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전쟁호러 <알포인트> 이야기 [3] - 공수창의 <알포인트> 촬영일지
2004-08-3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2004년 1월 7일

휴대폰이 울린다. 최강혁 PD에게서 온 전화이다. 첫마디가 “감독님?”으로 시작된다. 순간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진다. 감독이라니… 15년 동안이나 작가라는 호칭에 익숙해진 나에게 감독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붙여진 것이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난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2004년 2월 20일

우리 영화에 나올 경비정을 타고 바다로 나가보았다. 낡을 대로 낡은 경비정은 움직일 때마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는다. 파도가 생각보다 강해서 롤링이 심하다. 영화도 영화지만 안전사고가 날까봐 걱정스럽다. …. 2004년 2월 24일 (오른쪽)

지난 이틀간 찍은 경비정신 편집본을 보곤 좌절과 절망에 빠져 밤잠도 못 자고 뒤척였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감독으로서의 상상력이 이렇게 다른 건지…. 경비정 장면을 시나리오로 쓸 때는 느낌이, 필이 팍 꽂혔는데 말이다. 나에게 감독직을 제의한 인간들에게 또 그 제의를 받아들인 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다 잠들었다.

2004년 3월 2일

오늘도 ‘마의 35신’을 찍었다. 첫날 수색에서 소대원들을 잃어버린 조 상병이 갈대밭에서 철모 뒤통수에 “정숙아 기다려라”라고 쓴 병사를 만나는 장면 말이다. 컷 수로는 4컷에 불과하지만 42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에서 건져내야 한다. 복코산 갈대밭을 다 작살낼 정도로 온 산을 누비면서 찍었다. 그것도 장장 일주일씩이나.

2004년 2월 20일

캄보디아 스님의 독경소리가 고즈넉이 들리는 가운데 저택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 준비해온 제문을 읽어내려가다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 땅에서 죽는 것도 억울한데 스물 몇 꽃다운 나이에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의 죽음이라니…. 혼마저도 우리 땅을 밟을 수 없게 된 그들의 욕된 죽음을 생각하다가 또 그 후손들이 이라크에 파병될 거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2004년 3월 25일

캄보디아엔 일기예보를 전해주는 기상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최 PD는 어김없이 일기예보를 전해준다. 새벽 1시까지는 안개가 없는 맑은 날씨가 될 거라는. 복코산 생활 20년 경력에 빛나는 관리소 소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오는 일기예보이다. 시계거리 1m도 안 되는 안개부터 시작해서 맑은 날씨, 비, 태풍에 비견될 정도의 바람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눈 내리는 것 빼고는 일기 변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이 이곳 저택의 날씨다.


2004년 2월 20일

눈이 멀고 정신까지 나간 상태에서 중얼거리는 장 병장,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린다. 지켜보던 몇몇 스탭들도 눈물을 감추느라 애쓴다.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장 병장은 감정을 추스르느라 많은 시간을 지체했고 다섯 번째 테이크를 끝으로 저택 분량은 끝났다. 조명 퍼스트인 동우는 저택을 부숴버린다고 했고, 연출부 막내인 현수는 이가 갈린다고 했다.

2004년 5월 17일

저택… 처음 저택을 보았을 땐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규모도 규모지만 안개와 핏빛 이끼,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묘하게 앙상블을 이루는 그 자태하며….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멀어지고, 포기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와 유혹하는 저택…. 그러나 단 한번도 자기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은 저택을 이제 떠난다.

2004년 5월 21일

홍등가에서 베트남 창녀와 잠을 자던 최태인 중위가 총소리에 깨어나 권총을 들고 창녀 방을 빠져나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108일간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OK 사인이 나자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만 요란할 뿐 침묵이 흐른다. 스탭들과 악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흩어진다.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한 마지막 촬영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샴페인을 못 터뜨릴망정 박수도 치고 포옹도 하고 환호성도 올려야 되는 거 아닌가? 허탈한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최 PD가 들어온다. “형, 왜 이래… 이제 반 끝낸 건데… 일어나요… 빨리 후반작업 해야지….” 반이라니… 이제 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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