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남극일기> 뉴질랜드 촬영현장 [3] - 감독, 배우 인터뷰
2004-08-25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 동료가 크레바스 아래로 추락했지만 구할 틈이 없다. 살아남은 자들 또한 언제나 죽음 앞에 노출되어 있다.

<남극일기>는 어떤 영화?

도달불능점을 향한 한국 탐험대원들의 여정

남위 82’08분 동경 54’58분에 위치한 도달불능점(到達不能粘). 남극대륙에서 가장 먼 지점으로 해발 3700m, 최저기온이 무려 영하 80도에 이른다. 1958년 소련 탐험대가 단 한 차례 정복한 것 외엔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이곳에 닿기 위해 최도형 대장l송강호l을 위시한 6명의 한국 탐험대가 세계 최초 무보급 횡단에 나선다. 탐험 10일째.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에 성공한 최도형 대장에게 끌려 이번 횡단에 합류한 민재l유지태l는 크레바스에 빠지는 위기에 처하지만 노련한 리더 최도형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매일 죽음과 대면할수록 팀워크는 탄탄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탐험 21일째. 최도형 일행은 행군 도중 80여년 전 도달불능점에 도전했던 영국 탐험대가 남긴 남극일기를 발견한다. 삽화가 그려진 일기를 최도형으로부터 건네받은 뒤 휴식 때마다 들여다보게 되는 민재. 한장씩 넘겨보던 민재는 영국 대원들이 한명씩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꺼내지만 동료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긴다. 탐험 33일째. 장비담당 대원인 서재경(최덕문)이 바이러스가 없는 남극에서 감기 증상을 보이고, 결국 화이트 아웃 상황에서 서재경은 대열에서 이탈, 실종 상태가 된다. 재경을 돌보는 책임을 다하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민재에게 도형은 전진만이 탈락한 자를 위한 길이라고 설득한다. 구조에 나서지만 재경은 찾을 길 없고, 베이스 캠프와 교신마저 끊긴데다 불길하게 1922년 영국 탐험대의 말라붙은 시체만이 발견된다. 조난요청을 해야 한다는 성훈(윤제문)과 그러다간 다 죽는다고 만류하는 영민(박희순)이 부딪치는 등 팀원들은 의견 충돌을 빚지만 오직 한 사람, 최도형 대장은 도달불능점만을 생각하고 있다. 최단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최도형은 듀피크 산을 가로지르는 무모한 루트를 내놓고, 팀원들간의 갈등은 더욱 높아진다. 과연, 이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떨구고 욕망하는 도달불능점에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인가.

제작진과 출연진의 공동 기자회견

“첫 촬영 때는 22번 테이크까지 갔다”

8월8일 오후 5시 뉴질랜드 퀸스타운 밀레니엄 호텔 5층 그랜드 볼룸에서 <남극일기> 제작진과 배우들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제작자인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와 감독 임필성, 주연배우 송강호, 유지태가 참석했다. 이 밖에 탐험대원 역을 맡은 조연배우와 유진 역으로 우정출연키로 한 배우 강혜정, 산악인 박영석씨도 함께 자리했다. 이 자리에서는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비롯해 지금까지 제작상황을 전하는 짧은 영상물도 상영됐다.

99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서 9고까지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막상 현지에 와서 촬영을 하다보니 애초 구상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

임필성 l 최초의 아이디어는 남극횡단에 실패한 한국 탐험대의 이야기를 다룬 방송다큐멘터리를 보고 떠올렸다. 휴먼드라마의 정반대 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다면 인간 욕망이 비극을 불러왔다는 원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질랜드 현지 스탭들과 시스템이 다르지만 표현 못할 건 없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스탭들을 구했고, 그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현장에서 인물의 동선이나 카메라 앵글을 다른 걸로 바꾸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밀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준비기간이 긴 만큼 많은 콘티 버전을 갖고 있었는데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남극일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송강호 l 〈K2>나 <버티칼 리미트>처럼 남극을 배경으로 액션에 중점을 둔 영화였다면 안 했을 것이다. 극한의 지역에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심리를 풀어놓고 이를 정교하게 꿰맞춰놓은 시나리오가 무엇보다 좋았다.

유지태 l 내겐 연극계 선배들과 앙상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끌렸다. 아. 맞다. 민재라는 역할이 서서히 변화되는 감정을 내보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40대 남자(<올드보이>), 유부남도(<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아닌 무엇보다 내 나이에 맞는 인물이라서 맘에 들었다. (웃음)

탐험대원들과 교신하는 유진 역의 강혜정은 촬영분량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강혜정 l 처음에 감독님이 전화하셨는데 곧바로 송강호 선배님을 바꿔주시더라. 내게 할 이야기 있다며 무작정 나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 자리에 같이 계셨던 감독님이 이때다 싶으셨는지 시나리오를 전해주셨다. 역할 비중이나 캐릭터의 매력보다는 시나리오 자체로 출연을 결정했다.

배우들은 촬영 전에 박영석 대장으로부터 훈련을 받기도 했는데.

송강호 l 썰매 끄는 것이나 폴대 잡는 디테일 등을 마스터했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나중에 연기를 못한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처럼 스키를 신고 걸을 자신이 있다. (웃음)

날씨 때문에 연기하는 게 고역일 텐데. 송강호 l 지금은 편하게 잘 찍고 있지만 처음에는 한국에서 연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게 사실이다. 다 내 탓이긴 하지만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아 첫 장면 촬영 때는 무려 22번의 테이크 끝에 오케이를 받았다. (웃음) 최도형이라는 인물은 대원들과 갈등을 벌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고 본다. 아무도 올 수 없고, 갈 수 없는 극한으로 가서 그곳에서 자기와 대결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아닐까.유지태 l 다른 촬영 때문에 자주 뉴질랜드에 왔는데 올 때마다 공기가 맑다는 생각이 맨먼저 든다. 추울 땐 머리 끝까지 얼어붙는 것 같으면서도 숨쉬기 편하니까 좋다. 민재만 놓고 보면 이번 영화는 성장영화의 느낌이 있다.

어떤 영화를 내놓고 싶나. 영화광 출신이니 기존 감독들의 작품에 비교해서 이번 영화의 느낌을 일러줘도 좋을 것 같다.

임필성 l 언젠가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습자지에 대고 그리듯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니고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심하게 참조한 건 없다. (웃음) 다만 스탠리 큐브릭이나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들처럼 독특한 장르영화였으면 한다. 무엇보다 관객을 이해시키려는 영화보다 관객이 체험하고픈 영화를 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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