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 목에 칼 들이대는 직업 매력적 아닙니까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1년 정도 일했던 임찬상 감독은 “집에서 쫓겨날 각오하에” 사표를 쓰고 영화아카데미 13기로 입학했다. 이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조감독과 “김태용, 민규동에서 조근식, 이수연까지” 다른 동기들이 속속들이 감독을 데뷔하던 ‘암흑기’를 거쳐 1년 동안 도서관에 출퇴근하면서 쓴 <효자동 이발사>라는 (송강호의 말에 따르면 “놀라운”) 시나리오와 함께 광명을 찾았다.
이발사라는 직업을 설정한 이유는. 처음에 요리사를 할까, 운전사를 할까 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는데, 이발사라는 직업이 누구보다 밀접하게 대통령과 상대할 수 있고, 시각화하기도 재밌다고 생각했다. 또한 면도를 하기 위해 통치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 극적인 긴장감도 살릴 수 있고.
쉽게 짐작할 순 있지만 영화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박정희를 그저 ‘통치자’라고 칭하는 것도 그렇고. 우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비겁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그 시절의 구체적인 자료들을 접하며 사건의 심각함에 놀란 적이 많았다. 그러나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건을 접하며 느꼈던 내 느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픽션화하는 것이다. 만약 ‘사건전달’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겠지. 결국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들어오되 영화적인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 사이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최근 사회적으로 박정희에 대한 향수어린 시각들 터져나오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고, 이 영화 역시 개봉 뒤 그런 논란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다.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란 걸 안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런 말을 안 하겠지만 삐딱한 시각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엔 보통 나이드신 분들이 많다. 특별히 그 시대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않았던 사람들인데, 오히려 시대로부터 피해를 받았다면 받은 사람들인데, 왜 그 시절의 통치자를 옹호하려드는 걸까? 나에겐 그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 세대에 대한 아이러니 속에 성한모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아들의 내레이션은 이후 통치자의 손에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적 긴장감을 일부러 해소시킨 듯하다. 아들의 내레이션 부분은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아직 완전히 결정난 건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아들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란 사람이 성인으로 겪었던 시대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효자동 이발사>는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시각의 영화다.
촬영이 절반 가까이 진행되었다.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드는가. 그저 문자였던 시나리오가 배우들의 입과 몸을 통해 표현되는 건, 마치 앙상한 뼈대 위에 살이 붙고 피가 도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경이롭다. 오히려 시나리오에서는 보이지 않던 장점들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