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철학이 있는 SF 블록버스터 <아이,로봇>의 모든 것 [2]
2004-07-2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3. 로봇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

<아이, 로봇>의 캐릭터들

<아이, 로봇>은 제목과 로봇공학 3원칙을 제외하면 아시모프의 소설집과 거의 관계가 없다. 그러나 앨프리드 래닝과 수잔 캘빈, U.S. 로보틱스는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원작에서 캘빈은 U.S. 로보틱스에서 일하는, 개척자에 해당하는 로봇공학자 래닝의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로봇이 말을 할 줄도 모르던 시대부터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을 만큼 발달한 시대까지 지켜보았고, 그 곁에는 언제나 래닝과 U.S. 로보틱스가 있었다. 영화 <아이, 로봇>은 캘빈을 새로운 캐릭터 델 스프너의 파트너로 초대했지만, 원작대로라면 2035년엔 53살이 되었을 그녀를 젊고 아름다운 로봇 심리학자로 바꿔놓았다. 캘빈은 오직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로봇을 사람보다 신뢰하고, 그 때문에 스프너와 충돌하곤 한다. 로봇 심리학자는 로봇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의 두뇌에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요소를 주입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직업이다. 래닝은 여전히 로봇 시대를 열어놓은 로봇공학의 선구자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는 자신이 처음 만든 양전자 두뇌가 스스로 진화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고, 꿈을 꾸는 로봇 써니에게 비밀을 봉인한 다음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래닝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지구의 역사에 또 하나의 세계를 더할 수 있는 창조자와도 같은 인물이다.

윌 스미스가 연기한 형사 델 스프너는 수백년이 흐른 뒤 태어난 <강철도시>의 베일리처럼 로봇과 기술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는 휘발유로 움직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로봇이 완벽하게 통제된다는 사실을 항상 의심하고, 오직 사람만을 믿는다. 로봇을 믿지 않을 만한, 타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인물. 그러나 어떤 로봇과도 다른 써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신뢰의 몸짓으로 스프너를 설득할 수 있었다. 써니는 래닝이 연구실에서 남몰래 만든, 이름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NS-5 로봇이다. 그는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에 위성으로 다운로드받은 프로그램 대신 ‘아버지’ 래닝 박사가 부여한 소명에 의해 움직인다. 베일리와 파트너를 이룬 로봇형사 다닐 올리버와 비슷한 존재지만, 인간형 로봇인 다닐과 달리 로봇처럼 생겼고, 그 내부는 다닐보다 더욱 인간적이다.

4. 비장하고 음울한 미래를 창조하는 재능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아이, 로봇>의 최대 장점으로 “알렉스 프로야스는 비주얼에 관한 감각을 타고났다”고 썼다. <크로우>로 처음 주목을 받은 프로야스는 어둠 한 가지색만 가지고도 비장하고 음울한 미래를 창조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결코 푸른색을 쓰지 않고, 쏟아지는 햇빛 한가운데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아이, 로봇> 제작진은 이 캄캄한 감독 때문에 촬영장소로 택한 캐나다 밴쿠버에서 나뭇잎과 덤불을 모두 뜯어내야 했다.

프로야스는 이집트에서 태어나 세살 때부터 호주에서 자랐다. 뜻밖에도 맑고 뜨거운 햇살로 덮인 두 나라를 고향으로 가진 그는 호주영화·TV·라디오스쿨에서 영화를 공부했지만, 호주 영화산업은 매우 한정된 기회만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통해 할리우드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젊은 감독들처럼, 그가 기회를 찾은 곳은 MTV. 뮤직비디오 덕분에 <크로우>를 연출하게 된 그는 브랜든 리가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비극 덕분에, 또 다른 기회로 도약할 수 있었다. 멈추지 않는 비가 내리고, 검은 망토를 입고 흰 피에로 분장을 한 사자(死者)가, 검은 눈물을 흘리는 죄악의 도시. <크로우>는 록음악의 리듬과 음산한 고딕풍 건물, 농담에 따라 감정을 품는 어둠을 한 군데에 채색했고, 젊은 관객은 말보다 눈으로 먼저 그 영화를 받아들였다. SF스릴러 <다크 시티>는 그 재능을 한층 정제한 영화였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한 남자의 여정에 지구 전체를 흔드는 음모를 결합한 이 영화는 매혹적인 드라마보다도 전율하는 미래 지구와 거기 비쳐드는 흐린 빛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인상적인 전경은 <아이, 로봇>에도 흔적을 남겼다.프로야스는 <아이, 로봇>에 탁월한 스타일과 함께 아시모프의 영혼 또한 부여했다. <아이, 로봇>은 제프 빈타가 쓴 밀실살인 시나리오 <하드 와이어드>가 원안이었다. 소년 시절 <아이, 로봇>을 읽었던 프로야스는 로봇이 살인을 한다는 빈타의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싶었고, 오래된 꿈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는 아시모프 팬들이 벌이는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영혼에 충실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5. 현재에 근거를 둔 미래 도시

<아이, 로봇>의 프로덕션디자인

<아이, 로봇>은 2035년이라는 자막이 없다면 현재가 배경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영화다. 프로야스는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허구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근거를 둔, 미래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도 할 수 있는” 미래 도시를 보여주고자 했다. 수동 자물쇠 세개가 달린 스프너의 방문에서 로봇이 모든 가사를 대신 하는 경이로운 미래를 떠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 로봇>의 프로덕션디자이너는 남다른 시선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패트릭 타토풀로스는 프로야스와 함께 <다크 시티>의 그늘을 만들었고, 롤랜드 에머리히와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스펙터클을 조율했다. 그는 “믿을 만하고 사실적인 디자인”을 주장하는 프로야스에게 맞춰주면서도, 고층 건물을 관통하는 컴퓨터의 양전자 두뇌를 내리꽂았고, 극소로봇인 나노봇의 미세한 물결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석기시대 화살촉 같은 자세로 뻗어 있는 U.S. 로보틱스 건물과 무균질의 로비, 광택이 흐르는 고층 건물들, 시카고 빈민가의 90년대풍 건물, 미래형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존하는 거리를 조화롭게 디자인한 것도 눈에 띄는 성과다.

<아이, 로봇> 제작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디자인은 물론 써니였다. NS-5 로봇인 써니는 배우 앨런 튜딕이 컴퓨터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전자공이 달린 보디슈트를 입고 연기했다. 투명한 신체, 단단한 합금이지만 만지면 부드러운 얼굴, 가늘어 보이지만 스파이더 맨처럼 활동할 수 있는 강한 허리, 근육을 흉내낸 팔과 다리는 50여 차례에 걸친 수정 끝에 태어난 디자인. 써니와 똑같이 생긴 NS-5 로봇 수천대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인간 시위대와 맞부딪치는 장면은 시각효과가 1천여컷에 달한다는 제작진의 한숨이 아깝지 않을 장관이다. <댄싱 히어로>의 배우이자 무용가인 폴 메르큐리오가 사람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로봇들의 움직임에 기초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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