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판 알렉산더 세계정복사
어린 시절 웬만한 집에 한질씩 있었던 <세계위인전집>의 ‘주인공’들을 새삼스레 기억한다.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 과학자이거나 이른바 전쟁 영웅들이었다(가끔씩 음악가들도 있었다). ‘세계’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9할이 서구의 백인 남자 영웅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서구의 역사는, 우리가 세계사라고 배우게 마련인, 영웅들의 끝없는 전진으로 이야기되어왔다. 25살의 나이에 그 당시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세계의 90%를 정복했다는 알렉산더야말로 그중 으뜸이다. 역사의 스펙터클과 영웅의 드라마만큼 할리우드가 사랑한 주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40년간 알렉산더가 영화화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2004년 이 시점에 알렉산더가 스크린에 되살아온 것은 어떤 의미일까.
미국의 인터미디어, 프랑스의 파테 등 다국적 영화사가 참여해 3년에 걸쳐 제작한 <알렉산더>의 LA 언론 시사회를 다녀왔다. <플래툰> <JFK> <닉슨> 등을 통해 역사와 역사의 주인공들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던 올리버 스톤이 카메라 펜을 들었다고 하니, 그의 손에서 알렉산더의 역사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오늘날의 젊은 관객에게 “역사에 대한 감각”과 “이상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B.C. 4세기경의 마케도니아 왕국”이라는 먼 과거의 이야기를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겼는지 몇개의 키워드로 짚어본다.
‘역사쓰기’의 소명
그가 생애에 이룬 기념비적인 업적에 비례하듯 알렉산더에 대한 저술은 역사서부터, 신화와 전설, 알렉산더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전술서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알렉산더> 또한 그 끝없는 역사쓰기 작업에 동참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듯, 알렉산더의 사후, 프톨레미 역사가(앤서니 홉킨스)가 그 유명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 알렉산더의 생애를 구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프톨레미 역사가가 구술하는 알렉산더의 생애는 사실, 1972년대에 출간된 옥스퍼드대의 역사학 교수, 로빈 레인 팍스의 알렉산더 전기에 기초한 것. 영화의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한 팍스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끊임없이 원작의 영화화 제의를 받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던 프로젝트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손으로 성사된 것에 대해 상당히 흡족하다고. 그의 견해에 따르면, 알렉산더가 죽기전 마지막 인도 정복 과정이 축소되고, 영화적 효과를 위해 몇 가지 왜곡이 덧붙여진 것 말고는, <알렉산더>는 대체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그렇게, 2시간50분에 걸쳐 알렉산더의 출생에서 페르시아, 인도에까지 이르는 끝없는 동방 원정의 여정을 담아낸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역사쓰기의 중심과 변방을 재배치하고 있다. 할리우드가 이방인들을 즐겨 묘사하는 방식인 영어의 악센트 활용과 피부색의 농도가 그것. 프톨레미 역사가가 구사하는 완벽한 옥스퍼드 표준 영어로 중심을 잡고, 변방의 세계와 인물들은 그 지리적 근접도에 따라 각각 다른 악센트를 부여받았다. 남부 그리스 도시 국가의 왕족 출신인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스 여왕(안젤리나 졸리)이 현대 그리스식 영어 악센트를 사용한다면, 상대적으로 북쪽에 자리한 마케도니아 출신의 아버지, 필립왕(발 킬머 역)과 마케도니아인들(알렉산더 역의 아일랜드인 콜린 파렐을 포함)은 아일랜드 악센트의 영어를 사용한다. 알렉산더의 왕비가 되는 먼 서아시아 부족 출신(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록산느(로자리오 도슨)가 아시아식 악센트가 섞인 짦은 영어를 구사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그리스 출신의 알렉산더가 앵글로 색슨의 용모와 금발에 흰 피부를 지녔었는지 역사적 사실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얀 피부의 알렉산더 부대가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러 동방을 향해 나아갈 때 등장하는 변방의 인물들의 피부색 농도는 짙어지고, 의상과 장신구는 덩달아 컬러풀해진다.
‘역사적 인물 복원’에 대한 소명
역사적 업적 이외는 정작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는 알렉산더라는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올리버 스톤 감독은 그리스 신화와 비극의 모티브를 끌어오고 있다. 2만2천 마일에 이르는 대동방 원정에서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다는 알렉산더의 용맹은 아킬레우스와 헤라클레스 등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에 비견된다. 영화는 무엇보다 끊임없이 두려움과 싸워 불가능한 것을 이뤄내려 했던 알렉산더의 욕망이 정복자 아버지와 자존심 강한 어머니 사이의 불화로 인한 내면의 갈등에 상당 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정복자인 남편 필립왕에 대항해 알렉산더를 소유하려는, 무소불위의 영웅으로 만들어내려는 왕비 올림피아스의 강하지만 어두운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안젤리나 졸리의 카리스마는 적역이다. 올림피아스 왕비의 거칠 것 없는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한 소도구- 수많은 애완용 뱀들- 보다 콜린 파렐과의 ‘나이차’를 감수하고 연기해야 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는데. 미워하는 이민족 왕비의 피가 섞인 아들을 좀체 인정하지 않는 폭군이자 알렉산더 제국의 기반을 닦은 필립왕은 알렉산더의 이상이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상징적인 권력으로 알렉산더의 삶을 지배한다. 알렉산더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방인 록산느를 왕비로 맞은 것을 두고 서방과 동방의 문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알렉산더의 이상으로 설명하는 견해도 있지만, 올리버 스톤 감독이 차용한 그리스 비극의 구조는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강하고 권력욕 강한, 그리고 검은 피부와 악센트의 이방인 왕비 록산느는 아무래도 올림피아스 왕비를 연상시키고, 동방 원정길에 알렉산더의 이국 문화 수용을 정면으로 비판해 죽음을 당하는 신하는 필립왕의 대리인이었던 것. <알렉산더>가 알렉산더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한 또 하나의 방법은 알렉산더의 절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헤파이스티온(자레드 레토)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당시 기독교 전파 이전의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순수한 에로스의 방식으로 이해되어졌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 아무래도 일반 관객의 반응을 고려해 묘사의 수위는 조절됐지만, 헤파이스티온과의 관계를 통해 당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흥미롭다.
‘역사의 시각적 재현’의 문제
영웅의 이야기에 스펙터클이 빠질 수 없다. 아무래도 40여년간 알렉산더의 영화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 그리고 현 시점에 영화화될 수 있었던 까닭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알렉산더의 시대를 스펙터클로 재현해내는 문제의 만만치 않음일 수도 있다. <반지의 제왕> 등 판타지와 SF 장르는 말할 것도 없고, <글래디에이터> 이후, <트로이> <킹 아더> 등 스케일 큰 역사물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에는 분명 눈부신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한몫했다. <알렉산더>는 먼 과거의 공간을 줄이은 스펙터클로 되살리고 있다. 모로코와 타이의 다양한 로케이션에서 만들어낸 풍경은 당시 알렉산더 부대가 거쳐간 광대한 서아시아의 모습을 엿보게 하는 한편, 런던의 스튜디오에 세워진 바빌론시의 세트는 컴퓨터의 지원으로 당시 그리스보다 뛰어난 문화와 기술을 자랑하던 페르시아의 위용을 그려낸다. 고대의 7대 신비의 하나로 불리던 ‘하늘 정원’이 덧붙여진 바빌론 궁전과 유럽의 박물관에서 조각으로나마 볼 수 있었던 푸른 타일로 장식된 페르시아의 성벽은 <알렉산더>의 스펙터클 중 백미. 바빌론궁의 할렘과 서아시아의 부족 국가들이 할리우드의 끊임없는 이국 취향으로 단장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뭐니뭐니해도 알렉산더의 전설은 4만여명의 군사로 25만명의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친 과가멜라 전투와 인도의 코끼리 부대와의 전투에서 비롯된 바,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게 재현해냈다는 과가멜라 전투와 상상력으로 그려낸 코끼리 부대와의 전투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모로코와 타이의 실제 군인들이 코끼리 부대와의 전투에 엑스트라로 참여하고, 콜린 파렐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2주간에 걸친 집중 군사 훈련을 받고 촬영에 임했다는 만큼, 전투신에선 남성호르몬이 분출하는 몸의 스펙터클이 나름대로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과연 알렉산더의 제국이 이후의 로마제국과는 다르게 이른바 ‘포용정치’를 통해 동방과 서방의 문화를 통합하고자 한 이상적인 제국이었던가라는 물음은 영화를 벗어난 역사적 논쟁거리로 남는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그려낸 알렉산더의 이상,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대로 “그리스 문화의 우수성”을 전파하고, 페르시아 독재 정권하에 신음하던 서아시안인들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그의 이상이 전혀 낯설지 않음은 웬일일까. 영화 속 알렉산더의 머리 위 하늘을 끊임없이 맴돌던 독수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인간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젊음으로 도전한 알렉산더의 서사시, <알렉산더>는 2004년, 변방의 이국인에게 할리우드판 역사서를 읽는 즐거움과 씁쓸함을 고스란히 전한다.LA=옥혜령 통신원
△ <알렉산더>의 스펙터클은 모로코와 타이 등 다양한 로케이션뿐만 아니라 알렉산더 시대를 구현한 세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