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3]
2004-04-27
사진 : 정진환
정리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카메라·구성 >> 염도를 맞추듯, 영화요소의 합 맞추기

허문영 |  영화를 보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전작들에 비해 많다는 게 눈에 띈다. 사소한 차이일 수 있는데 이전 작품들이 공간과 인물이 서로 소외시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의 무빙숏들이 공간과 인물이 친숙해진다는 느낌을 준다.

홍상수 |  그 전에는 공간과 인물이 떠 있다고 생각한 건지.

허문영 |  떠 있는 게 아니라 인물이 공간 속에서 주체성을 전혀 발휘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좀 친근해졌다는 느낌이다.

홍상수 |  왜 그렇게 했냐고 하면 역시 재미없는 대답이 될 텐데. 첫 영화 첫 컷 찍을 때 그냥 그렇게 해야될 것 같아서 찍어놓고 보니 (카메라가) 가만히 있는 거였고, 그러다보니 계속 가만히 있게 됐다. 나중에 합리화한 게 고정된 숏에 사람들을 끼워넣어서 신을 만들 때 일어나는 저항, 힘듦 이런 걸 즐겁게 생각하는 거구나 하는 거였다. 이번에는 그걸 해봤으니까 다른 걸 해봐야지 하는 거고. 처음에 김형구 감독이랑 줌인 연습을 많이 했는데 한컷도 안 쓰니까 줌인 안 해요, 우리? 하고 묻더라. (웃음) 줌인은 다음에 해보고 이번에는 팬을 해보고 싶어서 많이 했다.

허문영 |  예고편에서 중국집 장면이 나오는데 두 남자가 번갈아서 여종업원에게 수작거는 장면이 나온다. 그건 아주 명백하게 조작적으로 대비시키는 장면인데, 이런 것도 처음이다. 이전에는 가능한 연출의 손길이 안 느껴지게 했다면 이건 고의적으로 연출의 손길을 드러나는 방식이다. 뜻밖의 선택인 것 같은데.

홍상수 |  영화 찍을 때 그 안의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 요소의 합이 만들어내는 수치에 대한 내 이상치가 있다. 뭐 물속의 염도 같이. 내러티브의 흐름, 디테일의 끈적끈적함, 연기의 패턴, 구성이 갖는 인위성 등 여러 요소들이 합쳐서 내가 바라는 그 수치에 이르면 된다. 이전 영화는 구성 자체가 인위성이 보이는데, 다시 반복을 시킨다든지 하는 거. 그런데 이번에 그런 게 없으니까 단선적 흐름에서 약간 양식적인 걸 넣어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수치가 나오겠다고 봤다.

허문영 |  그러고보면 이 영화는 단락으로 영화를 나누지 않은 첫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홍상수 |  그렇다. 어떻게 생각하나.

허문영 |  좋다고 생각한다. (웃음) 어차피 난 그게 일종의 트릭이라고 보니까. 단락 나눈 것에 열심히 신경쓰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웃고 싶어하는.

홍상수 |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웃음)

허문영 |  <돼지가…>에서 음악이 이화(異化) 작용을 했다면 이번 음악은 동화(同化)적이다. <오! 수정> 때부터 뚜렷해지긴 했으나.

홍상수 |  전에는 음악을 쓰고 싶은 마음과 안 써도 된다는 마음이 다 있었는데 준비 기간이 짧기도 해서 결과적으로 미니멀하게 음악을 썼고 그게 좋았다. 이번에는 음악을 더 넣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촬영 전에 음악감독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고, 결국 둘 다 좋아하는 걸 발견해서 그걸 중심으로 많이 썼다. 나도 궁금하다. 그 음악들에 대한 반응이.

허문영 |  무빙숏에서 공간과 인물이 가까워진 것 같은 것이 음악에서도 느껴진다.

홍상수 |  프랑스 기자들에게도 음악 얘기를 좀 들었는데 전처럼 음악이 없는 게 더 좋다는 이도 있고, 이번 음악이 아주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

홍상수의 영화>> 부정의 텍스트? 긍정의 부분도 생기고 있다

허문영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고 전반적 이야기를 좀 하자면 홍 감독의 영화는 <강원도의 힘> 때 썼듯이 부정의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관습적 서사와 주체를 지워나가는 영화. 그래서 서사의 관습이나 주체성의 통념으로 지탱되던 이데올로기나 허위의식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그게 <오! 수정> 때부터 조금씩 달라져 간다는 느낌이다. 쉽게 말하면 주인공이 더 추해지진 않고 오히려 조금씩 귀여워진다. 그렇다고 관습이나 통념적인 주체성으로 돌아가진 않지만 현실에서 계속 동반자를 찾으려는 느낌이다. 이제 뭔가를 지워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홍상수 |  관념적으로 영화가 나의 반영이니까. 한 개인으로서 일상에서 구체적 상황이 주어지면 그 속에서 나를 지배하는 틀들, 예컨대 이데올로기나 도덕성을 직면하게 되고 그것을 사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판단하면서 지우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걸 잘하게 됐다고 해서 내가 대안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안처럼 시스템이 되는 순간 다시 나에게 부정될 테니까. 다만 그 부정하는 능력, 순간순간 빨리빨리 하면서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덜 주자는 게 개인적인 목표인데. 그게 영화에도 있는 것 같다. 디테일의 처리에서 부정의 방식이 자동적으로 소멸시키는 게 있지만, 영화라는 게 또 어떤 입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영화의 경우는 그 입장이 하나로 딱 떨어지는 메시지나 모럴리티 같은 건 아니고, 난 다만 나의 영화가 미학적으로 감성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어떤 물건이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자기를 쳐다보게 한다든가 평소에 안 하던 질문을 하게 한다든가 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게 생긴다. 부정들을 해오다 보니까 반복적으로 긍정하는 부분이 조금씩 생기니까 그걸 좀더 부각시키고 싶기도 하다. 또 개인으로 나이가 들면서 평생 가봐야 이건 부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내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더 자신있게 말하고 부각시킬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게 어떤 시스템은 아니고 조각들인데 그것들을 영화 속에서 좀더 자신감 있게 강하게 표현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문영 |  그런 작은 변화가 개인의 인생의 변화와 연관이 있나.

홍상수 |  구체적으로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긴 곤란할 거 같고. 20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시작했고 결혼하면서 좀더 심해졌고 영화를 만들면서 더 심해졌다. 지금은 내가 어떤 대안을 만든다거나 어떤 사람의 것을 통째로 받아들여 내 삶의 대안으로 삼는 건 완전히 포기했고. 순간순간 어떤 사람 만났을 때 내 속으로 확 들어오는 게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만 판단한다. 이게 맞냐 틀리냐, 사용하느냐 마느냐. 가능한 그게 더 빠르고 정확해서 나 자신과 그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해를 덜 끼치고 나도 자유로워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굳이 입장이랄까 하는 건 나의 그런 순간의 행위들의 총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상수와 영화>>매혹적이지만 매혹되지 않는다

허문영 |  엉뚱한 질문인데 혹시 노인이 된 자기 모습을 상상해보나.

홍상수 |  자주는 아니고. 워낙 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과거에 대한 연연함이나, 가능성이 그렇게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꿈꾸고 그러는 것 같은 거에 대해선 내 안에서 저항하는 게 있다. 확실한 건 지금 여기서 잘 살아야 하지 않나 생각이고 미래에 대해 곰곰이, 반복적으로 상상하는 건 잘 안 한다.

허문영 |  왜 물어봤냐 하면 전작들에서 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현재라는 시간에 갇혀 있다. 특히 <생활의 발견>에선 시간에 갇혀 있다는 느낌,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는. 긴 시간의 관념이 들어설 수 없다. 극중 캐릭터에는 감독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홍상수 |  사실 우리가 많이 훈련받고 산다. 현재를 살면서, 방금 표현을 빌리면, 긴 시간의 관념의 틀로 자신의 현재를 해석하거나 불만을 해소하거나 계획과 목표를 세우거나. 나는 그런 방식이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른 듯하다. 굉장히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고. 큰 시간의 이미지로 반복적으로 되어도 나를 감동시키지 못하고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 많이 해봤지만 그게 작동이 잘 안 되니까 방향을 바꿨다. 지금 나와 얽힌 상황 속에서의 순간적 판단능력 키우기. 쓸데 없는 이상이나 근거없는 믿음의 틀들을 순간순간 부정하고 나머지로 얻는 자유와 가슴 가벼움???? 같은 것이 중요하다.

허문영 |  다시 묻고 싶다. 60살이 된 홍상수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나.

홍상수 |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이 있고 꼭 지켜야 할 게 몇 가지 있는데 그건 비슷하지 않을까. 욕망을 좀더 잘 승화하고 지켜야 할 건 계속 지켜나가고 하면 좋겠다.

허문영 |  영화를 잘 안 보는 것으로 이름 났는데, <오! 수정> 때 나왔던 대사식으로 묻자면 그건 의도인가 우연인가.

홍상수 |  반반이다. 학생이었을 때부터 남의 책을 읽거나 미술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마찬가지인데 나를 압도하는 게 있으면 내가 자유롭게 느낄 때까지 소화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좋아하는 경우에는 더 그랬고. 좋아하는 소설가가 나타나면 2, 3년 넘게 매어 있는 나를 봤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드는 건 뭔가에 매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흡수하는 양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른 작품을 보고 영향받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종류별로 원류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가끔 보면 항상 신선하게 와닿고 자극을 준다.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보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요즘 영화를 안 보는 건 아니고 할리우드 대작이 있다면 가서 본다. 그렇게 돈을 많이 들였다는데 7천원 주고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그건 내 속의 어떤 다른 나인 것 같은데 그런 나를 인위적으로 없애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 봤던 식으로 영화보기, 그런 걸 다시 반복하고 싶은 건데, 그게 점점 잘 안 된다. 어렸을 때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중학교 들어가서 몇년 만에 만화방에 갔는데 너무 놀란 게 만화가 재미가 없어져 있더라. 그런 거 하고 비슷한 것 같다. 할 수 없지.

허문영 |  당신이 존경하는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 로베르 브레송인데 어떤 평론가가 영화사상 브레송처럼 영화 자체에 덜 매혹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예리한 지적인데 홍 감독의 경우도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 매혹이나 애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홍상수 |  그런 면이 있다. 그냥 영화가 뭔가 내 속에 있는 걸 드러내고 딴 사람과 공유하게 하고, 내 삶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내 스스로건 남에 의해서건 그런 게 좋은 거 같다. 살면서 계속 부닥치고 파고파고 해도 뭔가 있는 게 영화인 것 같다.

허문영 |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약간씩의 변화는 있다고 해도 형식과 스타일상의 일관성이 있는데, 그렇게 영화를 계속 만들다보면 파격에 대한 유혹도 가끔 느끼지 않나. 꼭 장르영화는 아니더라도 사극이나 전기물 같은.

홍상수 |  느낀다. 아주 가끔이지만. <돼지가…>를 만들었을 때 시점으로 보면 그 전의 몇년간은 굉장히 여러 옵션들이 있는 걸로 느꼈고 그것들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지내다가 첫 영화가 정해졌다. 그 긴 시간이 뭔가 나에게 중요한 걸 찾는 과정이었다고 믿기 때문에 잠시 잠깐 끌리는 게 있다고 해도 거기로 확 넘어갈 수는 없는 거 같다. 내가 또 원한다고 내가 꼭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내 개인으로 살아온 걸 비춰봤을 때 내가 크게 변화하는 걸 본 경우는 대강 이렇다. 항아리가 있으면 다 찰 때까지는 얼마나 찼는지 모르면서 그냥 있다가 다 차면 갑자기 다른 항아리로 바꾸는 식이다. 의식적으로 나를 바꾸려고 하는 건 항상 성공하지 못했다. 호기심에 따라 일을 하다보면 갑자기 항아리가 다 차서 다른 항아리로 바꾸는 것 같다.

홍상수의 미래>> 계속 건강하려면 계속 영화 해야지

허문영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배우 개런티도 좀 높고, 스탭도 최고 수준이고, 제작비가 높을 텐데. 그게 사실 홍 감독이 원하는 것과 반대방향이어서 어떤 부담감이 있지 않나.

홍상수 |  이전 영화보다 제작비가 5억원 정도 더 든 것 같다. 막연히 항상 생각하는 건 지금까지 내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들지 않아서 제작비를 줄여야 한다는 건데 어쩌다보니 이번에 많이 들었다. 자꾸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언젠가 실천하게 될 것 같다. (웃음)

허문영 |  언제나 차기작이 궁금하긴 한데 지금까지 정확히 2년마다 한편씩 만들었다. 이번에는 좀더 빨리 다음 작품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 걸로 알고 있는데 줄거리는 아니지만 이미지 혹은 어떤 메모가 있다면.

홍상수 |  조그만 건 있는데 말하기엔 이르다. 너무 초기라서 조금은 더 자신감 있을 때 말해야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학교도 그만둬서 핑계도 없어졌고, 구상이 길면 사람이 속에서 골병이 든다고 하나 개인적으로 힘든 기간이어서 이제 좀더 적극적으로 일을 더 해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상 기간 오래 잡지 말아야겠다고. 메모는 있는데 별거 아니다. 진짜로.

허문영 |  혹시 여자가 중요하게 나오나.

홍상수 |  항상 중요하지. (웃음) 지금 뭐라고 얘기하면 캐스팅할 때 연기자들에게 혹시 선입견 가지게 돼서 안 된다.

허문영 |  영화 찍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가.

홍상수 |  제일 건강하다. 평소에는 쉬이 지치고 낮잠 자야 하고. 촬영할 때 오히려 더 건강해진다.

허문영 |  건강하게 오래오래 영화 만들어주길 바란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