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블루스가 어울리는 한쌍, <신석기 블루스> - 김현주
2004-12-16
글 : 이종도
사진 : 오계옥
“아직은 땅! 하기 직전의 느낌”

모자 달린 트레이닝복 상의를 입고 있는 모습은 발랄해 보였다. 미소니풍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로 바꿔 입고 어깨를 살짝 드러내고 다리를 벌린 자태는 전성기의 제시카 랭을 보는 듯 아찔했다. 이 여자가 과연 〈토지〉의 서희 맞나. 드라마 <상도>의 다녕 맞나. 가르마를 곱게 갈라 비녀를 한 단아한 아씨라기보다는 금방 롤리타의 껍질을 깨고 나온 도발적인 소녀 같다. 조금이라도 안에서 뭐가 끓어올라 넘칠 듯한데 그건 또 아니다. 도톰하니 아랫입술을 살짝 덮어누르는 윗입술이며, 화장을 지워도 그대로라는 짙은 눈썹에서 고집이 읽혔다. 가벼워 날아갈 것 같은 인상을 선 굵은 눈썹이 잡아 내리고 있달까.

“다중인격자죠. (웃음) 사람들은 속아요. 좋고 맑은 면만 봐요.” 고전적인가 하면 현대적이고 단정한 듯하지만 튀어오르는 공처럼 탄력이 넘치는 변신의 재능을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윗잇몸이 다 보이게 까르르 웃으며 이성재에게 ‘죽었어 죽었어’를 연발할 때는 아무 근심없는 소녀였다. 이번 영화로 처음 만났다는데 오래 알아온 동네 오누이 같다. 그러나 오빠를 그저 믿고 따르는 누이 같지는 않다. 자상하고 세심한 이성재와는 다른 억센 기질이 이 여자에겐 숨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도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인데 감독을 만나고서는 출연 결심을 굳혔다”고 말할 때, “여러분들이 영화 두편이 망했다고 기억하시는데 이제 영화에 관해서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고 할 때 한편으론 느긋해 보이고, 다른 한편으론 강단있어 보인다.

김현주는, <신석기 블루스>가 한꺼번에 몰려온 시나리오들 가운데 유독 따로 한켠에 두고 보게 된 시나리오라고 했다. 강한 캐릭터에 도전해보라고, 왜 변신을 하지 않느냐고 주위에서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센 캐릭터를 덥석 맡는다면 자신도 부담되고 보는 사람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가편집본을 봤을 때는 제가 잘 안 보였는데 다시 보니 어느 순간부터 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예요.”

좋아하는 남자가 변호사라고 해서 법전을 읽는 여자, 그를 1년간 계속 지켜보는 여자, 남자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여자가 <신석기 블루스>의 진영이다. 그가 보기엔 진영은 어리숙하고 엉뚱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귀엽다”. “나도 좋아하는 남자 앞에선 밥을 먹을 때는 평소 잘하는 칼질도 못해요.” 남자 석기를 머스크향으로 기억하는 것도 비슷하다. “누가 폴로 향수를 쓰면 그 사람(과연 누굴까?)이 생각나는 거죠.”

주문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성재의 무릎까지 신경써주며 포즈를 취하는 선수다운 자세가 나오지만 그게 오래돼서 닳아 보인다거나 기계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리 옆이 터진 벨벳 투피스에 여우 목도리를 둘러싼 채 이성재의 무릎에 안겨서는 좀 야하다고 멋쩍어한다. <러브 액츄얼리>의 사운드트랙인 마룬 파이브의 노래가 흘러나와선지 그의 걱정만큼 포즈는 야하지 않다. 대신 따뜻하고 밝다. 어제 친구들 주려고 직접 만들었다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귀고리처럼.

“요즘 들어 더 여성스러워졌어요. 하지만 이런 과감한 의상을 입는다고 해서 진정한 섹시함은 아니죠.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런 분위기를 살릴까 고민해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듯한 이 부분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 안에 관능적인 게 있거든요. 막 꿈틀거려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과 <카라> 같은 결과가 혹시 나오지 않을까 조바심도 나지만 망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일을 오히려 그르친다는 것을 그는 안다고 했다. 오히려 설렘이 더 앞선다고 한다. “아직도 출발선상에서 땅! 하기 직전의 느낌이에요.” 누가 자기보다 더 예쁘고 연기 잘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몇날 며칠을 고민할 정도로 지기 싫어하고, 성격이 특이해 친구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솔직하고, 그러면서도 친구 선물로 목도리를 짜는 여자, 너무 평범해 개성 강한 척도 해보고 괴짜인 척도 해봤지만 들통났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 여자가 들려주는 블루스는 어떤 음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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