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2]
2003-12-12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상상 속의 영국, 환상 속의 미국

<블랙애더>

이유야 무엇이건, 영화작가 리처드 커티스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이후 좀더 이해하기 쉽고 일관성 있는 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여왔다. 그 세계는 너무나도 영국식으로 괴팍한 친구들에 둘러싸인, 휴 그랜트처럼 조금 어벙한 중상층 영국인이 이국에서 온 화려한 여인에게 더듬더듬 사랑을 고백하는 곳이다. 이 세계는 몇 가지 면에서 놀림받기 딱 좋은 곳이다. 특히 동료 영국인들에게는.

커티스가 그리는 세계는 징그러울 정도로 영국적이어서 거의 영국 같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실제로 수많은 영국인들은 리처드 커티스가 그리는 영국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예의바른 중산 계급만으로 구성된 그 비폭력적이고 깔끔한 세계는 너무나도 스테레오 타입화해 있어서 영국을 어느 정도 잘 아는 미국인이 썼다고 해도 믿을 만하다. 그곳은 살아 숨쉬는 영국이라기보다 관광 명소로서의 영국이다. 커티스가 본격적으로 작업한 세편의 워킹타이틀 영화들(<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이 모두 국제적으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조작된 이미지 때문이었다. 커티스의 세계는 BBC 고전 각색물들이 그런 것처럼 교묘하게 조작된 영국 이미지를 이용한 국제적 상품이었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하지만 커티스의 이런 상품성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는 단순히 국제시장의 비위에 맞는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영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꿋꿋하게 유지하며 바깥 세계와 대화를 시도한다. 세편의 커티스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영미간의 관계이다(세 영화 모두 영국인 남성과 미국인 여성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커티스 세계의 미국은 실제 미국이라고 할 만큼 사실적인 국가는 아니다.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그래도 드물게 부시 정권과 그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블레어 정부의 대미정책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잡고 비난하긴 하지만, 대부분 그의 영화 속에서 미국은 할리우드 이미지로 존재한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캐리는 서툴고 긴장한 영국인 남성과 대비되는 세련되고 국적이 불투명한 존재이며 <노팅힐>의 안나 스코트는 시작부터 할리우드 스타이다. 투명하고 무국적인 커티스의 미국은 영국이라는 나라의 개성을 강조하고 그 정체성을 분명히하는 도구이다. 커티스는 동성애자, 유색인종, 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자기 세계의 포용성을 우쭐거리며 과시하는 것만큼이나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기반 위에 서서 바깥 세계와 대화를 나누려는 듯하다.

로맨티시즘의 힘

<러브 액츄얼리>

커티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면서 그만큼이나 노골적인 비판과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용감한 로맨티시즘이다. <블랙애더>의 면도날 같은 냉소주의의 작가답지 않게, 그의 영화들에는 놀라울 정도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직설적이다. 영화는 위트있는 대사들로 가득 차 있지만 냉소로 자신의 감정을 방어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면 그 감정은 온갖 소란스러운 소동을 이겨내며 끝까지 간다. 그것도 거의 클리셰적이기까지 한 애정고백의 의식을 클라이맥스로 삼으면서. 아직도 데이비드 린의 <밀회>가 대표하는 성적으로 억압된 영국 구식 중산층의 이미지에 넌더리를 내는 많은 영국 관객은 커티스의 이런 비전을 영국 중산층의 따분한 위선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그가 단도직입적인 섹스신으로 현대적 분위기를 내려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용감함은 비난과 야유를 이겨낼 만한 힘이 있다. 그의 장대한 모자이크영화인 <러브 액츄얼리>를 보라. 그 달콤하기 짝이 없는 내용과 외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마어마한 야심을 감추고 있다. 그는 사랑과 사랑의 의식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며 그 사실을 관객에게도 알리려 한다.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은 흐뭇한 일회성 크리스마스의 감상을 안고 극장을 나서겠지만, 수없이 되풀이되어 진부함에 대한 조롱까지도 진부해진 이 감정이 여전히 중요한 것이라고 용감하게 외쳐대는 커티스의 선언은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커티스를 우리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정말로 그런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맨스와 유머의 배합방법을 알고 있으며 행복한 해피엔딩 속에 어떻게 삶의 비극을 녹여내는지도 알고 있다. 언뜻 보기에 감상적인 기성품처럼 보이는 커티스의 영화들은 재료의 조합에 완벽하게 통달한 요리사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한 솜씨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우린 그의 영화들을 초콜릿 케이크에 비교하며 놀려댈 수 있지만 그 초콜릿 케이크를 만든 일급 요리사의 실력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왜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나쁜 일인가? 우리에겐 메인 코스만큼이나 디저트도 필요한 법인데.

그러나 <블랙애더>의 매서운 작가가 <노팅힐>의 달콤한 로맨스코미디 작가로 추락한 것에 대해 꼭 실망한 필요는 없는 듯하다.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리처드 커티스가 다음 각본의 내용으로 생각하는 것은 로맨스코미디가 아니라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담긴 드라마다. <러브 액츄얼리>의 크리스마스 세트와도 같은 평면적인 다우닝가 묘사를 떠올리며 미리부터 그를 놀릴 생각은 하지 마시길. 이미 그는 한번의 극적인 전환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그가 또 한번 그런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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