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돌아온 이명세, 신작 <형사>를 이야기하다 [2]
2004-10-1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액션의 방법’과 ‘감정의 액션’에 대한 이명세의 모색

대신, 이 영화의 전모는 동력이 될 영화적 개념과 구성의 과정을 통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선 <형사>는 범죄자 집단을 쫓는 하지원과 안성기를 신참과 베테랑 형사(포교)의 캐릭터로 놓는다. 그리고는 그 상대 진영에 ‘슬픈 눈’이라는 범죄자를 대치시킨다. “<형사>는 간단하게 말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조선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추적편’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대결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영어 제목도 듀얼리스트이고, 한글 제목도 <형사: 듀얼리스트>로 할까 생각 중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추적신을 공들여 찍고, 영화의 전체 구조를 추적이라는 설정에 맞춰갔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영화의 ‘대결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표현될지가 궁금하다. 그 예로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어떤 영화에서건 한번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고 장담한다) 오버 더 숄더 숏- 한 인물의 어깨를 걸어 건너편 인물을 담는 숏- 을 들 수 있다. 왜 지금까지 의미없다고 생각한 그 숏이 필요해진 것이냐고 묻자, “거기에 왜 뒤통수를 보이고 서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후경에 잡힌 인물의 얼굴과 전경에 잡힌 인물의 뒤통수가 똑같이 중요해지는 순간. 대결의 구도를 보여주는 그 일각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사실 이런 점이 이상하긴 했다. 말하자면 첩보요원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사용하려던 아이템이 어떻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영화의 일면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사이의 간격은 어떻게 좁힐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이명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중점을 두는 바가 “액션의 새로운 방법”이라고 응축하여 대답한다. “액션을 어떻게 유니버설하게 만드느냐, 내 모든 관심은 거기에 있다. 나는 액션의 승부가 무술의 움직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습적인 무술에 이제 사람들은 많이 익숙해져 있다. 그런 점에서 <형사>는 무술과 영화의 결합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격렬한 격투장면을 한밤의 다정한 댄스로 바꿔놓는 걸 기억한다면 <형사>에서의 무술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무술과 동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은 비밀인데…”라며 그가 가리킨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 그것을 추측하게 한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다정하게 춤을 추는 두 남녀, 아름다운 포즈로 상대방을 찔러 들어오는 펜싱선수, 역동적인 육체의 모습을 선보이는 미식축구 선수들, 솟아오르는 발차기를 서로 나누는 태권도 선수 등이다. 이명세 감독은 지금 그 사진들 속에서 ‘액션의 방법’에 대한 영감을 간절히 구하고 있다. 한편, “패밀리와 패밀리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감정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액션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의 액션도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걸 보면, 여주인공 하지원과 아직 캐스팅이 완료되지 않은 ‘슬픈 눈’ 사이에 기묘한 감정이 쌓일 것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형사>는 심신의 액션이 어떻게 파장을 이루는지 관심을 두어야 할 영화가 될 것이다.

‘이명세표 영화’, 여전히 진화 중

‘무슨무슨 표’라는 말은 흔하지 않은 칭찬이다. 감독 이명세는 ‘이명세표 영화’라는 고유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런 별칭을 얻을 수 있는 건 그의 영화가 좀처럼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그런 점에서 그의 첫 번째 액션영화라는 전환점을 이루었다. 그 영화는 여타의 액션영화들이 갖는 표현의 관습을 피하고 자신의 양식으로만 최선을 다한 영화였다. 이제 <형사>는 감독 자신의 질문처럼 그 성공을 재심받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금 이명세 감독은 거기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숏마다 다른 영화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그때마다 다 다르다. 촬영감독에게도, 배우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내가 달려가는 방향만큼은 안다. 대결의 구조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갖고 갈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 영화를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누구도 그 구조 자체만을 놓고 볼 때 흔들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형사>는 액션의 방법을 연구하는, 감독 이명세의 새로운 화두이다.

신작 <형사>는 어떤 영화인가?

조선 시대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는 18세기 후반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원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조선, 정도로 특정시기 구분이 가지 않도록 설정했다고 한다). 왕권의 찬탈을 둘러싸고 반역을 꾀하는 무리와 그들의 음모를 캐내는 포교들이 서로 대결하게 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두 명의 주인공인 안성기, 하지원은 마치 “<투캅스>의 경찰처럼” 한명은 베테랑이고, 또 한명은 신참이다. 영화속에서는 노련한 ‘안포교’(안성기)와 왈가닥 신참 ’남순’(하지원)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텔레비전드라마 <다모>에서 이미 걸출한 여장부 역을 해냈던 하지원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 것인지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명세 감독은 “하지원 같은 경우 무채색이기 때문에, 내 상상으로 다시 색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여배우”라고 말하면서, <다모>에서의 이미지는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반역의 무리 중에, ‘슬픈 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또 한명의 인물이 가세하면서 육체의 액션은 감정의 액션으로까지 연결될 것이다. “<형사>는 조선 시대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고 못박은 이명세 감독은 <형사>에 등장하는 이 세명의 캐릭터를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온순한 장동건이 맡았던 이미지가 이번 영화에서 안성기씨가 맡을 ‘안포교’역의 이미지와 같고, 박중훈이 연기했던 거친 이미지가 하지원이 맡을 ‘남순’의 성격이다. 아직 캐스팅되지 않은 ‘슬픈 눈’은 안성기씨가 했던 장성민 역할에 가깝다. 그러니까 <형사> 역시 두 형사와 한 범인이 부딪치는 이야기다.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있다. 살인사건이 있지만, 사실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박중훈의 연기 영역을 몇배나 더 넓혔던 그 저돌적인 이미지의 ‘영구’가 하지원의 ‘남순’ 캐릭터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욕하고, 패고, 건들거리고, 막가는 조선의 여자 포교다. <형사>는 경북 포항 보경사 근처의 세트를 포함, 현재 여러 곳을 헌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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