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료가 크레바스 아래로 추락했지만 구할 틈이 없다. 살아남은 자들 또한 언제나 죽음 앞에 노출되어 있다.
<남극일기>는 어떤 영화?
도달불능점을 향한 한국 탐험대원들의 여정
제작진과 출연진의 공동 기자회견
“첫 촬영 때는 22번 테이크까지 갔다”
99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서 9고까지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막상 현지에 와서 촬영을 하다보니 애초 구상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
임필성 l 최초의 아이디어는 남극횡단에 실패한 한국 탐험대의 이야기를 다룬 방송다큐멘터리를 보고 떠올렸다. 휴먼드라마의 정반대 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다면 인간 욕망이 비극을 불러왔다는 원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질랜드 현지 스탭들과 시스템이 다르지만 표현 못할 건 없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스탭들을 구했고, 그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현장에서 인물의 동선이나 카메라 앵글을 다른 걸로 바꾸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밀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준비기간이 긴 만큼 많은 콘티 버전을 갖고 있었는데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남극일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송강호 l 〈K2>나 <버티칼 리미트>처럼 남극을 배경으로 액션에 중점을 둔 영화였다면 안 했을 것이다. 극한의 지역에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심리를 풀어놓고 이를 정교하게 꿰맞춰놓은 시나리오가 무엇보다 좋았다.
유지태 l 내겐 연극계 선배들과 앙상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끌렸다. 아. 맞다. 민재라는 역할이 서서히 변화되는 감정을 내보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40대 남자(<올드보이>), 유부남도(<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아닌 무엇보다 내 나이에 맞는 인물이라서 맘에 들었다. (웃음)
탐험대원들과 교신하는 유진 역의 강혜정은 촬영분량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강혜정 l 처음에 감독님이 전화하셨는데 곧바로 송강호 선배님을 바꿔주시더라. 내게 할 이야기 있다며 무작정 나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 자리에 같이 계셨던 감독님이 이때다 싶으셨는지 시나리오를 전해주셨다. 역할 비중이나 캐릭터의 매력보다는 시나리오 자체로 출연을 결정했다.
배우들은 촬영 전에 박영석 대장으로부터 훈련을 받기도 했는데.
송강호 l 썰매 끄는 것이나 폴대 잡는 디테일 등을 마스터했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나중에 연기를 못한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처럼 스키를 신고 걸을 자신이 있다. (웃음)
날씨 때문에 연기하는 게 고역일 텐데. 송강호 l 지금은 편하게 잘 찍고 있지만 처음에는 한국에서 연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게 사실이다. 다 내 탓이긴 하지만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아 첫 장면 촬영 때는 무려 22번의 테이크 끝에 오케이를 받았다. (웃음) 최도형이라는 인물은 대원들과 갈등을 벌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고 본다. 아무도 올 수 없고, 갈 수 없는 극한으로 가서 그곳에서 자기와 대결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아닐까.유지태 l 다른 촬영 때문에 자주 뉴질랜드에 왔는데 올 때마다 공기가 맑다는 생각이 맨먼저 든다. 추울 땐 머리 끝까지 얼어붙는 것 같으면서도 숨쉬기 편하니까 좋다. 민재만 놓고 보면 이번 영화는 성장영화의 느낌이 있다.
어떤 영화를 내놓고 싶나. 영화광 출신이니 기존 감독들의 작품에 비교해서 이번 영화의 느낌을 일러줘도 좋을 것 같다.
임필성 l 언젠가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습자지에 대고 그리듯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니고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심하게 참조한 건 없다. (웃음) 다만 스탠리 큐브릭이나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들처럼 독특한 장르영화였으면 한다. 무엇보다 관객을 이해시키려는 영화보다 관객이 체험하고픈 영화를 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