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안녕! 유에프오> 시나리오 ‘제작기’ [1]
2004-01-28
글 : 문석
사진 : 정진환
이해영, 이해준, 김지혜 작가가 토해내는 <안녕! 유에프오> 시나리오 탄생일지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시나리오는 좋은 영화의 필수 요소다. 영화의 뼈대이자 토대라 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탄탄하기만 하면 캐스팅이나 연출력, 자본 등 다른 요소의 장애를 어느 정도 뛰어넘을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시나리오 작업은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며, 가장 힘이 많이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각장애 여성과 버스 운전기사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안녕! 유에프오>(감독 김진민)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1996년 12월 단편 옴니버스 시나리오에서 출발해 2004년 마침내 영상으로 옮겨지기까지 8년 동안 작가들의 피를 말리고 애간장을 태웠으며, 사소한 기쁨과 무한한 좌절을 맛보게 했던, 이 예사롭지 않은 제목의 <안녕! 유에프오> 시나리오의 ‘제작’ 과정을 이해영, 이해준, 김지혜, 세 작가의 시점으로 만나본다.

1996년 12월

이해영_ 8월의 <투캅스3>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보기좋게 낙방했다. 그렇다고 너무 기죽진 말자. 아이디어는 샘솟고 의욕은 넘친다. 게다가 요즘 쓰는 단편 옴니버스영화의 시놉시스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은가.

이해준_ 〈365번째 날>이라…. 괜찮다. 12월23일부터 31일까지 8일 동안 세 커플이 얽힌다. UFO를 믿는 남녀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에피소드나 버스 운전사와 창녀가 얽히는 두 번째 에피소드 등 재밌을 것 같다. 이제 영화사와 접촉하는 일만 남았다. 흐흐.

1997년 4월

이해준_ 충무로에 전혀 연줄이 없어 어디에 고개를 들이밀지 고민하다가 몇년 전 인사를 한 적 있는 기획 홍보사 래핑보아를 주먹구구식으로 찾았다. 이곳 대표의 친구라는 김승준 감독님이 관심있게 보는 눈치다. 그럼, 어떻게 쓴 시나리오인데….

이해영_ 엥? 아무리 시놉시스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함박눈이 쏟아지는 서울의 밤거리. 재회의 포옹을 하고 있는 두 남녀.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거대한 UFO 편대…”라는 마지막 장면의 두줄에만 관심을 갖다니…. 그래도 이 두줄을 바탕으로 장편을 써보지 않겠냐고 한다. 드디어 기회가 온 거다.

1997년 6월

이해준_ 〈365번째 날>의 세편 중 UFO와 버스 운전사 이야기를 합쳐 장편을 구성하고 있다. UFO에 대해 다시 고민 중이다. UFO란 게 ‘미확인 비행물체’ 아닌가. 그러니까 정확히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거다. UFO를 보면서 여러 사람이 각자 다른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이해영_ 서울 외곽 지역의 좁은 골목을 떠올려보자. 직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전선도 얽혀 있고 다닥다닥 붙은 지붕 사이로 좁은 하늘이 보일 거다. 그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데 굉장히 큰 UFO가 지나가는 거다. 생활고에 찌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사치로 느낄 그런 사람들에게 UFO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의미가 아닐까. 게다가 우울한 세기말이 다가오는데.

1997년 7월

이해영_ 드디어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제목은 〈UFO를 기다리며〉다. 전직 DJ 출신 버스기사와 UFO가 남자친구를 데려갔다고 생각하는 여인(사실 남자친구는 죽었다)의 사랑 이야기다. 남자는 버스 안에서 자기가 직접 녹음한 내용을 방송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조용필이다. 주인공은 어릴 적 조용필을 만나, <친구여>를 만드는 데 결정적 공헌을 세운다. 가까운 과거의 영웅을 등장시키고 싶었다. 서태지였으면 좋았겠지만, 주인공과 너무 나이차가 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이해준_ 래핑보아를 드나들던 김대우 작가(<정사> <반칙왕>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시나리오를 보곤, “2∼3신을 제외하곤 쓸 게 하나도 없다”고 혹평했다. 이야기에 기승전결도 없고, 왜 UFO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충격, 실망, 우울.

1998년 1월

이해영_ 7개월째다. 7번째 버전까지 만들고 탈진에 가까운 상황에 또다시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래핑보아가 더이상 작품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다.

1998년 5월

이해준_ 전에 운영하던 안암동의 커피숍으로 돌아갔다. 해영은 이스트필름 기획실로 들어갔다.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인가.

이해영_ 이스트필름에서 가족코미디를 준비하는 조감독 김진민 형을 만났다. 인간적이고 잘 맞는다. 술도 많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1998년 추석

이해영_ “너무 재밌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 칭찬이다. 귀성차 부산에 내려가는 김진민 감독이 “심심풀이 읽을 거리를 달라”고 해 〈UFO를 기다리며> 시나리오를 줬는데, 뜻밖에 좋은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데 코미디 프로젝트가 엎어졌고, 김진민 감독은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 조감독으로 들어간단다.

1999년 5월

이해준_ UFO여, 안녕. 해영과 공동작업했던 <신라의 달밤>이 영화사 봄의 눈에 띄었다. 작가 계약서라는 것을 난생처음 썼다.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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