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빌리지> 도쿄 시사기 [2]
2004-09-07
글 : 박혜명

안정된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

△ 앨리스는 신사답고 배려심 깊으며 지혜로운 에드워드 워커에게 같은 원로이자 좋은 이웃으로서 호감을 갖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는 아이비 역을 맡은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다. 와킨 피닉스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루시우스 캐릭터와 반대로, 애초 커스틴 던스트가 하기로 했었던 이 역할은 사람의 육체는 볼 수 없지만 그 내면의 색깔을 볼 줄 아는 강인하고 순수하고 용기있는 캐릭터다. 이를 연기한 하워드는 (아버지 론 하워드의 영화에 크레딧 없이 출연한 한편을 빼고) 난생처음 출연해 주연을 맡은 배우답지 않게 화면을 압도한다. 와킨 피닉스, 에이드리언 브로디 등 젊지만 안정된 배우들과 시고니 위버, 윌리엄 허트, 체리 존스, 브랜든 글리슨 등 노력만으로 도달 불가능한 관록을 획득한 배우들간의 앙상블 연기도 연대감에 가까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괴물에 대한 공포, 순수함을 간직한 단순한 삶,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용기와 믿음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빌리지>는 동화적이다. 연결지을 수 있는 주체와 객체가 달라지긴 해도 이 영화의 결말은 빨간 두건 소녀와 늑대의 이야기꼴에 비유할 수 있다. 할머니를 잡아먹은 뒤 할머니인 체 가장한 늑대의 거짓말에 고스란히 속는 빨간 두건 소녀. <빌리지>는 바로 그 거짓말을 믿는 빨간 두건 소녀들에게 마을의 미래를 건다. 조금만 용기를 내도 깨달을 수 있는 진실은 숲 너머에 존재하고 무기력한 아이들은 지하실에 뛰어들어 어른들의 품자락에 몸을 감추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늑대와 샤말란의 마을이 다른 점은, 늑대는 빨간 두건 소녀를 해치려는 의도를 가졌고 샤말란의 마을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졌다는 데 있다. 숲을 지나 이웃 마을에서 약을 구해온 아이비는, 실신 상태에 빠진 루시우스에게 힘차게 말을 건넨다. “나 돌아왔어!” 그 말 한마디가 마을의 균형을 되찾아주고 아이비의 큰 결심을 대변한다. 그녀는 믿기로 한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를 것이다.

샤말란은 <빌리지>가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자 관객의 뇌리에 가장 깊이 남을 영화”라고 설명했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영화의 궁극적인 목표와 자기만족적 드라마의 깊이 사이에 표리부동한 관계를 지적했다. “샤말란은 마을을 둘러싼 설정들과 관련해서는 근본적인 이슈들을 파고들지 않는다.” 항상 전작보다 더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샤말란의 <빌리지>가 너무 많은 계산과 야심을 두고 출발했기 때문일까. 본인 스스로 개인적이고도 간절하다는 이번 기도가 진실한 감동이 될 지, 반전을 위해 모든 걸 희생시키는 단순한 계산에 불과할 것일지는 9월24일 이후 당신의 오감으로 직접 느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인터뷰] “익숙하지 않은 것, 그것이 공포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스타벅스 커피를 파는 것과 같은 비즈니스다.” 그의 영화가 언제나 단순명백한 상징과 은유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샤말란 감독은 자신의 일을 적나라한 비유로 정의했다. M. 나이트 샤말란은 <식스 센스> 이후 맺어온 디즈니와의 두터운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퇴색시키지 않으면서도 전작 세편(<식스 센스> <언브레이커블> <싸인>)으로 13억달러의 전세계 흥행 수익을 거둔 감독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8월25일 도쿄의 파크 하야트 호텔 스위트 룸에서 진행됐다. 자신의 입술 색깔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밝은 핑크빛 실크셔츠 차림에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답게 훤칠한 품새와 우아한 자신감을 몰고 등장한 샤말란은 자신이 스필버그에 비견되는 상업적 감성과 영리한 계산 또한 타고났음을, 기자들을 향한 답변 속에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번 영화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매번 똑같은 것을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난 매번 전작과 다른 걸 하려고 하고, 전작보다 강하게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내 모든 영화는 전작에 대한 리액션으로 만들어진다. <언브레이커블>은 <식스 센스>에 대한 리액션으로 더 반항적이고 거칠게 만들려고 했고, <싸인>에서는 <언브레이커블>에 대한 리액션으로서 팝콘을 먹으면서 스릴의 고조를 즐기도록 만들려고 했다. 이번엔 좀더 중요한 이슈를 다루면서도 감정적으로 훨씬 강렬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로맨스 역시 그 과정에서 생겨난 설정이다.

전작보다 강하게 어필하려고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한 영화의 성공은 마약과 같다. 성공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만화책을 정말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 맨>의 연출 제의를 거절했다. 그건 성공이 보장된 프로젝트였고 위험을 감수할 만한 요소가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한다면 <빌리지>는 대스타가 없고 이야기도 더 복잡하다는 점 등에서 감수해야 될 위험 요소가 많았다. 난 그 점에 매료됐다. 나에겐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클수록 성공했을 때의 기쁨도 크다.

전에는 초자연적인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영화는 인간적인 면들이 더 부각돼 있다.

<빌리지>의 초자연적인 힘은 사랑이다. 그래서 어떤 비평가들은 나보고 “더 성숙해졌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전작들과 달리 복잡성(complexity)을 띠고 있다. 주제, 감정, 캐릭터 등이 이전보다 다층적이고 다양하다. 내 생각이지만 관객들의 뇌리에도 이번 영화가 더 깊이 남을 것 같다. 내 바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빌리지>는 전작들에 비해 훨씬 야심찬 영화다.

전작보다 강한 반전을 만들어야 된다는 스트레스에서 그런 복잡성이 비롯된 것은 아닌가.

두 가지를 대답하고 싶은데, 우선, 맞다.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 복잡한 요소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영화를 만들 때 염두에 두는 여러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또 하나의 대답은 그림과 비교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은 늘 같은 모티브로 그려진다. 화가들은 대개 하나의 모티브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이번에 프랑스에 가서 본 드가의 그림들도, 그 많은 것들이 전부 발레리나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도 말했듯 항상 전작과 달라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사람들도 내 이름이 붙은 영화를 보러 올 땐 다른 감독의 영화들과는 다른 기대를 하고 온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계속 다른 메뉴를 만들어 파는 스타벅스 커피와 같다. 그건 비즈니스다.

숲속 괴물의 모습은 어떻게 떠올린 것인가.

<싸인>에서는 인간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괴물을 표현하려 했다면 <빌리지>에서는 실제로 있지 않은 또 다른 종류의 생물체를 생각했다. 중세적인 느낌과 더불어, 숲속에 사는 생물체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숲속의 괴물들이 인간보다 더 영리할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공포란 무엇인가.

모르는 것(unknown), 익숙하지 않은 것(unfamiliar)이다. 모르는 도시에 갔을 때, 혹은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게 됐을 때 우린 공포심을 느낀다. (웃음) 방에 늘 걸려 있는 그림들이 어느 날 전부 거꾸로 되어 있을 때도 우린 소름이 돋는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익숙한 것만 찾으려는 건 생물학적인 보호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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