 이어지는 복선들과 역습의 재역습을 머리 속으로 부지런히 계산하다보면 어느덧 지옥 중의 지옥이라는 무간도에 와 있다.

복수의 테마와 더불어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극히 작고, 쌍둥이 영웅이 변주된다는 점에서 <무간도> 시리즈는 홍콩 누아르를 닮았다. <영웅본색>의 주윤발과 적룡,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으로 짝지어지듯 <무간도> 1, 2편은 양조위와 유덕화, 증지위와 황추생이라는 반영웅의 짝패를 만들었다.

의리와 영웅은 없다

그렇지만 <무간도> 시리즈는 옛 장르 규칙을 분명하게 위반한다. 치밀한 플롯과 캐릭터보다 감정을 중시하던 기조, 갱들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경찰의 지위는 부정되거나 복원된다. 무엇보다 남성들의 결속이란 신화가 철저히 해체된다. <영웅본색>의 비극적 엔딩에서 “사나이 죽는 보람은 오직 의리뿐”이라며 “의로운 죽음”을 찬양하던 노래는 설자리를 잃었다. 의리와 영웅은 더이상 없다. 또 <영웅본색>에서 아버지와 형제를 향한 혈연의 뜨거움은 의리만큼이나 중요했다. <무간도2…>는 그걸 차디차게 식혀버린다.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는 스타일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쓰는 방식이 다르다. 예컨대, <영웅본색>과 <용호풍운>에서 주윤발의 죽음은 예고되긴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장엄하게 펼쳐졌다. <무간도>에서 황추생과 양조위의 죽음은 조금도 예고되지 않은 채 천둥처럼 뇌리에 와서 꽂힌다. 2편에서도 마찬가지다. 홍콩 누아르를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게 만든 시각적 스타일은 1편에선 유효했으나 2편에 이르러 그나마도 절연하겠다는 태도다. 음산하고 불균형적인 누아르의 세계를 그려가는 2편의 카메라 각도, 편집 리듬, 색감, 명암 대비는 1편과 완전히 딴판이다.

<무간도> 1, 2편에는 자본주의와 결탁한 정치에 대한 은유나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없다(홍콩 반환과 조직과 경찰의 권력 교체가 상징적으로 겹쳐지긴 하지만). 이 점에서 <무간도> 시리즈는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갈라선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재등장하고 여명이 합세하는 <무간도3>가 또 어떤 지도를 그려갈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간도2…>에 이르러서는 홍콩 누아르의 진화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 돼버렸다.

퀴어적 혼돈으로 가득한 <무간도2>

왜 저들은 키스를 하지 않는 거지?

퀴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하여 퀴어의 존재는 읽히지 않는다.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무간도2 혼돈의 시대>를 게이다(게이+레이더)의 시선으로 읽어보면, 숨어 있던 사랑이 커밍아웃을 한다. 과연 <무간도2>는 홍콩 누아르의 적자답게 사나이의 우정으로 포장된 애틋한 동성애가 곳곳에 숨어 있다. 더구나 이전의 홍콩 누아르와 달리 의리의 힘을 믿지 않으니 사랑의 감정은 더욱 도드라진다. 혹시 무간도는 게이 공동체가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의심을 찬양한다, 는 브레히트 선생의 유훈에 따라 <무간도2>를 퀴어영화로 읽어보자.

우선 중년 커플의 로맨스가 가슴 시리다. 경찰동료인 황 국장과 육 국장은 환상의 커플로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삼합회 일망타진의 거사를 앞두고 황 국장이 배신한다. 자신이 삼합회에 심어놓은 스파이에 대한 정보를 육 국장에게 숨긴 것이다(알고보면 이것도 사랑하는 이의 안전을 위한 배려다). 육 국장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황 국장을 스토킹하기로 결심한다. 황 국장의 새로운 ‘파트너’인 젊은 스파이놈의 실체를 모르고서는 불면의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육 국장은 끈질긴 스토킹 끝에 버스 안에서 황 국장과 젊은 놈의 밀회 현장을 발각한다. 그리고 묻는다. “넌 누구냐”, “전 경찰인데요”. 순간 육 국장의 얼굴에서 해맑은 미소가 떠오른다. 의심을 푼 것이다. 그리고 “2주를 따라 다녔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두 커플은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황 국장이 예 회장 아버지의 살인을 교사했음이 알려지고, 황 국장은 깊은 좌절에 빠진다. 이번에도 육 국장이 애원 끝에 황 국장의 현업 복귀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꽃시절도 순간. 육 국장이 황 국장의 차에 타자마자 폭발물이 터진다. 삼합회가 황 국장을 노려 설치한 폭발물이 육 국장을 덮친 것이다. 황 국장은 사랑을 잃고 오열한다. 처절하게 오열한다. 그리고 독한 복수에 나선다.

영화 속에 지워져 있는 두 사람의 가족 배경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다. 영화는 두 사람에게 부인이 있는지 등을 말하지 않는다. 반면 둘이 등장하는 장면에는 에로틱한 긴장이 스며 있다. 둘이 마주 볼 때마다 너무 애틋해서 ‘왜 저들은 키스를 하지 않는 거지?’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다음은 진영인과 예영효의 이복형제의 애증 아니 애정의 스토리다. 진과 예의 관계는 보스와 스파이 부하의 애증이라는 무간도의 기본 공식에 대입해보면 드러난다. 여건명은 한침에게 보스로서 ‘애’를 품고,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으로서 ‘증’을 품는다. 마찬가지로 진영인은 예영효에게 이복형제로서 ‘호부호형’하지 못해온 ‘증’을 품는다. 진영인이 예영효에게 품고 있는 ‘애’의 실체는 형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드러난다. 예영효가 진영인의 보스인 황 국장의 총에 맞아 죽는 순간, 진영인은 피 흘리는 예영효를 가슴에 품고 처절하게 오열한다. 그 처절함은 진영인이 예영효에 대해 영화 내내 유지해온 냉정한 감정선을 한꺼번에 허물어뜨릴 정도로 뜨겁다. 예영효의 간절한 눈길도 연인의 품에서 죽어가는 자의 그것이다. 이 장면 이전에도 두 형제가 등장하는 신은 상당히 ‘플라토닉’했다. 속살거리는 대화와 응시하는 눈빛에는 중년의 스승과 젊은 제자 사이로 오인되기 십상인 은밀한 플라토닉 러브가 숨어 있다.

<무간도>의 기본 구도는 ‘(경찰인) 나를 찾고 싶어하는’ 진영인과 ‘(조폭인) 나를 숨기고 싶어하는’ 유건명의 대결로 볼 수도 있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면서,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하는 것은 대부분의 퀴어 심리 아니던가. 퀴어적 혼돈으로 가득한 <무간도2>. 3편에서는 그들의 키스를 허하라. 우정과 애정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정 만세!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