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4 한국영화가 찍지 못한 장면들 [2]
2004-12-08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글 : 박혜명
글 : 오정연

<인형사>배우 부상 때문에 달라진 결말

<인형사>는 극장판과 DVD판(대여용이 아니라 판매용에 한해서) 결말이 다르게 됐다. 대역없는 격투신에서 발생한 배우의 부상 때문이다. 부상을 입은 이는 미술관 관장(천호진)에게 붙들려 있던 중년 남자 역의 남명렬. 시나리오대로라면 그는 인형조각가 해미(김유미)와 미술관을 탈출하다가 분노한 인형들의 공격을 맞아 격한 몸싸움을 벌인 뒤 극적으로 탈출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쇄골이 부러진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인형들의 공격과 이에 맞서는 마지막 싸움을 찍을 수 없게 됐다. 자리를 뛰쳐나온 인형들 무리에 밀려 뒷걸음질치다 건물 밖으로 밀려나는 설정으로 대체했으나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이 대체장면까지도 포기하면서 미리 찍어놓은 결말장면들을 한꺼번에 들어내게 된 것이 제작진의 안타까운 속사정이다.

정용기 l 원래는 그렇게 격한 싸움 끝에 빠져나와서 김유미와 함께 인형을 찾아 없애야 하는데 탈출장면부터 어긋났으니 뒷부분을 다 날리고 다른 결말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거다. 쇄골은 금방 붙는 뼈라고 하더라. 하지만 그게 프로덕션 말미에 잡힌 스케줄이었고 개봉 날짜도 임박해 있었기 때문에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장면이 엎어지는 바람에 극장판은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어딘가 어설픈 엔딩이 됐다. 대신 DVD 본편은 격투신을 대체한 탈출장면과 그 이후에 맞는 원래의 버전을 새로 편집해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믹싱도 새로 했고, 러닝타임은 극장판보다 4분 더 길게 나왔다.

<거미숲>겨울 꼬마배우가 하늘로 솟기엔 와이어가 무섭지?

거미숲에 얽힌 소년, 소녀의 이야기에서 죽은 소녀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하늘로 올라가는 판타지 장면이 있다. 송일곤 감독은 이 장면을 준비하면서 소녀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소녀가 떠오를 때 아주 높이 올려 숲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익스트림 롱숏으로 촬영해 소녀가 거대한 숲의 바깥으로 떠오르는 장면을 보여주려 했고, 소녀의 시점에서 숲 위로 떠오르는 장면도 찍으려 했다. 하지만 때는 겨울이었고, 장소는 어둠이 깃든 숲이었으며, 와이어에 매달릴 배우는 아이였다. 와이어의 기술적 한계, 아이라는 위험부담, CG를 쓰는 한계 등이 겹쳐 실제로는 4m만 올려서 찍었다.

송일곤 l 소년의 판타지였는데 좀더 비현실적이고 좀더 만화적이며 아름답고 서정적인 큰 화면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실제의 숲이란 공간을, 그것도 밤의 숲을 조명으로 치기가 쉽지 않았다. 거대한 숲을 조명으로 다 비춘다는 건 결국 예산과 시간의 문제였다. 결과물은 어색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또 터널신에서 감우성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도 강하게 높이 튕겨올라갔다가 ‘쿵’ 하고 세게 떨어지는 느낌을 한컷으로 주려고 했다. 와이어 액션과 CG를 섞어 한컷으로 가긴 했으나 애초 생각보다 100분의 1 정도를 해낸 것 같다. 사운드로 효과를 보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것도 예산과 기술의 문제였다. 애초 CG팀에서 가능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지의 여부를 나도 잘 몰랐고, 다른 방법으로 준비도 못했다.

<쓰리, 몬스터>임원희를 사티로스로 분장시키는데만 1천만원

임원희가 엑스트라 시절을 이병헌에게 회상시켜주는 시퀀스에서 물안경 쓰고 오리발 끼고 버둥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애초 구상은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를 따오는 것이었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염소인 사티로스를 특수분장으로 제작해서 뒤집어쓰고 기괴한 캐릭터의 연기를 시키는 게 원안이었다. 뜻밖에도 제작에 필요한 예산과 시간문제가 지나치게 컸다. 제작비만 1천만원이 넘었고, 인형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모형을 만드는 데 기술적으로도 부담스러워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었다. 염정아에게 피빨리는 노인 마네킹은, 사람이라서 그나마 수월했다. 이만큼의 비용으로 제작을 했지만 사티로스는 결국 포기했다.

박찬욱 l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건 영화감독 이병헌이 어떤 작품세계를 가진 예술가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원희의 엑스트라 캐릭터들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로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도록. 그게 선명하게 잡히면 아무래도 모델이 된 영화감독을 짐작하게 되고 논란이 될 것 같았다. 웃기는 건,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약간 다르기는 해도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한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각본에 넣었는데 이것 역시 비용과 기술 면에서 자신이 없다고 해서 못할 것 같다. 제작비 부담이 없다면 테스트를 여러 번 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할 수도 있겠으나 감독은 영화 전체에서의 비중과 가격대 성능을 비교해야 하니까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린다. 나로서는 장난기 있고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은 건데 영화 전체를 위해 포기하는 거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성실성이 부족해서 대충 넘어간 장면이 뜻대로 안 나오는 건 굉장히 아쉽지만 돈문제 때문에 찍지 못한 건 그렇게까지 안타깝지는 않다.

<범죄의 재구성>카체이싱 헬기에서 찍으려니 장비도 경험도 없네

최창혁(박신양)과 경찰간의 자동차 추격신은, 헬기로 찍을 수도 있었다. 차가 폭발하면서 최창혁이 스스로를 사고사로 위장하는 이 장면은 애초 터널이 아니라 공장지대에서 찍을 계획이기도 했다. 자동차 추격 및 폭발신을 부감으로 잡기에는 공장지대 주변에 적당한 고층 건물이 없어 부산영상위쪽에 헬기 동원을 요청했다. 부산에서 많은 분량을 촬영한 제작진한테 영상위는 그러마고 했다. 곧, 공장쪽과는 이야기가 어긋나고 도와주겠다던 부산영상위쪽이 헬기 동원 협조건을 난감해했다. 하긴, 헬기를 탄다고 바로 촬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카메라의 흔들림을 방지하는 마운트 등 마련해야 할 부수적인 장비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자동차 추격신은 대전의 한 터널에서 벌어졌고, 부감은 14층 건물 옥상에서 잡았다. 아울러 카메라 3대가 터널 주변에 배치됐다.

최동훈 l 원래 우리나라 영화들이 자동차 추격장면을 잘 못 찍는다.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좀 멋있게 찍어보고 싶었는데, 헬기에서 스파이캠으로 찍었을 때 화면이 어떻게 나올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옥상에 올라가서 찍었다. 지금 생각엔 헬기를 동원했으면 영화를 더 못 찍었을 거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식하게 수작업하는 게 제일 좋다. (웃음) 이석원 프로듀서랑 상의해서, 헬기가 안 된다면 거기에 드는 예산을 다른 데 쓰겠다고 했다. 덕분에 모빌 캠 같은 장비는 원없이 쓸 수 있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사대문 안 항공촬영 금지법이란 게 있네요

봉인에서 풀려난 절대악 흑운(정두홍)이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숨은 칠선의 기운을 감지하는 순간. 빌딩 옥상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흑운의 모습을 지미집(무인 조종 크레인)을 이용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이 장면은 원래 항공에서 헬기를 통해 찍으려 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서울의 사대문 안 항공촬영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남한 영토는 아직 전시상황, 보안 위협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고 고궁과 빌딩 숲이 섞여 있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 이 장면을, 사대문 밖에서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제작진은 이 땅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애초의 아이디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찍지 못한 장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주저없이 이 장면을 꼽은 이춘영 PD의 반응에서, 감독 이하 제작진이 느꼈을 나름의 허탈감이 느껴진다.

류승완 | 도시무협이라는 컨셉 때문에 도시 이미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 가급적이면 도시전경을 보여줄 수 있는 숏을 많이 배치하려고 했고, 그래서 옥상 위에서 촬영도 많이 했다. 항공촬영은 좀더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법률적인 이유로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찍어놓고 보니 현재의 결과가 더 만족스럽다. 아마 항공촬영을 했다면 많이 흔들리고 불안정했을 텐데, 지미집을 이용해서 말끔하게 끝난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결국 사대문 안 항공촬영을 했다고 하더라.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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