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배우, 스피드 업!
“<화산고>에선 장혁을, <일단 뛰어>에선 송승헌을 이겨보고 싶었어요.” 2년 전, 권상우가 영화 두편을 찍고 난 뒤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그는 신인 때부터 숨김없이 자신의 포부를 드러낼 만큼 욕심이 많았다. 데뷔 이후 3년 반. 그는 그 욕심이 단지 대담함만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때로 자신의 목표를 남들에게 보인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스타들의 경우, 당장 다음에 출연할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마저 조심스러운 상황. 그러나 권상우는 다르다. 그는 상대를 당황스럽게 만들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이기에, 조금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인터뷰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원과 번갈아 옷을 갈아입고 사진을 찍으면서 산만하게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그는 질문이나 대답이 끝나기 전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자리를 뜨지 않을 사람처럼 대화에 열중했다. “가식적으로 답하느니 솔직하게 대답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해진 대로만 하면 욕은 안 먹을 수 있겠죠.” 이쯤에서, 그가 대종상 시상식에서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한 애정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 곤란해졌던 일이 떠오른다.(수상 직후 그는, "‘처음으로’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주신 유하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고, 이로인해 "<화산고> <동갑내기과외하기>같은 영화는 부끄러운 영화였나"라는 식의 의문을 제기받았다.) “언론에서는 실언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실수가 아니에요. 저는 남우주연상 후보가 아닌 것, <말죽거리…>가 작품상 후보가 아닌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걸요. 저한테는 그만큼 소중한 작품이었으니까. 어차피 그때 인기상을 수상한 것은 그 영화 때문이었고, 그런 말들은 스탭들에 대한 제 감사의 표시였어요.”
<신부수업>은 원래 권상우가 <동갑내기 과외하기> 직후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작품. <말죽거리…>에 ‘꽂혀서’ 뒤로 미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듯해서” 선택한 이 영화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규식은 여태껏 그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신실하고(?), 가장 적은 액션을 선보이는(일방적으로 맞는 장면은 많다) 인물. 자기 몫을 해내기 위해 감독님께 자신의 의견도 많이 냈고, 애드리브도 많았다. 일방적으로 봉희에게 휘둘리는 영화 속 규식과 달리 자신이 나오는 모든 장면을 책임지려 했던 의지가 엿보인다. 그가 이 영화에서 코미디와 멜로라는 두 가지 모두를 자신만만하게 소화한 것은, 전작들을 통해 최대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자신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모습을 선보이면 좋을지를 계획해왔던 것이다. “하이틴물, 코미디, 액션, 멜로 등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한국에 몇명이나 될까 싶어요. 전 그런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철저한 계획들은 넘치는 욕심의 증거일까. 하지만 의외로 연기에 대한 그의 욕심은 까마득히 먼 미래를 향하지 않는다. “전 연기를 길게 안 할 거예요. 앞으로 3년 정도?” 도대체 어쩌려고 그런 확언을 하나 싶지만 본인은 사뭇 확고하다. “연기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인생에서 중요한 건 가정이나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를 하면 그런 게 힘들잖아요. 순리대로 살고 싶어요.”
내년 1월, 권상우는 무게 있는 누아르에 출연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른바 ‘대선배님들’과의 첫 작업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영화에서든지 “살아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로서는 부담이 될 만한 일. “저만의 장점이 있다고 믿어요. 그분들이 못하는 리얼 액션을 할 수 있고, 강함 속의 여림을 표현할 수 있고. 살아남을 구멍을 찾아야죠. 자신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