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눈물> 만들기 [2]
2001-01-31
발칙한 10대 관객 김현진과 진지한 감독 임상수의 만남 3장면

“사랑아 눈감아라, 내가 업고 갈게”

임상수 감독 인터뷰건을 부탁받고 <눈물>을 본 뒤 잠시나마 내가 계속해서 편협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일면식도 없는 임상수 감독에 대한 인터뷰 기사라는 것을 쓰기 위해 최근 여러 매체들에 자주 출몰하는 그의 기사들을 뒤적거려보며 두 가지 정도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마치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미디어에 재빠르게 발맞춰가는 명석한 테크놀로지의 총아를 말하고 있던가, 아니면 거리의 아이들을 찍기 위해 아이들에게 삥 뜯겨가며 가리봉동에 둥지를 틀어보기까지 했다는, 말하자면 나쁜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카메라를 든 채 낮은 곳으로 임하는 천사 같고 투사 같은 이미지였다. 개인이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투사되는 이미지는 사물을 울퉁불퉁한 샤워실 유리를 통해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둘 다 지독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히 괜히 그렇고 그런 애들에 대한 감상에 사로잡힌 잘난 척하는 아저씨일 거야, 라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떨치지 못했던 솔직한 마음이었다. 몇년 전 비슷한 종류의 아이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나쁜 영화>가 마치 생태촬영 카메라처럼 건조하게만 느껴졌던 것과 달리 <눈물>을 통해 엿보이는 그의 시선에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분명히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의심했다. 그 애정은 분명 어설픈 것일 게라고. 괜히 어설프게 애들이니까, 하는 감상주의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긴 인터뷰를 끝낸 뒤, 임상수 감독의 애정이 어설프든 아니든,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눈물과 같은 농도의 진실.

장면 1 | 영화사 ‘봄’ 사무실

오후 4시10분부터 시간을 기약하고 박은영 기자 언니, 이혜정 사진기자 언니와 더불어 도착했으나 아직 임상수 감독이 나타나기에는 영겁이 걸릴 듯한 기분. 약속시간 한 시간을 넘겨도 나타나지 않는 그의 행로가 아주 묘연한 것만은 아닌 듯한데, 영화사에서는 처음에 두 시간 약속하고 왔는데 감독님 바쁘시다고 한 시간에 끝내달래서 성질났다. 첫인상도 곱게 생긴 기자 언니가 조근조근 설명하는데 나는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옆에서 투덜거렸다. “뭐 짧게 인터뷰하고 기사 거지같이 쓰면 되겠네요. 안 될 거 있나, 보도자료 보고 잘 베끼지 뭐.” 공기가 싸늘하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괜히 임상수 감독이 미워진다. 으윽, 그 사람, 홈그라운드의 이점 때문에 이리로 오라고 그런 거 아냐. 얼마의 기다림이 지나고 매우 지루해 있던 참에 낯익은 색안경의 남자가 나타나다. Here comes Lim Sang-Soo, the great movie director!! 꽃이라도 뿌리며 맞이할까 하다가 그냥 얌전히 인사를 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둘이서 카메라 앞에 노출된다. 나는 좀 어색한데 그는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내게 말을 걸며 대화하는 모습이 촬영되는 모양이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도 지친 모습이다. 그의 얼굴에 “또 인터뷰야?”라는 표정이 마치 매직펜으로 커다랗게 쓴 것처럼 진하게 써 있는 것이 느껴진다. 몹시 난처해졌다. 나도 즐거운 게 좋은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저 사람과 즐겁게 인터뷰를 해서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재미’라는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내게 ‘재미’라는 말을 던진다.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즐겁지는 않았어요.”

“왜요?”

“그냥 슬프던데요.”

“슬픈 거라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죠.”

“그냥 일반적으로 신나게 볼 만한 건 아니었는데….”

“카타르시스가 꼭 통쾌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

어쩐지 <눈물>에 관한 그의 말투가 꼭 자식 낳아놓고 치마폭에 감싸는 어머니 같다. 찰칵찰칵 소리 속에서 나는 이전의 기사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물었다. 진짜, 아무리 봐도 이건 코믹액션에로 같은 게 아니에요. 그랬다. <눈물>의 코믹은 자조적이고, 액션은 슬프고, 섹스는 가엾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거겠죠. 아직까지 그의 말투는 다분히 방어적이다. 역시, 처음 보는 사람하고 친한 척하는 인터뷰 같은 건 체질이 아냐, 하고 자신을 탄하며 제일 궁금했던 질문을 한다. 왜 처음 집단강간신부터 여자애들이 벗고 나올 때 하나같이 다 끈없는 브라를 하고 있나요. 혹시 영화 찍는 애들이 다 맞춰서 입고 왔나요. 혹시…. 임상수 감독이 처음으로 웃는다. 그 혹시… 라는 건 내가 끈없는 브라 취향이냐고 묻는 겁니까. 그런 취향은 아닌데. 그 여자애들은 다 내 컨트롤 밖에 있던 애들이라서 왜 전부 똑같은 속옷을 입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깝다. 진짜 궁금했는데. 그러면요, 감독님. 란이는 왜 강북 패션을 하고 머리는 힙합에 하는 털실땋기 머리를 하고 있나요. 그 패션에는 깻잎머리를 했으면 기차게 어울렸을 텐데. 진짜 리얼리티였을 텐데. 그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거기 하는 머리가 아닙니까. 네, 그건 보통 가리봉보단 강남역이나 압구정에서… 뭐 지금이야 유행 한번 지나간 것 같지만…. 그쪽도 패션 담당쪽이 다 알아서 한 거라 잘 모르겠는데. 나는 눈에 띄게 실망한다. 옷은 강북이고 머리는 강남인 것이 서울 지역성과 란이 캐릭터 자신의 모순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는데요. 임상수 감독은 웃기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뭐 영화를 그냥 보면 되지, 그렇게 일일이 신경씁니까. 그가 핀잔을 준다. 감독이 그러면 안 되죠. 메시지를 말하기 위해서 디테일 하나까지 신경을 써야죠. 농담인 걸 모두 알고 있다. 내가 감독이 된다 해도 아마 나 역시 그럴 리 없다. 사진은 대강 찍힌 것 같은데 임상수 감독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나 목이 몹시 마른데, 딴 데서 인터뷰 합시다. 나는 주섬주섬 챙겨서 일행들의 뒤를 따른다. 아직까지 <눈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가 혹시 어렵게 낳은 자식 안 좋은 소리라도 들을까 과민하게 껴안는 어머니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열심히 이 분위기를 깨서 멋진 인터뷰를 연출해 봐야지. 나는 꿋꿋이 다짐하며 청담동 빙판길을 조심조심 걸어간다.

장면 2 | cafe de Mazia

그러나 나의 그런 결심은 이 근사한 커피하우스에 들어오고 나서 무참히 무너진다. ‘봄’ 사무실에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던 임상수 감독에 이어 이제는 나의 생존본능이 발동된다. 체질적으로 서울에서 ‘청담동’이라는 이름이 갖는 느낌과 이런 비싸고 근사한 곳 따윈 정말 싫단 말이야. 이상한 이름의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날라져 온 커피에 서툰 솜씨로 크림과 설탕을 몽땅 쏟아넣고는 그 괴상해져 버린 당분 과다의 갈색 액체를 꿀꺽 마신다. 내가 이러고 있을 동안 사람들은 흥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웃기만 하는 그에게 기자 언니가 어떠세요, 관객 많이 들 것 같나요, 하니까 그는 흥행의 벌판에서 장렬히 전사할 겁니다, 그러는데 표정이 진짜다. 옆자리의 프로듀서도 ‘비감이 느껴지죠’라고 하는데 진짜다. 혹시 내가 감독이 되면 분명 저렇게 되겠지…, 라는 서글픈 예감을 하며 청담동 커피하우스라는 곳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다가 그를 흘끗 보니 임상수는 여유만만하다. 얄밉다. 그를 즐겁게 해서 재미있는 인터뷰 기사를 쓰기는커녕 나의 히스테리를 진정시키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나는 열심히 맛없는 8천원짜리 액체를 섭취하여 혈당을 올리며 비죽하게 묻는다. 그런 애들이 좋으세요? ‘그런 애들’이란 물론 그렇고 그런 애들이다. 연약하지만 역시 나쁜 아이들, 별로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싶지는 않은 아이들. 내 표정에 괜히 애들이니까 나빠도 된다는 감상에 사로잡힌 아저씨 아니냐는 의심이 짙게 묻어나왔는지 그런 애들한테 애정을 가지는 게 나쁜 겁니까, 하고 되묻는 그는 다시 방어적이 된다. 영화 속에서만 봐도 자신들은 일한 값을 못 받으면 x같다고 하면서 태연하게 남의 것을 훔치는 걸 봐도 자신들이 싫어하는 어른들의 나쁜 점은 고스란히 다 가지고 있잖아요. 나는 따지고 들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걔네가 나쁜 짓도 하고 센 척을 해도 사실은 다 약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니까요. 그러면 나쁜 짓 해도 괜찮아요? 나쁜 짓을 해도 다 사랑해주고 애정을 가져줘야 해요? 그는 낮고 조용히 대답한다. 애들이니까요. 뭔가 진심이라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다시 묻는다. 그 ‘애들이니까 봐줘야 한다’라는 대답은 왠지 ‘어른이니까 …해도 돼’라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듯이 보여요. 연약한 애들은 나빠도 괜찮고 연약한 어른은 안 되나요? 왜 같이 나쁘고 약해도 애들은 사랑해주고 어른은 사랑받으면 안 되나요? 그는 한참 생각에 잠긴다. 임상수 감독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건 아마 이번 영화가 애들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겠죠. 내가 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내 취향이겠지만, 약하고 가여운 것에 대해 관심이 가요. 아마 그건 남자든 여자든, 애든 어른이든 다르지 않을 겁니다. 만족스러워진 나는, 단순하게도 갑자기 기분이 매우 좋아지면서 그가 무척 좋아진다. 전 괜히 똑같이 나쁜데도 혹시 젊고 싱싱해서 애들한테만 카메라를 댄 게 아닌가 의심했어요. 임상수 감독은 그냥 씨익 웃는다. 그런데, 이 자리 불편해요? 전 이런 데 질색이에요. 주로 어떤 데를 좋아해요? 중국집에서 야구중계 보는 걸 좋아해요. 그가 남은 커피를 꿀꺽 마신다. 그러면 어서 이거 마시고 일어나서 중국집으로 옮깁시다. 누가 이후 인터뷰는 어쩌시고요, 하니까 다 중국집으로 오라고 그래, 하는 그의 목소리가 클래식음악 틈바구니에서 명쾌하다.

장면 3 | 중국집 만금성

탕수육과 이과두주를 앞에 놓고 비로소 집에 온 듯 편안한 기분이 된다. 아프고 약한 애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면, 감독님의 성장기는 어땠나요. 나는 이중생활을 했지요, 주중에는 모범생, 주말에는 ‘빽바지’에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그래도 대단히 평탄한 길을 걸어온 편이지요. 그러면, 왜 즐거운 영화를 안 하세요? 산뜻하게 돈도 벌고 재미도 있는 <미녀 삼총사> 같은 거 하면 얼마나 좋아요. 임상수의 대답은 아주 진지하다. 왜, 나 <처녀들의 저녁식사> 찍었는데…. 그거 나 <미녀 삼총사>라고 찍은 건데. 분명히 이 아저씨는 강적임에 틀림없다. 저, 이 영화 절대로 코믹액션에로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멜로휴머니즘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슬픈 영화예요. 막막하게 슬픈데, 결말도 전혀 즐겁지 않은데. 얘네들이 오토바이 타고 가도 잘될 거 아니라는 게 눈에 보이는데, 답답하고 슬픈 영화 아닌가요? 그렇죠. 전체적으로 비극적이고, 결말은 더욱 그렇죠.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시선이자 관점인 거고. 현진씨가 느낀 불편함, 안쓰러움, 막막함, 그러한 느낌이 중요한 거죠.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센 척하지만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서로 고통받는 이유는 애정결핍이에요. 세상에 슬픈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게 사실이고,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게 그런 악순환이었죠. 창이가 영화 내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쓰는 것이 폭력밖에 없듯이, 그는 자신이 경멸하고 싫어하는 아버지와 똑같은 어른이 되어 갈 거고, 란이 역시 사도마조히즘 관계 속에서 상처받으면서 유일하게 배반하지 않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계속 악순환 속에 살아가겠죠. 모든 악순환. 후반에 새리와 용호가 같이 사는데, 정말 슬픈 건 걔네들이 이상한 게 아니고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부부들이 아주 많아요. 슬프게 사는. 되풀이되는 악순환이죠.

"그걸 끊을 수 있는 게 뭔가요?"

"애정입니다. 정상적인 애정. 아주 정상적인."

뭔가 알 듯했다. 조금은 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임상수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영화 내내 불편한 슬픔이 찾아오는 이유는 잊고 있던, 누구나 갖고 있지만 쉽게 얻어지지 않아 반쯤 포기하고 사는 애정에 대한 갈망을 영화가 깨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은밀히 품고 있는 소망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다. 옷을 짓듯 ‘지옥처럼 힘들게’ 만들었다는 필름 속에 사랑과 연민을 지어넣고 그가 영화 내내, 인터뷰 내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선남선녀가 만나서 ‘나쁜 잠’ 자러 침대 속으로 골인하는 사랑말고, ‘구원’에 관한 얘기, 인간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애정, 껍질말고, 뭔가 정말 깊은 건데 요즘은 왠지 다 잊고 있는 것. 눈물조차 흘리지 못할 만큼 드라이한 세상에 우리는 모두 사랑을 꿈꾼다. 임상수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사랑이다. 너 눈감아라, 내가 업고 갈게. 우리 같이 가자.

김현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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