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빅 피쉬>의 감독 팀 버튼과 나눈 가상대화 [2]
2004-03-05
글 : 김혜리

팀 버튼 특유의 스케치가 비쳐나는 조연 캐릭터들에도 불구하고 <빅 피쉬>가 달라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어느 때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미학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팀 버튼은 언제나 대사보다 동작을 중시했고 움직임이 곧 캐릭터라고 믿었다. 하지만 카툰 캐릭터도 슈퍼 히어로도, 유인원도, 설화 속 인물도 아닌 <빅 피쉬>의 주인공들에게는 양식화된 연기를 펼칠 여지가 적다. <빅 피쉬>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이미지보다 호흡이 긴 내러티브, 판타지와 교대하는 가족 멜로드라마의 감상주의다. “나중에 만든 영화일수록 스토리보드 작업을 덜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내 예전 영화의 이야기들을 잠깐 돌아볼까요? 하나같이 엄청나게 센티멘털하고, 단순하고 강력한 갈등이 깔린 강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지 않은가요? 내 영화가 보기 좋다고 칭찬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냐고 쏘아붙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잠깐 사이를 두고 그는 말을 이었다. “별난 놈이라고 따돌리다가 성공하니까 별나다는 이유로 나를 찾고 계속 별나기를 원합니다. 그런 식의 미리 포장된 ‘특별함’은 싫습니다.” 뭔가 다정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은 도대체 무엇을 은폐하기 위해, 또는 무엇을 견디기 위해 치열하게 거짓말을 지어냈는지 <빅 피쉬>는 끝내 파고들지 않는다. 두번의 장려한 장례식으로 상상의 힘을 예찬했을 뿐이다. 팀 버튼은 말이 없었다. 하긴 대답한다면 해답이 있는데도 영화가 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니 자존심 문제다. 대신 그는 손뼉을 쳤다. 창으로 들어온 거인 칼의 포크레인 같은 손이 나를 들어올렸다.

<빅 피쉬>를 두 번째 보던 날, 깨달았다. 이 영화가 실망스런 이유가 팀 버튼의 영화이기 때문이라면, 이 영화가 감흥을 남기는 까닭도 팀 버튼의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빅 피쉬>는 절반이 판타지 모험담이지만, 그것이 마흔다섯의 팀 버튼이 만든 영화이기에, 마치 그 징후와 악몽만 지켜보아온 환자의 실제 삶을 드러낸 다큐멘터리처럼 마음을 흔든다. 팀 버튼은 포르셰를 사는 대신 이런 영화를 만들며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걸까? 천국 같은 유령 마을을 떠나며 소녀 제니에게 남긴 에드워드의 약속은 팀 버튼의 독백처럼 들렸다. “여기는 영원히 살고 싶은 곳이지만 아직 나는 어디든 정착할 준비가 안 됐어. 신발이 없으니 발은 아프겠지만 어쨌든 가야 해. 하지만 꼭 돌아온다고 약속할게.

거대 스튜디오와의 동고동락 12년

팀 버튼의 할리우드 비즈니스 어드벤처

<배트맨>
<에드우드>

<빈센트>(1982)는 디즈니 애니메이터 생활이 지겨워 사무실에서 잠만 자다가 컨셉트 아티스트로 자리를 옮긴 뒤 제작한 단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의 6만달러와 회사 장비로 만들어졌고 유년기의 영웅 빈센트 프라이스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당시 교제하던 디즈니 간부 줄리 힉슨이 뒷받침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켄위니>(1984)는 <빈센트>의 호평에 힘입어 만들어진 27분짜리 실사영화.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영감을 얻어 버튼의 영화적 뿌리를 분명히 했다. 배우 셸리 듀발, 대니얼 스턴이 출연해 후원했다.

<피위의 대모험>(1985)은 작가 스티븐 킹에게 <프랑켄위니>를 추천받은 워너브러더스가 코미디언 폴 루벤스와 버튼을 연결해 성사된 프로젝트다. 피위 허먼의 ‘어린애 같은 어른’ 캐릭터는 이후 버튼의 전형적 히어로로 자리잡았다. 작곡가 대니 엘프먼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진 작품으로 600만달러 제작비로 4500만달러를 벌어 팀 버튼의 상업적 잠재력을 증명했다.

<유령수업>(1988)은 호러와 코미디, 동화적 정서를 결합한 팀 버튼 영화의 기본형을 완성하고 싸구려 특수효과를 독창적 스타일로 승화시키는 솜씨를 입증했다. 제작비 1300만달러, 입장수입 8천만달러라는 수치도 물론 스튜디오의 호감을 샀다. ‘비틀쥬스’ 마이클 키튼의 캐스팅이 논란을 일으킨 이벤트영화 <배트맨>(1989)(사진)은 흥행 성공으로 폭스가 비주류적 감성의 <가위손>(1990) 제작에 착수하도록 했다. <배트맨2>(1992)는 블록버스터로서 스튜디오가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건드렸다. 아이들에게 너무 어둡고 무서운 속편에 대해 특히 공동 프로모션 업체 맥도널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후문.

<에드우드>(1994)(사진)는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과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를 제작한 팀 버튼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카드로 디즈니가 받아든 프로젝트다. 에드우드 감독에 대한 오마주 같은 <화성침공>(1996)은 풍자적 색채가 강했으나 그것의 과녁이 불분명하다는 불평을 샀다. 이 영화의 상업적 실패 이후 버튼은 <슈퍼맨> 프로젝트를 1년간 개발했으나, 스튜디오로부터 중도하차 통고를 받고 분노했다.

<슬리피 할로우>(1999)는 <슈퍼맨> 사태가 남긴 분노를, 숱한 극중인물의 목을 베어 해소한 고딕호러. 저예산영화의 감수성, 일급 스탭들의 능력,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규모의 예산이 최고의 하모니로 보여주어 팬들을 재결합시켰다.

그러나 나쁜 소식은 또다시 외계에서 왔다. <혹성탈출>(2001)은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으나 결말 반전에 관한 논란과 함께 구스 반 산트의 <싸이코>와 비슷한 푸대접을 평단으로부터 받았다. 9년을 함께한 연인 리사 마리와 결별하고 <혹성탈출>에서 만난 헬레나 본햄 카터와 짝을 지은 이후 캘리포니아를 떠나 영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빅 피쉬>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먼저 읽고 추천한 시나리오로 알려졌다. 버튼의 차기작은 지독히 가난한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큰 초콜릿 공장에 초대돼 심술궂은 부잣집 아이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로알드 달 원작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공장장은 조니 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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