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철학이 있는 SF 블록버스터 <아이,로봇>의 모든 것
2004-07-2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알렉스 프로야스의 <아이, 로봇>에 주목하는 5가지 이유

어떤 작가들은 한권의 책을 쓰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런 작가였다. 그는 <로봇>과 <파운데이션> 시리즈로 아직 오지 않은 역사를 내다보았다. 두 시간에 불과한 영화는 아시모프로부터 로봇을 물려받았지만, 섣불리 그 장대한 시간의 중심을 건드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이, 로봇>은 SF의 전설이 된 소설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쓰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아시모프를 안다면, 그 제목만으로도 이 영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이콧 운동을 벌인 어느 아시모프의 팬도 인정했듯 알렉스 프로야스는 기대할 만한 영화를 내놓을 감독이기도 했다. 프로야스는 <크로우> <다크 시티>로 희망없는, 그러면서도 시선을 빨아들이는 미래 도시를 창조했다. SF문학의 뼈대를 세운 로봇공학 3원칙, 사막을 건너는 모세의 지팡이처럼 신천지를 예언하는 비전, 고풍스러운 이율배반의 미래. 드문 개성과 재능을 지닌 이들이 세운 <아이, 로봇>은 생각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생각하는 블록버스터다.

편집자

>>> 아이작 아시모프는 사람은 누구나 ‘프랑켄슈타인 신드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만든, 그러나 자신보다 강한 로봇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로봇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살해한 그의 괴물만큼이나 위험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 로봇>은 수백년 동안 뿌리를 내려온 그 두려움에 근거를 두고 있는 영화다.

2035년 시카고, 테크놀로지를 혐오하는 형사 델 스프너는 거대 로봇회사 U.S. 로보틱스의 공동창립자인 래닝 박사 자살 사건을 맡게 된다. 스프너는 밀실이나 다름없는 그 방 안에 NS-5 로봇 써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래닝을 창밖으로 집어던졌다고 의심한다. NS-5는 U.S. 로보틱스가 막 시장에 내놓은 최첨단 로봇. 가장 인간에 가까운 모델이지만, 모든 로봇은 로봇공학 3원칙 중에서 첫 번째 조항 때문에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에게 도움을 청한 스프너는 래닝이 써니에게 심어둔 비밀과 NS-5에 얽힌 음모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아이, 로봇>은 1억달러가 넘는 규모로 제작된 블록버스터이면서도 가까운 미래를 향한 고뇌를 품고 있다. 로봇은 강한 육체와 복잡한 연산도 쉽게 해내는 두뇌가 있다. 그에 비해 인간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자유의지뿐이다. 그 자유의지마저 로봇한테 주어진다면, 인간은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이, 로봇>은 <프랑켄슈타인>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으로 이어져온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지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답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대답에 도달하는 과정은 시각적으로 박력있으면서 매우 침착하기도 하다. <다크 시티> <크로우>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인정받은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는 처음 대하는 거대한 블록버스터 앞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 미래 도시, 붉은빛을 내보이며 인간을 습격하는 NS-5 군단, 수직으로 뚫린 허공을 가로지르는 카메라는 1억달러에 걸맞은 위세를 과시하지만, 드라마의 기세 역시 만만하지 않다. 로봇공학과 논리학의 역사, 아시모프가 창조한 우주신화를 포획해 구축한 <아이, 로봇>은 불길한 전제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신천지를 발견하는 영화다.

1. SF문학의 기초 뼈대를 세운 대원칙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3원칙

1941년 12월 아이작 아시모프는 SF잡지 <어스타운딩> 편집장 존 캠벨과 함께 로봇공학 3원칙을 만들었다. 아시모프는 로봇을 소재로 한 세 번째 단편 <라이어!>를 구상 중이었고, 로봇 내부에 안전장치가 필요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시모프는 로봇공학 3원칙이 트릭으로 사용된 <라이어!>에 이어, 네 번째 단편 <속임수>에서 그 완전한 형태를 선보였다. 50년 동안 SF소설과 로봇공학의 근본을 이루어온 로봇공학 3원칙은 다음과 같은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원칙 로봇은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 그리고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로봇은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사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로봇은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로봇공학 3원칙은 로봇을 통제하기 위한 완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원칙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 서로 충돌할 수 있다. 또 우위에 있는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전제 때문에 복잡한 논리적 추론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시모프는 이런 로봇공학 3원칙을 이용해 연작소설 <로봇> 시리즈에 흥미로운 지적 유희를 끌어들이곤 했다. 시리즈 세 번째 장편인 <여명의 로봇>은 언뜻 쉬워 보이는 그 유희가 로봇공학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장난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행성 오로라 최고의 로봇공학자 페스톨프 박사는 인간형 로봇이 스스로 두뇌작동을 멈추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 범인으로 지목된다. 로봇은 자신이 받은 명령과 로봇공학 3원칙이 서로 충돌해서 올바른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만 일종의 ‘자살’을 택하는데, 고급 로봇을 그런 지경으로까지 이끌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여명의 로봇>은 과연 누가, 어떤 복잡한 명령을, 어떤 교묘한 방식으로 내렸는지 파헤치는 추리소설이다.영화 <아이, 로봇>에서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도 로봇공학 3원칙이다. NS-5는 로봇공학 3원칙을 지키도록 설계되었지만, 그리고 분명히 지키고 있지만, 스프너와 다른 인간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제조과정에서 일어난 우연으로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라이어!>의 로봇은 제1원칙을 잘못 해석해서 사람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일삼는다. <아이, 로봇>은 이처럼 로봇공학 3원칙은 변화무쌍하며, 인간을 보호하도록 고안된 로봇공학 3원칙이 도리어 인간을 위협하는 근거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근심한다.

2 . 로봇 시대를 아우르는 아홉 개의 단편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집 <아이, 로봇>

그 자신이 뛰어난 생화학자였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SF소설을 쓴 대가였다. 그는 “수백번이나 되풀이된, 지식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로봇 이야기에 싫증이 나서” 직접 새로운 로봇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정했다. <아이, 로봇>은 그 첫 번째 단편소설 <로비>를 시작으로 아홉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아시모프는 연대와 캐릭터, 장르가 모두 다른 이 이야기들을 묶기 위해 U.S. 로보틱스에서 평생을 보낸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을 내레이터로 선택했다. 한 기자가 칠십대에 이른 캘빈을 취재하면서 듣는 이야기가 <아이, 로봇>에 속해 있는 아홉편의 단편소설. 존 캠벨은 아시모프가 처음 쓴 <로비>를 거절했지만, 이후 <로봇> 연작을 후원하고 거기에 영감을 주는 편집자 역할을 했다. <로비>는 베이비 시터 로봇에 애정을 느끼는 아이와 그 로봇을 싫어해 집에서 내보내는 어머니가 갈등하는 이야기로 드라마틱하거나 독창적인 소설은 아니었다. 그러나 <로비>는 “미친 과학자가 저지른 신성모독이 아닌 엔지니어가 설계한 로봇”을 도입하고 싶어한 아시모프에게 하나의 기준과도 같았다. <아이, 로봇>은 1982년에 태어나 82살에 죽었다고 기록되는 캘빈이 자신은 로봇 시대의 처음을 지켜보았으며, 그 다음 시대는 당신들의 몫이 될 거라고 말하는 <불가피한 충돌>로 끝을 맺는다.

아시모프는 <아이, 로봇>을 내놓고 나서 그 주제를 새로운 세계의 건설과 결부한 연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강철도시> <벌거벗은 태양> <여명의 로봇> <로봇과 제국>으로 이어지는 네편의 장편이 그것. <강철도시> <벌거벗은 태양>은 지구인 경찰 베일리와 행성 오로라인들이 만든 로봇경찰 다닐 올리버가 파트너로 일하는 추리소설이고, <여명의 로봇> <로봇과 제국>은 지구인들이 우주개척 시대로 접어드는 일종의 미래 역사에 해당된다. 국내에서 <아시모프 로봇> <로봇과 제국>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소설들은 전작 <아이, 로봇>과 상당한 시간 차이가 난다. 아주 오래전에 외계 행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의 고향을 잊고 지구인을 경멸하고, 로봇이 지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 그 때문에 래닝이나 캘빈 박사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이름조차 모르는 고대인으로 언급되는데, <여명의 로봇>에는 은하계 여기저기에서 내려오는 전설로 <라이어!>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아이, 로봇>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아홉개의 단편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 아이디어와 장면과 시퀀스를 모았다”고 말했다. 아시모프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필립 K. 딕과는 달리 영화와 인연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설명이 많고 사건에 돌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아시모프의 소설은 <바이센테니얼 맨>과 몇몇 실패작을 제외하면 거의 TV용으로만 제작되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