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용서의 드라마로 돌아온 배창호의 신작 <길> [1]
2004-03-2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용서의 드라마, 봄길을 따라 오다

80년대 흥행사 배창호 감독의 저예산영화, <길>의 지난한 여정

<흑수선> 이후 2년이 지났다. 배창호 감독은 다시 저예산영화 <길>을 들고 찾아왔다. 개봉시기는 잡히지 않았고, 언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씨네21>은 한국 중견감독의, 오랜만의 신작이 어서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영화 <길>의 고된 제작의 길과 그 작품의 길, 그리고 감독이 말하는 신념의 길을 함께 싣는다.

배창호 감독의 새 영화 <길>은 그가 자주 쓰는 표현처럼 “굳은 신념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그런 영화이다. 사비를 털고, 친지들의 주머니를 뒤져 제작과 감독을 겸하면서 <러브스토리>(1996)와 <정>(1998)을 완성했지만 관객의 발걸음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뒤 주위의 기대를 모으며 미스터리스릴러물 <흑수선>(2001)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불시착한 영화처럼 보였다. 그것을 배창호 감독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5년 뒤에 보면 <흑수선>도 그냥 <흑수선>으로 보이지, 올드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배창호 감독은 장르의 유용성과 손을 잡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지키려 하지 않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맹세를 그 안에서 잊지 않음으로써, 다시 한번 배창호적인 것을 인정받는 동시에 동세대적인 상업적 요소와는 거리가 멀다는 자기 선언과 대중 선고의 이중 행보를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17번째 영화 <길>을 완성했다. 1980년대 흥행사로서의 쾌감을 맛보았던 그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러브스토리>와 <정>을 통해 “헝그리 정신을 갖고 영화를 찍어봤다”는 경험이다. 뒤집어 말하면 현재 역시 어렵다는 말이다. 영화사 청어람과 배급에 관한 말이 오가는 정도지만, <길>은 아직 배급라인을 확실히 결정하지 못했다. 그 개봉시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을 찾는 관객은 발이 느리다. 하지만 반드시 있다”고 배창호 감독은 자신감을 피력한다. 그가 예상하는 발느린 관객의 수는 대강 10만명이다. 두편의 1천만 관객 영화가 나온 이해에 관객 10만명을 기대하는 영화 또한 볼 기회는 주어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지금 그 발느린 관객에게 대신 전언을 띄우고 있는 중이다.

총제작비 5억원, 촬영기간 8개월

<길>의 예산은 총 5억원이 넘지 않았다(물론 작품을 믿고 교통비 정도에 만족하며 선뜻 응해준 스탭과 배우들의 노동력까지 감안한다면 10억원 정도가 될 거라고 배창호 감독은 예상한다). “이 정도 예산이면 영화 자체에 크게 침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배창호 감독과 강충모 대표(이산프로덕션)는 로케이션 촬영 중에도 작품에 대한 논의보다는 “돈 어떻게 돼가나?” 묻는 것이 전화통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구상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고, 2002년 11월 구체적으로 영화화의 계획을 세운 뒤 2003년 1월 강충모 대표와 의기투합했지만, 촬영을 진전시키는 것은 신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러브스토리>에서는 라인프로듀서와 조감독을, <정>에서는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던 인연으로 <길>의 제작을 맡게 된 강충모 대표를 배창호 감독은 오히려 말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사라져 가는 장인들에 관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둘 중 누구도 그만두지는 않았다.

여름에 끝내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촬영은 멈추었다 다시 가면서 8개월간 이어졌다. 전라도 김제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로, 경상도로, 다시 전라도 구례로 순회하면서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계절만큼은 양보를 안 한다”는 배창호 감독(그가 어느 정도 계절감을 중요시하는가는 <북경반점>의 연출을 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미리 생각했던 여름 배경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회고에서도 알 수 있다)은 만경평야와 삼척 환산굴과 변산반도와 섬진강 등지를 돌며, 이제는 찾아 보기 힘든 시골장터와 염전과 너와집,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구불구불한 ‘길’들을 계절따라 담아냈다.

“그 대장장이 심정, 내가 제일 잘 안다”

<길>은 전라도 시골 마을의 대장장이 태석이 지내온 1950년대 말에서 1970년대 말까지의 인생시기를 플래시백으로 오가며 보여준다. 태석은 젊은 시절 죽마고우 득수와 함께 이곳저곳 떠돌며 대장장이 노릇을 하면서 가정을 꾸려나간다. 집에는 참한 부인과 어린 아들 영식이가 있어서 행복한 시절이었다. 어느 날 득수가 돈이 없어 고민하는 것을 보고 태석은 집문서를 맡기고 돈을 빌려준다. 그러나 그 돈은 노름빚이 되어버리고 태석은 돈을 찾으려다 도리어 사람을 상해하고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된다. 출소한 날 아내와 득수의 불륜을 목격한 태석은 그 길로 먼곳으로 떠나버리고 홀로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십 몇년이 흐른 어느 날, 길을 가던 태석은 신영이라는 서울에서 올라온 소녀를 만나고, 그 아이가 득수의 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득수가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출소한 날 본 광경이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태석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꽁꽁 싸매놓았던 쌈짓돈을 풀어 득수의 장례식을 치러준다.

<길>에서 가장 먼저 결정된 것은 “내가 주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내적인 진정성을 표출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짝짓기도, 규모도, 영화의 성격도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태석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는 자신이 태석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을까? 단순히 각본가이고, 감독이라는 근거보다는 어떤 자기 행보와 맞물린 투영이 여기에는 있어 보인다. 몇 마디 욕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지만, 온전한 수공업자 태석은 낫과 호미를 대량으로 제조하는 ‘주문생산’의 시대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것은 곧 영화감독이라는 장인의 위치가 퇴색되어가는 것을 회고하며 씁쓸해하는 배창호 그 자신의 발화이기도 한 것이다(그가 ‘기술문명’에 호의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면의 예로 그가 현장 모니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흑수선>에 이르러서이다). 배창호 감독은 어떤 역할이 마음에 들거나, 그것이 자기의 이야기라고 생각될 때 주저없이 주인공을 떠맡는다. <개그맨>의 문도식 역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연기력이 어느 정도 출중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러브스토리>에서 역시 그는 주인공을 자처했으며, 아내 김유미씨를 상대역으로 캐스팅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캐스팅은 <정>에까지 이어졌다(<길>에서 태석의 아내 역으로 부인 김유미씨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또다시 영화에 부부애를 과시한다는 가십성 눈초리들이 싫어서 그만두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전제는 공간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묘사력에서도 드러난다. “돈 안 들이고 시대배경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영화포스터”였고, 그에 따라 <마이 웨이> <물망초> <모정> 등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게 된다. 또한 막걸리집에 쓰여 있는 글씨체와 돼지머리 놓는 법, 주전자 쥐는 법까지 세세하게 챙겼다. 배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는 “원근법을 이용한,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구도를 살리려고 애썼다”. 한마디로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보면 70년대, 50년대가 좀 새롭게 느껴질까요?”라고 그는 묻고, 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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