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연기라기보다 우리가 놀던 모습 그대로다”
유례없이 200여명의 미국 내 기자들과 해외 기자단이 공동으로 참여한 <오션스 트웰브> 기자회견장은 서로 질세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배우들의 입담 경연장이었다.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돈 치들이 한팀을 이룬 첫 번째 기자회견, 정신없이 오고가는 농담과 진담을 도저히! 다 옮길 수 없음이 유감일 따름이다. 하지만 각종 음향효과 제공까지 서슴지 않은 맷 데이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선은 역시 ‘미스터 오션’, 조지 클루니가 제압했다. 이 모든 판을 짜고 기자회견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들으면 유감스럽겠지만, 누가 봐도 이건 정말 배우들의 영화다.
-유럽이 라스베이거스보다 더 쿨했나. 하다못해 선글라스나 양복 스타일이라도.
조지 클루니 l 호텔이 쿨했다.
맷 데이먼 l (여전히 이상한 목소리) 감독이 콜하면 우리는 응할 뿐이지.
돈 치들 l 맷 말대로 감독이 톤을 정했다. 대충 안전하게 성공했던 전편을 반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션스 트웰브>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다. 훨씬 재밌고, 영화적이기도 하다. 속편을 만드는 게 일종의 도전이었을 텐데 스티븐 소더버그는 두려움 없이 해냈다.
조지 클루니 l 그리고 제리(프로듀서)를 잊지마…. 이 두 사람만 영화에서 쿨한 요소다. 나머지는 전부 촌닭(dork)들이지. (웃음)
-영화적이라고 했는데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로만 봤을 때, 전편의 우아하고 화려한 스타일에 비하면 좀더 거칠어진 것 같다.
조지 클루니 l 우리가 멋있게 나오는 건 변함없는데, ‘우리’ 말이야…. (웃음) 전편은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완전히 클래식하고 화려한 스타일은 아니다. 핸드헬드도 많이 쓰였고. 소더버그 감독은 항상 독립영화나 외국영화에서 배운 스타일을 응용하려고 한다.
돈 치들 l 전편보다 이미지가 파워 있다. 소더버그 감독은 다른 스타일의 색채나 사운드를 실험적으로 쓰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훨씬 역동적이다. 보통 매끈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스튜디오영화 스타일보다는 독립영화 스타일을 도입하는 소더버그 감독의 스타일이 훨씬 흥미롭다.
-조지, 이런 유의 속편을 만들 때 어려운 점은 뭔가.
조지 클루니 l 음, 이 수많은 자의식(ego)들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거다. 속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처음 <오션스 일레븐>을 만들 때 아무 계획이 없었으니까 속편이 그냥 유기적으로 자연 발생했다고 보면 되겠다. 말 그대로 우리가 같이 로마에 갔을 때, 레스토랑에 앉아 거리를 구경하던 스티븐 소더버그가, “속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라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만약 소더버그 감독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우리 모두 속편을 위해 참여하지는 않았을 거다. 알다시피 전편을 반복하는 속편은 재미없으니까…. 전편이 끝난 데서 시작하자는 소더버그 감독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 배우가 참 많이 등장하지 않나. 제리랑도 다시 같이 일을 해야 했고…. 속편의 유일한 문제점은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것이지. (웃음)
맷 데이먼 l 드르렁….
-이제 영화가 끝난 시점에 말하기는 이르지만 <오션스 서틴>이나 <오션스 포틴>을 만들 계획은 없는가.
조지 클루니 l (다른 배우들을 보며) 우리 뮤지컬 만들기로 계획한 것 있었지? <오션스5, 6, 7, 8>이었나? (웃음) 사실,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그렇지만 스티븐 소더버그나 제리는 캐스트 멤버들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를 바란다. 둘 다 같이 일하기에 재밌는 사람들이다.
맷 데이먼 l 모두 다 재밌지. 소더버그만 빼고. (웃음)
-브래드 피트의 범퍼 스티커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던데.
조지 클루니 l 처음 로마에 도착했을 때 브래드 피트가 나 몰래 스탭들에게 쪽지를 돌렸다. 내용인즉 “클루니는 여러분들이 본인을 ‘대니 오션’, ‘미스터 오션’으로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거였다. 내가 영화의 캐릭터에 몰입하고 싶어하는 걸로 생각한 스탭들이 한달 동안이나 나를 ‘미스터 오션’이라고 불렀다. 복수를 안 할 수가 없었지. 브래드 피트 차에 범퍼 스티커 두개를 붙였는데, 하나는 “나는 게이 그리고 투표자”라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뭐 창문에 붙인 남자 성기 모양의 스티커였다. 브래드 피트가 그걸 붙이고 LA 시내를 돌아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웃음)
-스티븐 소더버그는 직접 조명과 카메라까지 담당하는 작업 스타일로 알려졌는데, 배우로서 함께 일하는 건 어땠나.
돈 치들 l 나로서는, 그게 감독을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소더버그는 다른 감독들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모니터만 보면서 연기를 디렉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카메라 내려놓고 바로 와서 말하는 스타일이니까 훨씬 친밀하게 느껴졌다.
조지 클루니 l 사실 뭐 소더버그가 영화를 디렉팅한 건 아니지.
돈 치들 l 카메라를 돌렸지만 디렉팅은 아니었지. 배우들 각자가 디렉팅했다고 해야 하나. (웃음) 아니면 소더버그가 디렉팅당했다고 해야 하나?
조지: 그렇지, 진짜는 프로덕션디자이너가 전체적으로 짜맞췄으니까. (웃음)
-이런 12명의 주연이 등장하는 도적영화(caper movie)의 스토리는 복잡하게 마련이어서 관객이 따라잡기 힘든 경우도 있는데, 반전 등이 너무 오버하지 않았나 그런 걱정은 없었나.
조지 클루니 l 괜찮은 도적영화가 항상 그렇듯이, 어떻게 도둑질하나 자체가 영화의 중심이 아닌가. 하지만 당연히 좋은 스토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캐릭터 설정이 잘되면, 간단하게 한건 하고 끝낼 때도 관객이 무난히 받아들인다. 물론 이번엔 약간 복잡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앙상블영화의 경우 즉흥 연기도 많을 텐데, 얼마나 자유가 주어졌나.
조지 클루니 l 등장인물이 많으니까 생각보다는 스크립이 탄탄하게 짜여져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 우리 아이디어도 많이 수용했고 분위기도 느슨했기 때문에 각자 자기 대사를 가지고 약간씩은 즉흥 연기를 했다. 우리야 즐겼지만, 감독이 고생했다. 12명 사이로 카메라를 누비며 짜맞추려면.
-맷, 전편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게 해달라고 조르는 캐릭터로 나왔는데, 이번에 영화에서 역할이 커졌다. 직접 졸랐나.
맷 데이먼 l 사실, 더 작은 역할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일 좀 덜하려고. (웃음) 이번 영화에서 역할이 크긴 하지만 멍청하고 웃긴 역할로 나오는데,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에 대한 반작용이다. 항상 옳은 일만 하고 진지한 역할을 하는 데 지쳤거든.
-속편에서 각자의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했나. 전편에 비해 캐릭터들이 뭘 원하는지 확실하게 구상되어 있지 않았을 텐데.
맷 데이먼 l 사실 난 스크립 안 읽었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면 캐릭터를 ‘발견하는’ 장점이 있다.
조지 클루니 l 돈, 당신은 스크립 읽었지?
돈 치들 l 아니, 완전히 짜여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게 더 재밌다.
조지 클루니 l 이런, 놀라울 따름이군. (웃음) 하지만 분명히 자연스레 캐릭터가 좀더 발전한다. 1편에서는 호텔을 털기 위해 우리가 모든 걸 철저하게 계획했지만, 2편에서는 앤디 가르시아 캐릭터에 맞춰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전혀 다른 게임의 법칙이 생겼다. 나한테는 그게 제일 재미있는 점이었다. 속편에서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나가면서, 우리를 잡으려는 중심 캐릭터가 있으니까 우리가 그렇게 악당들로 그려질 수가 없다. 뱅상 카셀 캐릭터도 마찬가지고.
-줄리아 로버츠와 캐서린 제타 존스라는 두 스타 여배우가 참여했는데, 둘 사이의 차이점을 꼽는다면.
조지 클루니 l 뭐, 차이점이라면 캐서린은 임신 안 했다는 거? (웃음) 사실, 같이 촬영한 적이 거의 없는데. (웃음) 둘 다 이미 마련된 판에 새로 동참하기가 꺼려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두려움 없이 금방 팀에 잘 어울렸다.
-줄리아 로버츠가 줄리아 로버츠를 연기하는 상황이 있다.
조지 클루니 l 촬영이 시작되고 한달쯤 됐을 때 줄리아가 임신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그래서 계획을 약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줄리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유명인사들에 대해 농담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할까는 민감한 문제였는데, 줄리아가 너무 좋아했다.
맷 데이먼 l 줄리아가 연기하는 그 시퀀스는 완전히 줄리아가 주도했다. 촬영할 때 돈과 나는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코믹하게 나갔는데, 다들 신이 나서 한번에 작업했다.
-이번 촬영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돈 치들 l 서로를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확실히 더 친해졌다. 첫 촬영 있는 날 시카고의 한 창고 세트에서 만났는데, 한 시간 동안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며 우리끼리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 보니까, 소더버그가 포지션이며 동선, 앵글 등을 바닥에 다 표시해뒀더라. 영화에 그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연기라기보다 그냥 우리가 그렇게 놀던 그대로다.
조지 클루니 l 전에 한번 같이 일했던 팀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서로 같이 있는 게 즐거운 사이들이라 어떤 동지애 같은 분위기도 느껴지고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