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소피아 코폴라에 열광하는 까닭 [2]
2004-02-13
글 : 박은영
‘소피아 코폴라’식 언어를 찾다

배우, 디자이너, 화가, 사진가, 작가, 뮤직비디오 제작자, 패션 사업가이기도 했던 소피아 코폴라는 “캘리포니아적인 세련됨을 갖춘 다재다능한 아가씨”로서의 명성을 업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그간 거쳐온 이력을 영화에 녹여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0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최고의 처녀작”으로 선정된 <처녀자살소동>은 아름다운 다섯 자매의 비극적인 죽음을 이웃집 소년들의 판타지와 노스탤지어의 필터로 투사하는데, 안개를 드리운 듯 아련하고 몽환적인 영상과 일렉트리카 듀오 에어의 애잔하고 나른한 선율로 사라져간 순수에 대한 그리움을 통렬하게 자극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마찬가지다.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들은 침묵이나 음악으로 채워진 정적인 이미지들이다. 분홍색 팬티 차림으로 모로 누운 어린 신부의 작은 등, 밤거리 네온 속을 응시하는 중년 남자의 텅빈 눈, 가라오케 복도에서 어깨를 맞댄 짧은 휴식 같은 것들. 그의 시청각 언어는 단호하면서도 사려 깊다.

그리 명예롭진 못했지만 배우로서의 경력도 그를 특별한 감독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대개 자신의 심리와 경험을 반영해 캐릭터를 만드는 소피아 코폴라는 배우들을 휘몰아치는 아버지와 반대로 편안하게 풀어주는 스타일. 까다로운 배우 빌 머레이에게 즉흥 연기를 주문하고 “최고의 연기”를 뽑아낸 것은 그와의 교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결국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과 방황이 소피아 코폴라의 ‘힘’이 됐다는 얘기다. 그것은 스타일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소피아 코폴라는 성장과 고독 그리고 소통의 테마에 집착한다. 1970년대 디트로이트 교외에서, 2003년 도쿄 시부야로 공간 이동을 해 왔을 뿐, 그의 분신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 혼란스러워한다. 다만 자매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함으로써 사건의 퍼즐 조각을 놓친 <처녀자살소동>의 소년들과 달리,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남녀는 서로를 보고 듣고 (관객도 모르는) 둘만의 기약을 한다는 점에서, 이제 ‘희망’을 이야기하는, 밝아지고 성숙해진 소피아 코폴라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진짜 홀로 서기

소피아 코폴라는 현재 아주 특별한 지점에 서 있다. 코폴라라는 이름이 주는 위풍당당한 메인스트림의 느낌과 어울리지 않게 스파이크 존즈, 웨스 앤더슨, 빈센트 갈로 등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며 ‘인디펜던트 스피리트’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주류영화는 아니지만, 대중의 근접 조우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또한 의미있는 성가다. 이처럼 “예술적이지만 예술가연하지 않는” 그에게서 미국영화의 ‘미래’를 보는 이들도 적잖다.

소피아 코폴라는 영원히 코폴라 가문의 여인이다. 그 꼬리표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를 따라붙을 것이다. 그가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가족사를 들먹이며 심리 분석을 해대는 평자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받아들일지 헷갈려 하지 않을 만큼 소피아 코폴라가 지혜롭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정체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늘 내가 나인 것이 자랑스럽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나 아버지에게 달려가면 된다. 마치 요다에게 의지하는 제다이처럼. 남을 의식하면, 많은 걸 할 수 없게 된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태어날 때부터 유명인사였던 소피아 코폴라는 이제사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리는 소박한 기쁨에 취해 있다.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가족과 연관짓지 않고 내 영화를 봐주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

::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들

소녀는 소녀의 불안을 안다

소피아 코폴라의 데뷔작 <처녀자살소동>은 칸과 선댄스의 히트작이었다. 동명의 인기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1970년대 디트로이트 교외를 배경으로, 다섯 자매의 죽음을, 그들을 사랑한 이웃 소년들의 회상으로 되짚어간다. 여신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 자매들에겐 남들은 모르는 애환이 있다. 보수적인 부모는 막 피어나는 다섯딸들의 싱싱한 육체와 세상의 유혹이 두려운 나머지 그들을 “안전하게” 격리한다. 소년들의 집요한 애정공세와 구출작전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영화는 전적으로 소년들의 추억과 환상에 의존해 전개되는데, 자매들의 죽음이 순수의 실종과 성장에 대한 공포의 메타포로 비쳐질 만큼 영상과 음악이 몽환적이고 애절하다. 앳된 커스틴 던스트와 조시 하트넷, 관록의 제임스 우즈와 캐서린 터너의 연기도 빼어나다. 4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외계 같은 낯선 도시 도쿄에서 ‘중년의 위기’를 맞은 인기배우와 ‘성장통’에 시달리는 어린 주부의 만남을 주선한다. 스타배우인 남자는 위스키 광고를 찍으러 도쿄에 왔지만, 미국의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벗어나지도 위안을 얻지도 못한다. 결혼 2년째인 여자는 일에 미친 남편 때문에 외롭고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져 괴롭다. 그리고 이들은 동시에 서로를 알아본다. 어울릴 법하지 않은 두 남녀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은 눈을 맞추고 어깨를 기대는 작은 몸짓만으로 서로 운명의 짝임을 알아본 이들 사이의 ‘케미스트리’를 완벽하게 재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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