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년기의 대단원, 혹은 어떤 밀월의 추억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품행제로>와 같은 자전적 색채가 강한 회고적 청춘드라마이건 아니면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좀더 양식화된 장르영화이건 또 아니면 <실미도>처럼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룬 드라마이건 한국의 젊은 감독들은 가장 넓은 의미의 성장영화를 만들어왔고, 객석의 대부분을 채운 젊은 관객은 그 영화들 속에서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자기 이미지를 발견하고 갈채를 보냈다. 가족관람 시대가 끝나고 청년 관객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1960년대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영화에 속하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도 고전기 서부극의 친공동체적 영웅서사를 청춘드라마가 가미된 반영웅의 로드무비로 변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성장영화 시대가 이제 대단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첫째 이유는 1천만이라는 숫자 자체에 내포돼 있다. 관객이 1천만이 되기 위해선 1년에 영화를 한두편 본다는 40, 50대가 대거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편의 영화가 연이어 이 숫자를 돌파했다는 건 관객 연령의 확대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안정적 추세가 돼가고 있다는 의미다. 대중영화는 결국 관객의 욕망과 함께 걷게 마련이며, 젊은 감독과 젊은 관객의 밀월의 농도는 관객 연령대가 확대되는 만큼 옅어질 수밖에 없다. 감독도 관객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2004년 충무로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효자동 이발사>를 비롯해 다수의 가족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2003년 충무로에서 만들어진 희귀한 어른의 영화 <바람난 가족>의 성공 사례는 이미 한국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징조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한국영화는 홀로 남겨진 소년들을 서서히 떠나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