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과 차태현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 97년 개봉한 영화 <할렐루야> 한편을 제외하고 만난 적이 없었지만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누구보다 사이좋게 만나 형, 아우를 부를 것 같은 두 사람. 우연찮게 국가기밀급 사안에 연루된 두 남자의 이야기 <투 가이즈>는 그렇게 기획된 코미디영화다. 영화의 아이디어를 가진 선배가 10년차 후배를 불렀고, 후배는 그 ‘부름’에 응했다. 까마득하다고 불러도 좋을 어린 후배와 어울리기로 한 선배. 상대 주연으로 처음 남자배우를 만나게 된 후배.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우리의 짐작보다 덜 친밀했다는 두 사람이 영화를 찍으면서 알게 된 닮고도 다른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편안하게 흘러나왔다. 차태현은 본인의 표현으로 “나보다 훨씬 기가 강한” 선배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동시에 결코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았고, 그런 새까만(태닝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까맸다) 후배를 받아들이면서도 예의 쉽게 눌리지 않는 자신감으로 박중훈은 여유롭게 일관했다.
박중훈 | 어저께 기술시사를 보니까, 몇몇 신들은 명장면이야. 이번에 하면서 뭘 느꼈나면, 둘이 호흡의 길이가 비슷해. 신기한 거지. 얘가 살아왔던 나날들, 시간, 환경, 성격. 나랑은 다 다른 데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하나, 둘, 셋 하면 어딘가를 동시에 봐야 할 때, 안 맞을 거 같으니까 카메라쪽에서 손으로 한번 표시를 해준다든가 하는데, 태현이랑은 이미 같이 보고 있는 거야. 버디영화를 많이 해봤지만, 나로서는 이런 게 거의 처음인 것 같아.
차태현 | 전 10년 (연기생활) 하면서 남자랑 버디영화 찍어보는 게 첨이에요. 호흡이 잘 맞는다고 느꼈던 것도 <해바라기> 할 때 (김)정은이 누나 이후 처음이고. 내가 뭘 해도, 아무 노력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저쪽에서 알아서 다 받아주는. 정은이 누나랑 할 때도 그랬거든요. 근데 그땐 서로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단 지르고 보자였는데…. (웃음) (조)재현이 형이랑 할 때도 그랬었는데,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딱 나와요. 물론 다르게 나올 땐 저도 다르게 가고. 호흡이 맞으면 서로 달라도 그런 재미들이 있죠. 근데 형이랑 나랑은 스타일은 달라요. 오히려 정은이 누나가 저랑 스타일이 비슷하죠. 형은 굉장히 계획적이고. 애드리브도 미리 다 계산을 하거든요. 나 같은 경우는 진짜 툭툭 나오는 거고. 내가 뭘 했는지 나중에 기억도 못해요. (웃음) 그리고 난 슛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미리 안 맞춰보는 스타일인데 형은 미리 맞추고 그대로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 영화할 때도 중훈이 형이랑 대부분의 것들을 거의 다 짜고 했어요. 편하죠, 뭐. 기본적으로 나보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자신없는 부분이 나오면 받아줄 거란 것도 알잖아요.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죠.
박중훈 | 나중에 태현이가 내 위치가 되면 내 맘을 좀 알 텐데, 이번에 막상 둘이 한다고 했을 때 얘가 날 많이 어려워했어요. 둘이 친해도, 우리 같이 버디무비 꼭 한편 하자, 이럴 정도로 친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굉장히 많이 맞췄던 것 같아. 친해지려고 많이 다가서고, 내가 삭여야 할 부분들도 있었고. 그런 건 내가 선배로서 한 노력들이고, 태현이 역시 내가 권위적일 때가 있었을 텐데 선배에 대한 공경으로 나름대로 참아준 부분들이 있었을 테고.
둘의 호흡이 신기할 정도로 잘 맞다
차태현 | 중훈이 형 같은 경우는 영화를 같이 해보고 싶긴 했었는데, 상황이 너무 안 좋아가지고 반대를 좀 많이 했었어요. 영화를 찍더라도 좋은 컨디션과 좋은 상황에서 하고 싶었는데, 정말 최고 힘들 당시에 이게 들어왔고, 형은 또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 하고. 하여튼 그래서…, 그리고 시나리오도 없었고. (웃음) 그러니까 진짜 이거는, 처음에 딱 들어왔을 때는, 야, 이걸 하긴 해야 하는데, 대본도 없는 상황에서 하려니까,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웃음) 그리고 또, 둘이 한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무지하게 기대를 많이 할 텐데.
박중훈 | <투 가이즈>는 기획영화야. 둘이서 신나게 노는 코미디 한번 만들어보자, 라고 시작한 거니까. 영화에서 대본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차선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영화이기 때문에 대본이 없이도 스타트가 가능했던 거지.
차태현 | 나는, 여태껏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감독의 영역을 침범하고 싶지 않아서 감독님 생각대로 하는 편이었고, 내 생각과 아주 크게 부딪칠 때만 가끔 얘기하는 편이었는데, 그것도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굉장히 소극적인 플레이인 것 같아요. 이번에 <투 가이즈> 하면서 보니까 중훈이 형은, 진짜 대사 몇줄, 몇줄도 아니야. (웃음) 말 몇 마디 가지고도 촬영 안 하고 계속 얘기하고….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냥 형이 원하는 대로 한번 찍고, 감독님 원하는 대로 한번 찍고, 그래서 좋은 걸 뽑으면 되는 거를…. (웃음) 그러니까 이런 경험도 나는 처음 해본 거예요. 감독님하고도 계속 얘기하고, 상대배우하고도 계속 얘기해보고. 이런 식으로 일해본 게, 처음이에요.
박중훈 | 배우가 자생력을 키우려면 그렇게 해야 돼. 명연기는 좋은 작품에서 나오는데, 명배우는 나쁜 작품에서도 배우 가치를 해요. 너도, 자생력을 가지려면 어떤 때는 네가 원치 않더라도 의존적인 태도를 벗어날 필요가 있는 거지. 독립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감독하고 불협화음을 내는 차원은 곤란하지만.
차태현 | (웃음) 난 괜찮아요. 근데 형은 그렇게 얘기하고 나면 저기 구석에 와서 나한테 그래요. 사람들이 또 나한테 박 감독이라 그러겠다고. 주위 사람들이 가끔 그런 얘기하거든요. 이번에 중훈이 형이랑 같이 한다고 그러면, ‘아, 그럼 중훈이 형이 감독이지?’ 그럼 내가 되게 쉽게 얘기해요. 우린 투톱이에요. (웃음) 그리고 난 차징 스트라이커. (웃음)
박중훈 | 나는 ‘박 감독’이라는 말이 참 듣기가 싫어. 나랑 일해보지 않은 후배들은 내가 까다롭고 땍땍거리는 선배로 알아요. 근데 나랑 일해본 후배들은 안 그래. 내가 현장을 연출자로서 장악하자는 게 아니거든. 배우로서 장악력이 있어야 내가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관객도 장악하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배우로서의 장악력이 있어야 관객을 장악한다
박중훈 | 극명하게 말해서, 태현이가 참 인사성도 밝고 그렇긴 한데, 거기에 대해 표현력이 약해. 그러니까 일반적인 인사를 안 해. 얘에 대해 정보가 없으면, 그래도 얘가 미운 이미지가 아니니까 그나마 넘어가지, 그것도 아니면 ‘인사성 없네’ 그렇게 보일 거라고. 그래서 촬영할 때 내가 한번 불렀어요. 다른 덴 볼 거 없고, 현장에 오면 일단 나를 찾아라. 내가 어디 있든지 찾아내서, 눈을 보고 인사를 해라. 그리고 헤어질 때도 눈을 보고 인사를 해라. 그거는 꼭 지켜다오. 그랬더니, 꼭 그렇게 해야 돼요? 그러더라고. 그런데 끝까지 다 지켰어. 그거는 참 고마워. 근데 얘는, 쑥스러워서 사람 눈을 잘 못 보겠대. 눈을 보면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더라고. 사람의 눈을 봐야 돼. 안 그러면 상대방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
차태현 | (중얼중얼) 눈 보는 거 너무 짜증나.
박중훈 | 뭐가 짜증나?
차태현 | (웃음) 계속 봐야 되잖아요. (웃음) 말을 길게 해야 되는데 계속 (눈을) 보고 하면, 웃기지 않아요? (웃음) 형은, 스탭들 이름 요만하게 적어서 지갑에 넣고 다니다가 꺼내보면서 이름 불러주고 그러거든요. 저한테도 많이 보여주죠. 너도 꼭 이렇게 하라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영화 외적인 것들로. 일하는 거나 스탭들 대하는 거나. 근데 중훈이 형은 사람 의견을 너무 대놓고 물어봐. (웃음) 사실 의견이 없을 때가 더 많거든요. 그렇잖아요. 사람이 모든 일에 의견을 갖고 살 순 없잖아. 근데 너무 대놓고 물어보니까, 의견이 없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말 안 한다고 또 뭐라 그러고.
(이때 불쑥 사진기자, 촬영을 위해 준비를 해야겠다는 암시를 던진다.)
박중훈 | (시계와 사진기자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지금이 3시10분이니까 30분까지 대화를 좀 하고 나서 사진을 찍고, 그리고 남은 시간에 얘기 좀더 하고 그러면 될 거 같은데요?
차태현 | (일어서더니 자리를 빠져나간다)
박중훈 | (사진기자에게 다시 얘기를 듣더니) 아, 개인샷 때문에? 그럼, 준비되는 사람 먼저 찍고 나머지는 얘기하다가 준비하고 그러면 되죠? (스튜디오 입구쪽으로 걸어나가는 차태현의 뒤에 대고) 야, 태현아! 그럼 너가 먼저 준비하고 내가 얘기하고, 내가 준비하고 너가 얘기하고, 그렇게 할까?
차태현 | (뒤도 안 돌아보고 무심하게) 예.
박중훈 | 야…, 태현아…. 대화를 좀 하고 나가,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