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홉살 인생> 꼬마들이 쓴 촬영기 [1]
2004-03-19
정리 : 박은영
어른 배우 뺨치는 <아홉살 인생>의 개구쟁이들이 쓴 촬영일기

배우 인생 ‘첫 번째 아홉수’ 이야기

“아저씨가 감독이에요?” <아홉살 인생>의 촬영장에는 이렇게 태도 불량(?)한 배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10명 안팎의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영화 속에서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는 단 두 사람. 나머지는 카메라 앞에는 사진 찍을 때말고는 서본 적 없던 초짜 배우들이었다. 연기의 테크닉이나 영화의 메커니즘을 이들이 알 턱 없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엉뚱한 상상력과 팔팔한 에너지, 또래간의 우정과 경쟁심, 로맨스가 싹트고 꽃피며, “인생을 알기에 충분한 나이” 아홉살을 넘긴 십대 초반의 꼬맹이들은 영화 속에서 몇 계절을 살았고 또 그만큼 자라났다. 5인의 아역배우가 수줍게 내민 촬영일기에서 ‘영화 찍기’에 대한 이들의 고민과 다짐을 엿본다.

10월14일 화요일

우림_  물에 빠져서

오늘은 충북 제천에 가서 물에 빠지는 신을 찍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6시쯤 영화사에 도착했고 6시30분에 출발했다. 3시간 동안 달리고 달려서 9시30분에 도착했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속이 안 좋았던데다가 1km 구보까지 해서 속이 울렁거리고 쓰렸다. 30분 정도 쉬다가 물에 들어갔는데 날씨도 추운데다가 수심이 5m라고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물도 많이 먹었고 숨을 못 쉬어서 죽을 맛이었다. 다신 생각도 하기 싫은 대악몽이었다.

10월17일 월요일

여민_ 

옛날 옛날에는

생태공원 안에서 동네 싸움을 하는 날이다. 학원에서 다른 아이들도 많이 왔다. 새총으로 싸우는데 신이 났다. 추운 날 반팔 반바지 입고… 죽는 줄 알았다. 옛날에는 옷도 너무 초라하고 노는 것도 참 특이했다. 분장도 참 웃겼다.

기종_  연기의 첫걸음

오늘 서울에 있는 길동 자연 생태공원에서 ‘전투놀이’를 하였다. “와∼” 하고 오는데 내가 더 놀랐다. 철모를 뺏으려고 하기에 철모를 잡았는데 긁혀버렸다. 피가 약간 났지만 참았다.

오늘의 반성: 이제부터는 형들이나 누나들에게 대들지도 않고 까불지도 않겠다. 그런 날이 오길. 언젠가는.

검은 제비_  추억의 연기

냄비 철모 뺏기 놀이를 했는데, 정말 추억에 남는 연기가 될 것이다. 제일 먼저 함성을 지르면서 그냥 나오는 장면인데 이렇게 사소한 행동도 조금만 실수를 해도 NG가 난다. 그러니까 영화 찍는 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제일 재미있는 장면은 철모를 벗기고 우리가 이기는 장면이다. 먼저 와∼ 함성을 지르고 아랫동네의 철모를 벗기고 우리가 이겨서 와∼ 함성을 지르는 장면. 2학년 때 하던 전쟁놀이를 3년 만에 해보니 너무 재밌었고 정말 이거는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그런 연기가 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애들이 부러워하는 면이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없다. 하고 싶으면 오디션을 보면 될 뿐 하나도 어려울 이유가 없다. 걸리기가 힘들다는 것뿐이지!

10월18일 화요일

금복_  유명한 배우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영화 <아홉살 인생> 오금복 역을 맡게 된 나아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어요. 그런데 집중이 잘 안 되더라구요. 하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연기를 집중해서 하시더라구요. 집에서 연습할 때는 잘되던데…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집중을 잘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선생님들께서도 저에게 말해주세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요. 선생님들, 앞으로 열심히 해서 잘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11월6일 목요일

검은 제비_  동시-카메라

예전엔/ 카메라가/ 두려웠어요

하지만/ 하다 보니/ 하던 대로만/ 하면 되니

이젠/ 카메라 앞에서도/ 두렵지/ 않아요.

앞으론/ 당당하고/ 두렵지 않게/ 설 거예요.

11월13일 목요일

검은 제비_  촬영

오늘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이 찍는 장면이었는데, 간만에 연기를 볼 수 있어 재밌었다. 그리고 감탄했다. 예전에도 연기를 봤는데, 그때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부부 싸움을 하는데, 내가 못칼을 들고 나무에 찍으며 욕을 하는 장면. 이 장면은 못칼에 내 감정을 실어 한번에 찍어 날려보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우스웠던 점이 우리 아버지가 지붕에 올라갈 때 원숭이가 뛰어오르는 것 같았다. 또 엄마는 아버지를 약올리며 올라와 봐라 놀리고, 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인데 눈에 안약을 넣고 했다. 하지만 절대로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제비는 그런 약한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 5인의 아역배우들

김석(백여민)

“이 나이에도 지키고 싶은 여자가 있다”는 어른스러운 주인공 백여민 역의 김석은 승마 선수로 더 유명하다. <킬리만자로> 등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주인공을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70년대 유행한 바가지 스타일로의 변신은 감수했지만, 오래 공들여 기른 구레나룻을 깎는 데는 망설였다는 후문. 물에 빠지고 얻어맞는 등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를 하면서도, 다른 배우와 스탭들을 먼저 배려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고.

박백리(검은 제비)

동네 쌈장 검은제비 역의 박백리는 유난히 많은 액션과 욕설 연기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윤인호 감독으로부터 경상도식 리듬과 억양을 살린 욕설 지도를 받아야 했다고. 평소엔 사색적인 문학 소년이다.

이세영(장우림)

아역 출연진 중에 가장 연기 경험이 많은 베테랑. <대장금>의 ‘어린 금영’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비밀이 많은 새침데기 소녀 우림 역을 맡은 뒤에 ‘서울에서 전학온 아이’의 하얀 얼굴 ‘설정’을 위해 미백에 좋다는 녹차를 휴대하는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김명재(신기종)

여민이의 단짝 친구 기종이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김명재가 연기했다. 6학년 형 누나들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한 장난꾸러기 막내 김명제는 틈만 나면 “영화가 대박나서, 울 아빠가 하는 곱창집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나아현(오금복)

여민이가 우림이와 친하게 지내자 ‘질투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금복 역의 나아현은 역할에 몰입해 리얼한 연기를 펼친 나머지 여민 역의 김석을 실제로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기도 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