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4 한국영화가 찍지 못한 장면들 [1]
2004-12-08
글 : 박혜명
글 : 오정연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저물어가는 2004년의 마지막을 달굴 한국영화는 이제 <역도산>과 <신석기 블루스> 두편이 남았을 뿐이다. 한해의 물리적 마감이 내년으로 이어달리는 숱한 영화제작에 경계선을 그을 수는 없겠으나 ‘뒷정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올해 개봉된 많은 영화들은 시나리오로, 콘티로 수많은 장면들을 스케치하고 촬영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준비된 상상력이 100% 화면에 담기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끝내 촬영에서 빠진, 아쉬운 장면들을 모았다. 수십편을 대상으로 취재에 들어갔으나 뜻밖에도 찍지 못한 장면들은 그리 많지도 거대하지도 않았다. 여기 모은 12편의 장면이 한국영화의 빈틈을 가늠해주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귀신이 산다>3천만원 절벽공사까지 했건만 버스는 뒤집어지지 않고

귀신과 집주인간의 집 쟁탈전을 그리면서 온갖 CG와 특수효과를 동원한 이 영화가 의도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장면은, 의외로 날것 그대로의 버스 추락 장면이다. 고속버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절벽 아래로 구르며 한 바퀴 뒤집어지는 대형 교통사고를 원신, 원컷으로 찍는 것이 목표였다. 교통사고를 낼 만한 지점을 완주 근처에서 찾았는데 그나마도 버스가 뒤집어지며 굴러떨어지기엔 적절치 않아 보여 3천여만원짜리 절벽 공사를 시행했다. 차를 절벽 아래로 굴려본 적 없는 김상진 감독에겐 버스도 서너대는 필요했고 그중 한두대는 테스트로 굴려보는 게 맞았지만, 예산과 일정상 그건 희망일 뿐이었다. 처음 찍어보는 장면을 원신, 원컷으로 첫 테이크에 OK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을 대비해 카메라를 여러 대 돌리기로 하고, 무작정 굴렸다. 버스가 가드레일을 받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공사가 너무 잘된 탓에 버스는 뒤집어지지 못하고 직활강했다.

김상진 l 실제로는 그렇게 안 굴러도 많이 죽는다. 우리가 조사해본 결과 그렇더라. 그래도 화면상으로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20∼30m 떨어져야 한다. 그렇게 가드레일 받고 굴러서 터지는 장면을 원신 원컷으로 찍으면 느낌도 훨씬 강렬했을 텐데, 그게 아쉽다. 1천만원 들여서 크레인 불러다 버스를 다시 들어서 밀었지만 이미 많이 망가진 상태여서 두 번째는 여러 번 굴리지도 못했다. 그래도 속도감은 너무 잘 나왔고, 지금의 편집분도 만족스럽다.

<태극기 휘날리며>예산문제로 빠진 전투 시퀀스들

애초 구상했던 첫 전투 시퀀스가 제작 기간, 예산, 러닝타임 등의 문제로 완전히 빠졌다. 전투는 시작됐는데 막 징집돼와서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이 전쟁의 피폐함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겁을 먹게 되는 장면이었다. 예컨대,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이 자신이 몇 분대에 소속됐는지도 몰라 헷갈려하면서 우왕좌왕하고, 하사관들은 이들을 닭몰이하듯 몰아세우는 상황이다. 첫 시퀀스가 빠지는 대신 징집되자마자 전투에 내몰려 겪는 전장의 처참함과 부대원들이 각자 자기를 소개하는 장면, 진태가 공을 세우는 장면 등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합쳐졌다.

강제규 l 정말 전쟁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고, 준비되지 않은 전쟁터에 누군가가 군사교육도 못 받은 상태에서 전투라는 특정 공간으로 내몰려졌을 때 과연 어떨까, 무얼 느끼게 될까, 어떻게 상황에 대처하게 될까 등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의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지만 좀더 심도있게 주려고 했다. 투자의 어려움이 따르면서 자꾸 제작비가 삭감되는 등 전체 형편을 고려했을 때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 같아 포기했다. 그렇지만 뒤쪽의 평양시가 전투와 마지막 두밀령 전투에서 예산문제 때문에 못한 게 더 많고 아쉽다. 우리가 한국전쟁에서 느끼는 이미지가 있다. 열차피난행렬이나 B29 폭격 같은 다큐적 정서의 이미지를 충실히 담고 싶었고, 그중 하나가 비행기 폭격이었다. 평양의 경우는 항공촬영이 문제였다. 여러 미니어처가 필요하고, 오픈세트장도 항공 촬영의 기본적 동선을 위한 길이가 보장돼야 하고, 그에 대한 상당한 예산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평양 시가도 동시에 연결하고 폭파 규모도 그 상황에 맞는 것이어야 하니까. 결국 예산문제로 찍지 못했다. 또 두밀령 전투에선 전투기를 실물크기 모형으로 만들고 실제 폭파하며 비행 동선도 실제로 따서 하려고 했는데 이것도 예산문제로 못 찍었다. 실물이 없으면 앵글의 다양성이나 폭파의 리얼리티에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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