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반지의 제왕> 총정리 [4]
2003-12-19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제작에 이르기까지

1%의 행운과 99%의 모험

<천상의 피조물>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을 만들기 위해 프로도만큼이나 힘든 여행을 떠났다. 그는 1995년 미라맥스와 ‘퍼스트룩’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에 따르면 미라맥스는 잭슨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검토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미라맥스 사장 하비 웨인스타인은 잭슨의 영화 <천상의 피조물들>을 보고 그를 믿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98년은 시기도, 조건도 좋지 않았다. 잭슨은 <프라이트너>를 함께 만들었던 시각효과 회사 웨타를 파트너 삼아 35분 분량의 데모 필름을 만들어 능력을 증명했지만, 당시 메이저 영화사들은 힘든 여름을 맞이하여 긴축 경영을 시도하고 있었다. 미라맥스는 2억달러 넘게 들여 영화 세편을 한꺼번에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돈을 댈 제작사를 하나 더 찾아오든지, 두 시간 분량의 영화 한편을 만들든지, 프로젝트를 포기하든지, 잭슨은 세 가지 가능성 중에 첫 번째를 선택했다.

98년 7월, 일곱번 거절당한 잭슨은 마지막으로 뉴라인시네마와의 만남을 앞두고 돌아갈 비행기 표까지 끊어두었다. 블록버스터 제작경험이 없는 뉴라인이 “흥미를 가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뉴라인 공동대표 로버트 샤에는 시나리오 세권을 건네주고 두편의 영화제작 계획을 설명하던 잭슨을 가로막고 물었다. “시나리오는 세권인데, 영화도 세편을 만들지 그래요?” “아, 그럼요. 삼부작이라니 아주 멋지겠는데요.” 샤에는 아주 늦게, 2년이나 지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결정을 내렸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잭슨의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고무 인간의 최후> <데드 얼라이브> <밋 더 피블즈>의 포스터를 보고 “잭슨이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주류영화라고는 아예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았다.

뉴라인을 설득한 뒤에도 원정대는 완성될 수 없었다. 애니메이션 <반지의 제왕>의 프로듀서 사울 자앤츠는 자신이 소유한 원작 판권을 누구에게도 팔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잭슨은 두 번째 행운을 만났다. 아주 우연하게도 그 무렵 웨인스타인은 자앤츠가 프로듀서를 맡은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웨인스타인은 그 긴 영화를 찍으면서 1년 넘게 자앤츠를 설득했고, 그때까지는 믿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던 잭슨을 감독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99년 10월, 촬영이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비고 모텐슨이 촬영장을 떠난 스튜어트 타운젠드를 대신해 아라곤을 연기하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제작사는 당황했지만 그 사건 역시 절대적인 행운이었다는 사실이 나중에야 밝혀지게 된다.

<고무 인간의 최후>
<데드 얼라이브>

잭슨은 “이 프로젝트에는 수없이 많은 행운이 따라주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절정에 올랐던 그날의 일만큼은 행운이 아니었다. 2001년 칸영화제에서 <반지의 제왕>은 400만달러를 들인 파티를 열었고, 모리아 광산의 전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26분짜리 프로모션 필름을 선보였다. 반응은 굉장했고, 잭슨은 행복했다. 열여덟살에 처음 읽은 “그 자체로 마음과 영혼을 가진 듯한” 소설은 잭슨을 절대반지처럼 사로잡았지만, 그의 여행의 끝은 파멸이 아니라 역사에 기록될 만한 탄생이었다.

골룸, 최고의 컴퓨터그래픽 스타

<반지의 제왕>이 남긴 스펙터클

C. S. 루이스는 친구 톨킨에게 자극을 받아 판타지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를 썼다. 2005년에 완성될 그 첫 번째 이야기 <사자와 마녀와 옷장> 제작진이 <반지의 제왕>의 시각효과 회사 웨타를 견학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반복처럼 보여 재미있다. 그러나 잭슨은 그들이 “놀라운 스튜디오를 기대했는데, 오래된 페인트 공장만 봤다”는 사실을 더 재미있어한다. <반지의 제왕>은 첨단의 기술과 함께 공들인 손때도 진하게 묻어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골룸은 잭슨이 가장 공을 쏟은 캐릭터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최고의 컴퓨터그래픽 스타로 선정한 골룸은 300개가 넘는 근육과 250여 가지에 달하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배우 앤디 서키스가 특수한 점이 박힌 의상을 입고 연기를 하면, 컴퓨터가 그 점을 인식해 동작을 연결하고, 어둠에 삭아버린 괴물 골룸이 나타나는 것이다. 웨타 디지털은 이 모션캡처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매시브도 개발했다. 오크 대군이 습격하는 장면은 대부분 매시브를 거쳤다. 전쟁터에 나간 군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없다. 그들은 눈앞에 닥쳐온 칼날과 사람마다 다른 공포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므로, 매시브는 그들 각자에게 지능을 부여해 처한 상황에 충실하도록 가르쳤다. 펠레노르 평원을 뒤덮은 오크들은 서로 다른 감각과 행동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웨타 디지털의 한식구 웨타 워크숍은 2만점에 달하는 소품을 비롯해 너무 커서 ‘비거처’(bigature)라고 부르는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역할을 맡았다.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린, 일곱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곤도르의 수도 미나스 티리스, 세월의 결에 따라 곱게 낡은 로한의 수도 에도라스, 지표면 가까이 아늑하게 자리잡은 호비튼이 이 회사의 작품. 이 세트들을 배경으로 키가 작은 호빗 대역 배우들이 뛰어다니거나, 카메라 거리를 달리하는 눈속임을 통해, 난장이와 호빗이 인간과 요정 옆에 설 수 있었다.

<반지의 제왕>은 이처럼 복잡한 공정과 새로운 기술을 통해 서사시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규모를 능가하는 스펙터클은 뉴질랜드 그 자체다. 헬기에서 내려다보며 훑어가는 안개산맥은 뉴질랜드의 남알프스. 뉴질랜드가 아니었다면 황금의 숲 로스로리엔이나 고대로부터 내려온 낙원 리벤델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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