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미리 만난 <오션스 트웰브> [1]
2004-12-22
글 : 옥혜령 (LA 통신원)

섹시한 도적들이 돌아왔다!

<비포 선라이즈>도 <비포 선셋>으로 돌아오는 세상이지만, <오션스 일레븐>만큼은 <오션스 트웰브>가 되어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고? 3년 전 조지 클루니와 일당의 <오션스 일레븐>은 누가 뭐래도 꿈같은 딱 한번의 파티, 일생 단 한번뿐인 한탕과 같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장담하지만 1960년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을 만든 랫 팩 스타들에게 물어도 같은 의견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기어이 한탕을 더 뛰고 말았다. 이유도 더없이 상식적이다. 지난번 훔친 돈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3년 전의 대형사고로 고향에서는 얼굴이 팔려 유럽으로 무대를 옮긴 이들의 두 번째 범죄를 내년 1월7일 국내 개봉에 앞서 팜스프링스 시사회에서 엿보았다. 그리고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돈 치들, 캐서린 제타 존스, 앤디 가르시아를 만났다. 뻑적지근한 한건 뒤의 뒤풀이가 흔히 그렇듯, 그들은 유쾌하고 수다스러웠다.

LA=옥혜령 통신원라스베이거스에서 한건 크게 하고 사라진 <오션스 일레븐> 악동들이 팜스프링스의 빅 호른 골프 클럽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추수감사절을 한주 앞둔 11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1억6천만달러의 거금을 들고 사라진 지 3여년, 나름대로 한몫씩 챙셔서 어딘가 꼭꼭 숨어 있다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기엔 사막 한가운데 꼭꼭 숨어 있는 부자들의 개인 골프 리조트장은 참으로 적격이다. 이번에는 유럽을 휘저으며 명예 회복을 하고, 멤버도 한명 늘어 <오션스 트웰브>로 돌아왔다. 라스베이거스의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윤기나던 이 도적들의 스타일, 쨍한 사막의 햇살 아래 약간 빛을 바랜 듯했으나, 여유만만, 유유자적, 설왕설래의 폼이 나른한 사막의 아침 공기에 잘도 들어맞는다. 이쯤 되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배우들과 영화의 캐릭터를 굳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자타가 공인하듯 <오션스> 시리즈는 조지 클루니를 위시하여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 당대 스타들의 매력으로 똘똘 뭉친 영화이기도 하니까.

성공한 도적들의 뒷이야기

<오션스 일레븐>에서 미션 임파서블을 능글맞게 해치우고 사라진 도적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훔친 돈 나눠 갖고, 바른생활로 돌아가 행복하게 잘살았다더라는 유의 후일담을 상상한 관객이 얼마나 될까. 현란한 기술을 버리기엔 아깝고, 저지른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오션스 일레븐>의 악동들도 노력은 했다. 미스터 오션, 대니(조지 클루니)는 테스(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코네티컷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러스티(브래드 피트)는 할리우드의 호텔 경영자로 변신, 나름대로 자리를 잡으려고 하나… 세상이, 그리고 영화 비즈니스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편의 성공에 고무된 제작진이 이들을 그냥 내버려둘 리 없는 터. 전편에서 금고와 여자까지 몽땅 털린 불운한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의 손을 빌려 다시 악동들을 호출했다. <오션스 트웰브>는 그렇게 시작한다. 도둑맞은 돈을 보험금으로 배상받고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테리가 11명의 도적들을 추적해, 훔쳐간 것을 이자까지 쳐서 내놓으라니.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악동들은 훔친 돈을 갚기 위해선 또 한탕 크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럽으로 향하는데. 유럽은 만만할까. 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건 검은 그림자, 테리뿐만이 아니었으니. 유럽의 명도둑 ‘나이트 폭스’가 지존의 명예를 걸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션스 일레븐>은 ‘복고풍 아우라’에 호소한 기획의 힘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라도 믿는 제작자 제리 와인브롭의 믿음대로 <오션스 일레븐>은 오리지널 랫 팩의 아우라를 현대 시점에 되살리는 것이 소명이었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당대의 스타들이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의 볼거리를 무대로 한껏 매력을 뽐내는 걸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영화는 공동 제작사로 참여한 소더버그와 조지 클루니라는 브랜드 네임과 적당히 궁금증을 자극하는, “하우던딧”(어떻게 훔칠까)이라는 고전적인 도적영화의 플롯을 가지고 있었다. 장르의 법칙을 따라 이야기에 개연성이 있는지, 캐릭터가 입체감이 있는지 등을 굳이 따질 수도 있겠지만, <오션스 일레븐>은 각종 스타일의 향연으로 이 질문들을 가뿐히 빛바래게 만들어 버렸다.

무대와 플롯은 바꾸되, 전편의 매력을 되살린다

<오션스 트웰브>는 전편의 매력을 굳이 숨기지 않고 계승한다. 단지 라스베이거스의 달러 냄새나는 아우라를 유럽의 미술관과 고성으로 대체했을 뿐. 나이가 먹어도 건재한 멋있는 배우들은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고, 쿨한 농담을 날리며, 여유만만 유럽의 거리를 누빈다. <오션스 트웰브>에서 범죄의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고, 도적질이 생각보다 시시하다고, 왜 미국의 도적들이 끝내 승리하냐고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애당초 영화는 ‘게임의 법칙’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선수들’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영화가 있는 것이다. 그저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영화.

사실, 11명이나 되는 배우가 출연한 앙상블영화가 속편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는데, 속편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스티븐 소더버그란다. 전편의 홍보차 들른 로마에서 로마를 처음 가본 소더버그 감독은 그 자리에서, 오래된 고도에 반해, 유럽을 배경으로 한 속편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거기에 이야기의 얼개를 덧붙인 것은 미국의 대도와 유럽의 대도가 맞붙는 어드벤처를 그린 조지 노프리의 희곡, <도둑들의 의리>. 소더버그 감독은 전편에서 원하는 성공을 맞본 도둑들이 점차 꼬이는 상황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그래서인지 위기를 우아하면서 위트있게 벗어나는 <오션스 트웰브>의 도적들은 하나같이 <괴도 루팡>류의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캐릭터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오션스 트웰브>에서는 전편에서만큼 소더버그와 영화사 ‘섹션 에잇’의 공동 파트너이기도 한 조지 클루니의 활약이 전방으로 두드러진다. 시나리오 작업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개인 별장까지 숙소로 제공하는 등 배우들의 팀워크를 맞추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배우의 기량과 파워를 이해하는 조지 클루니의 영향인지, 한번 팀워크를 다진 멤버들의 여유로움인지는 모르지만, <오션스 트웰브>의 배우들은 사실, 그들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만큼 별 제약없이, 부담없이, 마음껏 자신들을 연기한다. 하긴, 이 쟁쟁한 스타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는 건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을 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는 제리 와인브롭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생애 몇번 있을까 말까한 앙상블 드라마의 기회를 십분 살리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트웰브’란 이름이 무색하게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 잘생긴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 기타의 멤버인 돈 치들, 버니 맥, 캐시 애플렉 등이 충분히 제 솜씨 발휘할 기회가 없는 것이 유감일 뿐.

캐서린 제타 존스, 화려한 경쟁상대의 출현

이들의 경쟁 상대가 있다면, 예상 못한 새 멤버 캐서린 제타 존스였다. 섹시하고 유능한 유로폴의 수사반장 이자벨 역을 맡은 캐서린 제타 존스는 시각적으로나 이야기 구성상 미끈한 남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극적인 요소. 대니의 옛 여자친구이자 유럽 제일의 명도를 아버지로 둔 혈통을 이어받아 미궁의 범죄를 척척 풀어내는데(여자 명탐정 셜록 홈스 같다),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 커플에 이어 캐서린 제타 존스와 브래드 피트 커플의 캐미스트리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사실, 할리우드 최고의 두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캐서린 제타 존스의 스트린 맞대결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두 사람 사이에 경쟁이 있었다는 둥 들리는 소문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평범하게 살자고 남편을 설득하다 못 이겨 결국 모의에 가담하게 되는 테스 역은 이자벨의 윤기나는 화려함과 섹시함에 비하면, 확실히 약간은 덜 글래머러스하다.

명탐정 홈스와 괴도 뤼팽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나이트 폭스’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유럽의 명도적이자 플레이보이, 프랑수아 툴루아(뱅상 카셀)야말로, <오션스 트웰브>가 추구하는 복고적인 아우라를 구현하는 (만화적인) 인물이다. 돈, 명예, 여자에, 현란한 도적질 솜씨까지 아쉬운 것 하나 없는 남자, 나이트 폭스를 보고 있노라면 유럽인, 특히 프랑스 남자에 대한 온갖 클리셰가 그 안에 다 녹아 있는 듯하다. 아무 일 아닌 듯이 손쉽게 사기, 절도 행각을 벌이는 미국의 도적들에 비하면 타고난 도적이라는 뱅상 카셀의 노력은(미술관에서 귀중품을 훔치는 뱅상 카셀의 액션을 보라) 눈물겹다.

<오션스> 시리즈의 자산=‘배우’

<오션스 트웰브>가 배우들의 연기에 의존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감독의 터치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이번에도 직접 촬영을 도맡아한 소더버그 감독은 전편과는 약간 다른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을 적극 응용했다.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시공간 배경의 자막 처리뿐 아니라 핸드헬드 카메라와 약간은 거친 듯한 톤의 색감을 사용해서 유럽의 도시를 관광하는 듯한 생생함을 살려냈다. 아닌 게 아니라 소더버그 감독이 전편 홍보 투어 때 점찍어두었다는 암스테르담, 로마, 파리, 몬테카를로 등 유럽의 도시에서 찍은 장면들은(눈에 익은 관광 스폿도 포함해서) 생생함이 지나쳐 일련의 관광 엽서 같기도 해서, 절도범들이 모여 음험한 한건을 계획할 곳으로는 왠지 마땅치 않다. 나이트 폭스의 집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레이크 코모에 있는 빌라가 루치아노 비스콘티 가족의 별장이었다는 사실은 뜻밖의 흥밋거리.

속편 붐을 타고 할리우드가 속편으로 넘쳐나고 있지만, 스펙터클한 액션영화가 아닌 드라마가 속편으로 제작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다. 어지간히 탄탄한 플롯이나 새로운 볼거리가 있지 않고서는, 코디미나 스릴러 같은 장르의 관습에 기댄 자기 복제에 그치고 말 위험이 있기 때문일 텐데. 딱히 장르적 법칙이랄 것도 없는 <오션스> 시리즈가 가진 자산은 아무래도 ‘배우’라는 스펙터클일 듯하다. 아직은 아무 계획이 없다지만, 랫 팩이 돌연 리메이크된 것처럼 시간이 흐른 뒤 <오션스 써틴> <오션스 폴틴>으로 이어지는 프랜차이즈가 등장할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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