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도시를 질주하는 젊은 퓨전 스릴러, <썸>의 재구성 [2]
2004-10-27
글 : 박은영

Keyword4 SPEED - 자동차와 자동차, 몸과 몸이 부딪히는 속도

<썸>은 빠른 영화다. 24시간이라는 제약, 순간순간 닥치는 느낌과 사건이 중요한 영화인 만큼 컷도 많고 편집도 빠르다. 그런 속도감이 두드러지는 대목이 테크노 음악과 함께 간간이 끼어든 자동차 추격신. <접속> 같은 멜로영화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교통사고’를 어떤 중요한‘운명의 전환점’ 삼아 연출해 넣었던 장윤현 감독은 <썸>의 기획 단계부터 자동차 액션에 대한 욕심을 많이 품었다. “할리우드영화에선 자기 개발을 계속해서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데, 우린 이야기만으로 끌고가다보니 식상해지고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액션 분야에서 우리만의 볼거리로 키울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현실적인 액션이었고, 그중에서도 CG와 자동차였다.” 환각상태, 전속력으로 달리던 차가 마주 오던 차를 들이받고 바닥이 보이도록 뒤집어지는 장면이나, 추적하는 뒷차를 피해 역주행하는 장면은 카스턴트팀의 노하우, ‘모바일 캠’의 보완으로 일궈낸 성과다. “그동안 모바일 캠은 차 앞뒤에 카메라를 다는 식이었지만, 이번엔 크레인을 달아 앞과 뒤는 물론, 안과 밖, 옆과 위 모든 방향에서 촬영했다. <텔미썸딩> 끝나고, 시체 만드는 데 자신이 붙었던 것처럼, 이번 촬영 끝나고는 자동차 액션에 자신이 붙었다. 도로만 있으면 <매트릭스>도 찍을 것 같다.”

자동차 액션이 장윤현 감독에게 익숙하고 즐거운 작업이었다면, ‘치고 받는’ 몸의 액션은 달랐다. “류승완 감독이 액션을 어떻게 찍을까 오래 고민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좀더 고민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성주가 마약 조직의 창고를 기습하고 나서, 일대 다수로 맞붙는 장면을 비롯, 영화의 액션은 비교적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형사는 성룡이나 이연걸처럼 싸우지 않는다. 상대를 제압하는 살벌한 현장이고, 그런 만큼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싸운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런 싸움들을 다큐멘터리처럼 찍고 싶어서, 카메라 여러 대를 동시에 돌리기도 했다.”

Keyword5 CITY - 메마른 서울 속의 성마른 도시남녀

아스팔트 도로, 아파트, CCTV, 복합상가 등을 배경으로 하는 <썸>은 장윤현 감독의 도회 취향이 가장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사진은 가장 난감하고 힘들었다는 피어싱족의 아지트. 이외에도 유진의 아파트 복도, 수사본부 등이 세트로 만들어졌다. <썸>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근미래 SF의 배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윤현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도시 남녀’를 다루고 있다. 그는 바삐 달려야 하는 도시의 생활, 도시의 문화에 매혹돼 있다. 밤이 길고 야외가 많은 반면, 낮은 짧고 실내 공간과 광장에 국한되는 것 또한 그러는 편이 훨씬 “영화적”으로 느껴져서다. <썸>은 그런 도회 취향이 가장 도드라지는 작품. 심지어 2∼3년 뒤의 근미래라는 설정으로, SF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방송에선 수없이 ‘서울지역’ 교통 상황을 알리고, 서울임을 알 수 있는 지형지물이 등장하지만, 현실의 서울 같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장소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미술팀이 늘 고생이다. 로케이션 위에 덧칠을 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특히 이번엔 상암경기장 앞 광장과 코엑스의 연결 계단을 꼭 찍고 싶었고, 유동인구가 많다는 어려움을 감수하고 촬영을 강행했다. 실제로 대부분을 서울 근교에서 찍었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컨테이너 적재소도 찾아냈다. 난감하고 힘들었던 곳이 피어싱족의 아지트였다. 마땅한 데를 찾았는데, 철거 직전이라서, 세트로 지어야 했다.” 강성주의 사무실과 함께 다분히 ‘미래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이 바로 그 아지트. 설치미술처럼 보이는 그 공간에 마약과 해킹과 피어싱과 스피드에 중독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과장처럼 비현실처럼 떠돈다. “70년대 대마초가 낭만의 메타포였듯, 즐기기 위해 별 거부감 없이 약을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남과 다르고 싶어서 피어싱도 해보지만, 그래서 결국 그들끼리 같아진다. 섞이는 게 싫어서, 클럽이나 바나 뒷골목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놀고 모이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거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됐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Keyword6 TREND - 휴대폰과 디카, 소통과 기록의 첨단도구

장윤현 감독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다. <접속>의 텍스트에는 PC통신과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 당대의 문화를 적극 반영했고, <텔미썸딩>을 통해서는 영퀴방과 포럼을 뒤집어놓더니, <썸>에서도 첨단 트렌드 또는 유행을, 이야기와 영상의 중요한 키워드로 삼았다.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 <썸>의 스토리는 이 두 가지 소품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된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 교신을 시도하는데, 이때 발신자 확인은 보안이 아니라 함정이 되기도 한다. 또한 휴대폰을 통한 위치 추적도, 영화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여주인공 서유진이 사건에 얽혀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영화의 후반부에 ‘플래시 몹’이라는 놀이 문화를 배경화면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수사본부의 사이버 수사 활동도 기존의 형사물과 달라 보이는 지점.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이 없었다면 <썸>은 성립이 되지 않는 영화다. 유진은 디카를 자신의 일기장이라고 말하고, 형사들은 직접 얼굴을 맞대는 시간보다 휴대폰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길다.

“처음부터 ‘모바일’을 내세운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모바일 아닌가. 우린 이미 개인이 매체를 소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지점을 영화에 반영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긴 호흡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장윤현 감독은 때마다 달라진 ‘현상과 징후’를 짚어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4∼5년 주기의 사회 문화 변화상만 잘 추려도,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증언할 정도로, 그의 레이다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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