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쿵푸 허슬> 미리 보기 [1] - 등장인물들
2005-01-05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주성치가 본토에 숨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만 알려졌던 <쿵푸 허슬>은 설산(雪山) 위에 은거하고 있다는 무림고수처럼, 대단하다지만 누구도 본 적 없는, 전설로 떠돌고 있었다. 세트를 봉쇄하고 사람들의 입을 막고 남몰래 완성한 영화. 토론토영화제 프리미어를 거쳐 12월16일 홍콩섬 타임스스퀘어에서 시사회를 가진 <쿵푸 허슬>은 1년 넘은 노고와 2400만달러의 제작비를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은 영화였다. 구두쇠로 소문난 주성치는 “영화에 돈을 아껴서는 안 된다”면서, 컴퓨터그래픽과 쿵후가 숨쉬듯 결합하고, 표정을 숨긴 고수가 무뚝뚝하게 웃겨주는, 놀라운 쿵후 코미디를 완성했다. 세월에 빛이 바랜 1940년대 중국 가옥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쿵후를 사랑하고 담대한 코미디를 구사하는 주성치의 역작일 것이다. 1월14일 한국에서도 그 전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성치는 ‘모 레이 타우’라고 불리는, 광둥어를 사용한 말장난으로 인기를 얻었다. 능청스러운 말투를 가진 그는 물에 빠져 죽어도 입만 살아 동동 떠다닐 것 같은 코미디언이었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다른 어딘가에 닿아 있었나보다. 주성치는 2002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소룡과 찰리 채플린을 숭배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했고, 그 무렵 개봉한 <소림축구>는 그 우상들의 영화처럼 대사가 아닌 몸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2년이 지났다. 인터뷰 도중 “내 모든 영화에는 액션이 있다”고 말했던 주성치는 마침내 스스로 순도 100%라고 자신하는 쿵후영화 <쿵푸 허슬>을 내놓았다. 중국어 제목은 단지 <쿵푸>(功夫). 서양 아이들이 산타를 믿듯 속세를 뛰어넘는 무공의 경지를 믿었던 중국 소년은, 오래 마음속에 머물렀던 꿈을 빚어, 수십년 묵은 술항아리와도 같은 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는 주도(酒道)를 몰라도, 그 향기에 취하는, 명주를 담갔다.

CG로 만들었지만 옛날 홍콩영화가 연상되는 작품

주성치는 신작을 묻는 질문에 “쿵후를 소재로 삼은 영화”라고만 답했었다. 미스터리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쿵푸 허슬>은 어쩌면 그런 설명이 최선일지도 모르는 영화다. <쿵푸 허슬>은 멀게는 육조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중국의 무공에,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기를 배제한 권법에, 경의를 바친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을 떠안고 있지만 몸과 몸이 부딪치는 둔중한 마찰음만은 오직 수공으로 제조됐던 옛날 홍콩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엔 정의가 있었고, 영웅이 있었다.

갱단이 도시를 통치하는 1940년대 상하이, 가난한 청년 싱(주성치)은 막강한 조직 도끼단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는 부하 물삼겹을 거느리고 빈민가 돼지촌에 들어가 도끼단원을 사칭하지만, 마침 부근을 지나던 진짜 도끼단원들이 나타나고, 싱은 두 집단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된다. 비겁하게 잘못을 떠넘긴 싱 때문에 위기에 처한 돼지촌. 돼지촌에 은거하고 있던 세 고수 쿨리와 테일러, 도넛은 어쩔 수 없이 도끼단에 맞서 무공을 드러낸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다. 도끼단 보스 섬은 강호에서 두 번째가는 킬러 콤비 ‘심금을 울리는 가락’을 불러 세 고수를 살해한다. 그들의 죽음을 지켜본 또 다른 고수, 돼지촌 주인과 여주인은 다시는 싸우지 않으리라던 맹세를 깨고선 결전을 준비한다.

<쿵푸 허슬>은 플롯이 단단한 드라마가 없는 대신 연이어 나타나는 고수와 그들만의 무공이 있는 영화다. 상대의 기(氣)를 꺾지 않고 부드럽게 받아 넘기는 태극권, 유연하다는 점에서 태극권과 통하는 영춘권, 전설로만 전해지던 사자후, 송대에 태동해 유서 깊고 변화무쌍한 오랑팔괘곤. 허약해 보이는 샐러리맨에게도 얻어맞는 싱이 이 고수들을 만나 식견을 넓혀가는 여정은 언뜻 김용의 무협소설 <녹정기>와 비슷해 보인다. 주성치는 악의는 없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주인공 위소보를 연기했고, 홍콩에서 제작한 <쿵푸 허슬> 팸플릿도 ‘반영웅’이라는 소제목 아래 싱을 위소보와 비교했다. 그 둘이 다른 점은 싱은 재치가 없는 대신 타고난 무골(武骨)이라는 사실이다.

무협소설엔 종종 남들보다 반을 수련해도 두배를 성취할 수 있는 무골이 등장하곤 한다. 싱은 천지간에 둘도 없는 바로 그 무골을 타고났다(<쿵푸 허슬> 영어자막은 <매트릭스>를 차용해 싱을 ‘the One’이라고 표현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주인공이 마지막에 떨쳐일어나리라는 공식을 배반하리라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싱은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만난 걸인으로부터 ‘여래신장’(如來神掌)을 수련하는 비급을 샀다. 스턴트맨이나 되고 말라는 비웃음을 감수하며 연마한 그 무공은 싱이 어른이 되도록 좌절만 안겼지만, 중독되거나 경맥이 끊어지는 고난으로 인해 내공이 급격히 상승하는 무협소설 주인공들처럼, 싱도 한 고비를 겪으며 잠자고 있던 에너지를 일깨운다. “나도 사람을 죽일 수 있어! 지금 죽이러 갈 거야!”라고 악에 받쳤던 싱은 각성하기 조금 전에 들고일어난 착한 마음 때문인지 자비로운 여래신장으로 성난 쿵후고수 야수를 지그시 내리누른다.

<쿵푸 허슬> 등장인물들

진정한 고수는 나라고!

원화_돼지촌 주인
원화는 악역으로 명성을 얻은 액션배우이자 무술감독이다. 홍금보와 성룡과 함께 칠소복(베이징오페라학교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섰던 일곱명의 아이) 중 한명이었던 원화는 <용쟁호투>에 이소룡의 적수로 잠깐 출연했고, 1987년 <동방독응>으로 악당 이미지를 새기기 시작했다. 주성치와는 <도학위룡> <정성> 등에서 나란히 모습을 보였던 사이. 그러나 <쿵푸 허슬>에서는 불의를 참지 못해 사지로 뛰어드는 착한 남자 역을 얻었다. 유한 성격의 돼지촌 주인은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그 기를 받아 되치는 태극권의 고수이고, 그런 장기 덕분에 아무리 맞아도 큰 상처를 입지 않는다.

원추_돼지촌 여주인
1975년 결혼해 은퇴했던 원추는 28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정천입지>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출연하기도 한 그녀 또한 칠소복의 일원. <쿵푸 허슬> 오디션에 참가한 친구 뒤에서 담배를 물고 신문을 보다가 주성치의 눈에 띄었다. 주성치는 “내가 찾고 있던 여자가 바로 그 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과 성격이 정반대인 돼지촌 여주인은 ‘사자의 포효’라고 하는 사자후를 내질러, 거문고를 타서 음파로 살인을 하는 ‘심금을 울리는 가락’을 제압한다. “한밤중에 뭐 하는 짓이야! 잠 좀 자자!”고 외치면서. 경공술도 뛰어나다.

양소룡_야수
지하에 갇혀 있다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 쿵후고수 야수는 양소룡의 실제 경력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소룡, 성룡과 함께 ‘삼소룡’(三小龍)이라고 불렸던 양소룡은 1970·80년대 1천편이 넘는 액션영화와 TV시리즈에 출연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80년대 중반 중국 본토를 방문했다가 연기를 그만두게 됐다. <쿵푸 허슬>은 그 시절 이후 첫 번째 영화. 오랫동안 연기를 하지 않았던 그는 발차기가 되지 않아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을 얻어야 했다.

동지화_도넛
본토 출신으로 베이징오페라하우스 배우이기도 했던 동지화는 <대상해 1937> <추격 8월 15일> 등 장철의 말년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쿵푸 허슬>에서 맡은 역은 숨은 세 고수 중 하나인 도넛. 그가 구사하는 오랑팔괘곤은 실재하는 무공으로, 송대에 시작돼 황비홍에게까지 전해내려온 봉술이다.

조지릉_테일러
1970년대에 <사형도수> <육합천수>에 출연한 조지릉은 홍가쿵후의 고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무술학교에서 쿵후를 가르치고 있고, <쿵푸 허슬>에서 구사하는 무공 또한 홍가철선권. 쇠로 만든 링을 사용해 파워있는 권법을 구사하지만, 호모라고 놀림받으면, 운다.

임자총_물삼겹
주성치는 “신인배우들은 정해진 이미지가 없어서 자유롭게 연기를 시킬 수 있다”고 했다. <소림축구>에 육사제로 출연한 임자총은 그런 자유로운 운용의 예였다. 뚱보가 하늘을 날다니! 라는 것이 당시 연출 의도. 성치해외유한공사에 프로덕션 매니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입사한 임자총은 이제 배우와 TV 쇼 사회자로도 일하고 있다. 이번에 맡은 역은 싱을 따라다니는 물삼겹. 특기는 없다.

진국곤_도끼단 보스
<소림축구>에 사사형으로 출연한 진국곤은 원래 엑스트라를 지도하는 안무가였다. 이소룡을 닮았기 때문이었지만, 이번에 맡은 역은 외모의 그림자를 말끔히 털어낸 악당 역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패륜아. 맥도널드와 산미구엘 광고모델인 그는 록밴드 포엣의 리더이기도 하다.

편집 김유진
디자인 노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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