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유머와 문제의식, 역시 수준급! <슈렉2> LA 시사기
2004-05-21
글 : 오정연

3년 만에 돌아온 슈렉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의 기자들이 LA 시내에 위치한 랜드마크 리젠트 극장에 모였다. 그러나 새로운 슈렉에 대한 기대와 함께 그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절반의 우려. 동심을 설레게 만들었던 어여쁜 동화책을 사정없이 찢어 화장실 휴지로 사용했던 초록괴물은 2001년 여름 우리에게 정말로 통쾌한 즐거움을 선사했었다. 영화는, 당신이 기억하는 동화의 세계는 모두 잊으라고 과격하게 선언했다. 그리하여 <슈렉>은 그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 수상, 할리우드 여름영화 챔피언 등극 등 전세계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속편을 시작하기에, <슈렉>의 결말은 너무 단호한 감이 있었다.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은 이야기의 속편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은 당연했고, 전편만큼 새로운 속편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은 제작진들이 직면한 가장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찢어버린 동화책, 그 후

예정된 시각인 7시를 조금 넘겨 영화가 시작했고, 오프닝곡 <어쩌다보니 사랑에 빠진>(Accidentally in Love)이 흘러나오자, 신혼여행 중인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진흙온천 속에서 방귀로 듀엣을 연주하면서 변함없는 엽기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달콤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겁나먼”(far far away) 왕국의 왕과 왕비인 피오나의 부모가 보낸 초청장을 받는다. 슈렉과 피오나 공주, 동키 일행이 산 넘고 물 건너, 거기다 눈과 비까지 맞아가며 겁나먼 왕국에 도착한다. 그러나 꽃미남 왕자와 꽃미녀 공주 커플을 기다리고 있던 왕과 왕비, 국민들은 한쌍의 괴물 앞에 할말을 잃고 만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사실 전편에서 슈렉이 찢어버렸던 동화책의 결말을 완성하기 위해, 용맹스런 왕자가 실제로 피오나 공주가 갇힌 탑으로 달려가긴 했다.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결국 프린스 차밍은 아름다운 공주 대신 침대 위에서 유유자적 책을 읽고 있던 늑대 할머니의 모습에 충격 먹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프린스 차밍과 그의 엄마, 요정 대모는 틀어진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사실 1편에서 마법이 풀려 밤낮없는 괴물로 살게 된 피오나에게는 실은 동화 속 공주님 같은 예정된 미래가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현재의 삶을 택했던 것임이 2편에서 밝혀진다. 그러므로 슈렉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꾼 피오나 공주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슈렉 역시 변화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프로듀서 아론 워너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슈렉은 속편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편에서 동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디즈니를 향했던 신랄한 풍자의 칼날은 이제 대중문화를 좌우하는 할리우드로 향한다. 이에 대해 앤드루 애덤슨 감독은 “피오나의 출신배경은 무엇이며, 그 부모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피오나의 부모들은 딸의 배우자는 외모가 출중하고 돈이 많아야 한다는 식으로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다. 그것은 ‘동화 속 왕과 왕비’라는 그들의 출신 때문이다. 우리는 그처럼 이미지를 의식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베벌리힐스와 할리우드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한다.

새로운 스타, 장화신은 고양이

마이크 마이어스의 슈렉, 카메론 디아즈의 피오나 공주, 에디 머피의 동키. 전편의 막강 삼총사가 그대로 짝을 이루는 가운데 2편에서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가장 큰 기대주는, 단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목소리 연기를 하는 장화 신은 고양이. 칼을 차고 깃털 모자를 눌러 쓴, 조로의 고양이 버전인 그는 슈렉을 없애기 위해 피오나의 아빠가 고용하는 자객이다. 그리고 장화 신은 고양이는 실로 ‘위협적’이다. 단지 “그의 무기가 칼이 아니라, 간절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귀여운 눈빛”이라는 것이 예상을 ‘조금’ 빗나갈 뿐. 그처럼 거만하게 등장하고도,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집에 두고온 가족들의 핑계를 대면서 비굴 모드로 돌변하질 않나, 타고난 귀여움으로 슈렉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동키의 질투를 한몸에 받지 않나, <슈렉2> 최고의 스타자리는 따논 당상으로 보인다. 한편 얼짱 왕자 프린스 차밍은 버릇없는 마마보이의 진수를 선보인다. 그의 목소리를 연기한 루퍼트 에버렛은 그를 “외모와 돈밖에 바라는 게 없는 미국 문화를 대변한다. 겉으로 보면 굉장히 멋져 보이지만 굉장히 공허한 캐릭터로,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속편에서 펼쳐지는 모든 해프닝의 원인을 제공하는 피오나의 부모, 겁나먼 왕국의 왕과 왕비는 존 클리스와 줄리 앤드루스가 맡았다. 연륜과 함께 점점 현명해지는 줄리 앤드루스의 이미지 그대로 왕비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피오나의 결정을 믿고 지지하는 사려 깊은 캐릭터다. 2편이 달라진 것은 추가된 캐릭터뿐 아니다. 관객은 아마도 전편에 비해 놀랍도록 풍부해진 색감과 섬세해진 디테일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또한 1, 2편의 내용상 달라진 점들은 시각효과 담당자들의 고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가장 큰 문제는 현저하게 증가한 인간 캐릭터. 피오나 공주가 친정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2편에 무수히 많은 군중뿐 아니라 왕과 왕비, 프린스 차밍과 요정 대모 등 주된 캐릭터만도 4명 이상이 추가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입는 의상도 다양해야 하고, 까다로운 머리카락을 실제처럼 표현해야 하며, 여간해서 사실감을 살리기 어려운 피부의 느낌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함을 의미한다. 시각효과 감독 켄 베렌버그에 따르면, 전편 이후 개발된 여러 기술들의 목표는 “사진 같은 사실감보다는 덜 CG 같고, 더 유기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유머와 문제의식을 갖춘 적절한 속편

영화를 보다 즐겁게 볼 수 있는 몇 가지의 팁. 1편에서 악당 파콰드 영주의 성이 디즈니랜드를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면 2편의 겁나먼 왕국의 모델은 베벌리힐스다. 따라서 온갖 명품 브랜드로 가득한 로미오 거리(로데오 거리)에는 베르사체리(베르사체)와 파벅스(스타벅스) 커피, 버거 프린스(버거킹) 등 우리에게 익숙한 간판들이 잔뜩 선보인다. 이들 매장의 디자인을 사용하기 위해 제작진은 일일이 기업들에게 동의를 구했으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스타벅스의 경우는 1년 동안 제작진들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하면서 자신들의 반가움을 표현했다고. 피오나 공주의 침대 위에는 팀벌레이크 경의 그림이 붙어 있고(저스틴 팀벌레이크는 현재 카메론 디아즈의 연인이다), 헤롤드가 장화 신은 고양이를 만나는 술집의 종업원인 못생긴 이복자매의 목소리는 래리 킹이 우정 연기했으며, 찰스 황태자의 캐리커처도 깜짝 등장한다.

내내 폭소가 그치지 않았던 영화의 시사가 끝나고, 엔드 크레딧 이후 동키와 용 커플의 미래를 암시하는 사랑스러운 장면까지 모두 끝났다. 통쾌한 뒤집기를 통해 즐거움을 주었던 전편의 강렬함을 뛰어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에서, <슈렉2>는 전편의 문제의식과 유머를 적절하게 발전시킨 성공적인 속편이라는 것이 관객의 중론이었다. 여기서 잠깐.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첸버그는 이미 <슈렉3>과 <슈렉4>를 앞으로 2년마다 내놓겠다고 밝힌 상태다. 공동연출자 켈리 어즈베리와 콘래드 버논은 속편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편을 위한 여지를 남겨놨다”는 말을 인터뷰석상에서 할 정도인 것으로 보아 이들의 준비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