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 관객에게 재개봉관을 허하라 [2]
2004-01-09
글 : 이영진

예술영화전용관 거점 늘리자

하이퍼텍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기획전에서는 2003년 멀티플렉스 중심의 극장가에서 홀대받았던 영화들이 짧은 부활이나마 맞고 있는 중이다. 올해로 4번째를 맞는 재개봉 이벤트가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첫해 30%대에 머물렀던 평균관객점유율을 50%를 훌쩍 넘어셨다.

그렇다면 예술영화전용관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장기적으로는 12개 거점을 늘릴 필요가 있다. 전체 예술영화전용관의 좌석 수는 3200석 정도에 불과하다. 좌석판매율이 20%대에 머물고 있음을 감안하고 하루 6회씩 2주 동안 상영한다고 했을 때 전체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영화는 이 기간 동안 대략 6만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이 경우 제작사와 배급사 몫으로 돌아오는 자금은 약 2억원이다. 다시 말해 부가 판권을 넉넉히 계산한다 하더라도 제작비가 3억원이 넘는다면 네트워크를 온전히 가동해도 환수가 불가능하다.

<선택> <여섯개의 시선> 등을 배급한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현재 전용관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영화는 제한되어 있다”며 “예술영화전용관에 만병통치의 능력을 바랄 순 없고 작품마다 배급 전략을 달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하이퍼텍 나다의 김난숙 팀장도 “멀티플렉스를 택할 경우 P&A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지지만, 전용관만으로 제작사나 수입사가 재생산할 여력을 가질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행인 것은 영진위가 2006년까지 전체 스크린의 3%에 해당하는 40개 스크린을 예술영화전용관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진위 김혜준 사무국장은 “먼저 전용관 지원을 위한 안정적인 예산과 영진위가 직접 운영하는 2개관 규모의 전용관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전용관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회 또한 늘어나야 한다. 이른바 차별화 전략이다. 표3에서도 알 수 있듯이 씨네큐브, 하이퍼텍 나다 등을 찾는 관객은 멀티플렉스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영화들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많다. 특히 박기복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의 사례는 두고두고 곱씹을 만하다. 지난해 9월5일 하이퍼텍 나다에서 단관 개봉한 이 영화는 7주간의 장기상영을 통해 무려 1만2312명의 관객을 모았다. 평균 좌석점유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관객몰이를 했으며, 개봉 3주째에는 멀티플렉스 체인의 스크린을 따내기도 했다(표4 참조). 이는 전용관에서 출발하여 멀티플렉스로 진출하는 확대개봉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한때 기존 배급망 유통을 타진했던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이 올해 봄에 전국 12개 예술영화전용관에서 개봉할 준비를 하는 것도 <영매…>의 선전에 힘입은 바 크다.

씨네큐브(위)나 하이퍼텍 나다의 경우 오랫동안 자체 수급한 프로그래밍으로 관객에게 인지도를 높여왔다. 극장 입지 또한 광화문과 대학로로 수요가 예상되는 관객의 접근도가 높은 편이다.

이제 막 꼴을 갖추기 시작한 예술영화전용관 네트워크 ‘아트플러스’가 대안적인 유통망으로서 발돋움하기 위해선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접근 또한 필요하다. 씨네큐브나 하이퍼텍 나다의 경우 오랫동안 자체 수급한 프로그래밍으로 관객에게 인지도를 높여왔다. 극장 입지 또한 광화문과 대학로로 수요가 예상되는 관객의 접근도가 높은 편이다. 이에 비해 지방의 예술영화전용관은 낮은 좌석점유율 때문에 고전중이다. <돌스> <정사> 등을 수입한 스폰지의 조은운 대표는 “지방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은 프로그램이 좋다고 하더라도 입지나 배급사의 홍보 부족으로 인근 멀티플렉스에 관객을 뺏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술영화전용관 체인의 작품 수급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배급사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다.

예술영화관 전용 배급과 마케팅 구축하자

예산 확정만을 남겨두고 있는 영진위의 2004년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계획은 이같은 의견들을 참조한 듯하다. 이중 예술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은 큰 환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원사업안에 따르면, 제작 완성 뒤 6개월 이상 미개봉인 영화를 대상으로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성이 인정되는 5편 내외의 작품에 마케팅 비용으로 편당 1억원씩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영진위 김혜준 사무국장은 “예술영화제작지원사업, 방송용영화제작지원 사업, 독립, 디지털 장편영화 제작지원사업, DVD 제작지원 등의 사업을 통해 비주류영화들의 제작부터 유통까지 아우르겠다”고 했다.

물론 이같은 영화인들의 구상과 노력이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최근 3∼4년 동안 극심했던 배급사의 과식과 멀티플렉스의 편식으로 인한 관객의 영양부족 상태는 심각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의 응원이 있는 한 예술영화전용관이 주식까지 제공하진 못해도 간간이 비타민을 제공하는 역할을 차근차근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터무니없지 않다. 그 이후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독립영화전용관, 예술영화전용관 등 세분화된 형태의 상영공간의 탄생이 가능할 것이다.

해외 사례

(아래 기사는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을 포함하여 영화진흥위원회가 펴낸 책자들을 주로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프랑스의 예술영화 유통

프랑스국립영상센터(CNC)로부터 ‘Art et Essai’, 즉 예술 및 실험영화라는 레이블을 받아든 스크린만 무려 1200여개다. 전체 스크린이 대략 5100개인데 이중 예술영화전용관은 무려 25%에 달한다. 대도시에 위치한 전용관은 상영일수의 75% 이상을 예술영화를 상영해야 하며, “오리지널 버전 상영, 다큐멘터리 상영, 영화인과의 만남 추진” 등 여러 가지 세부 기준을 만족시켜야 CNC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이들 전용관 중에는 제3세계 국가의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는 곳부터 8살부터 12살 사이의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놓은 곳이 있을 정도로 차별화되어 있다. 독특한 것은 설립허가제를 통한 멀티플렉스 규제이다. 이를 통과하기 위한 기준에는 해당 지역의 문화적 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50년 역사의 예술영화전용관협회는 가격 할인정책, 일부 예술영화 배급권 주장 등을 내놓으며 영역을 확장하려는 멀티플렉스에 맞서 싸우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일본의 저예산영화 유통

여타 국가에 비해서 직접적인 지원이 많다고 할 수 없다. 대신 독립적인 방식으로 저예산영화를 제작해서 성과를 내온 프로듀서들 또한 많다. 이들은 해외영화제를 통해 인지도를 얻은 뒤 국내 개봉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여러 편을 묶어 배급하는 등의 전략으로 위험도를 줄인다. 도쿄에만 40여개가 넘게 편재해 있는 미니시어터는 저예산영화의 주요 창구다. 1개월 이상 장기상영을 통해 관객을 불러모은다는 것과 6개월 이상의 충분한 기간을 두고 지속적인 홍보,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급사들은 또한 온라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여 일반 상영이 끝난 다음에도 갖고 있는 필름들을 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비해 지방자치단체나 사회단체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저예산영화 제작에 나서는 경우는 빈번하다. 안성기가 출연해 잘 알려진 <잠자는 남자>는 군마현에서 인구 200만명이 넘은 것을 기념해 만든 영화다. 지역 내 공공 상영장소에서 상영을 시작한 이 영화는 이후 30개 지방으로 퍼져 상영됐고, 극장 수익만 2억엔을 거둬들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영국의 비주류영화 유통

할리우드 자본에 배급 및 유통시장을 빼앗긴 탓에 한때 자국 상업영화의 반수 이상이 그해에 극장에 걸리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발표된 필름 배급 프로그램 펀드 운용 계획은 여전히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자국영화들에 대한 지원이 주된 목적이다. 우리 돈으로 약 20억원 규모로 운용되는 이 지원 프로그램은 15억원 이상의 흥행수익을 거둔 자국영화들에 대해 지원하되 흥행수입이 많을수록 지원액수는 줄인다. 영국영화를 배급할 경우 예상되는 위험 부담으로 소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이 프로그램이 일부 성공한 영화들만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최근 P&A 기금을 따로 마련했다. 역시 20억원 크기의 이 기금은 고전영화, 예술영화 등과 같은 비상업영화를 위한 것으로 상영시 프린트 수가 1천개에 달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많아야 수십벌이 전부인 비주류영화들을 위한 뒤늦은 배려다. 조만간 디지털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망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