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신장: 용기와 선이 만난 지고의 무공
주성치는 “<쿵푸 허슬>의 모럴은 누구나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내 마음 안엔 용기의 감각이 있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럴 수 없을지 몰라도, 그런 본성을 일깨우는 영화를 만들 수는 있다.” 부처의 손바닥을 뜻하는 여래신장은 그 용기와 선이 만난 지고의 무공이다. 홍콩에서 인기있는 만화책이었던 <여래신장>은 1960년대와 80년대에 영화로 제작됐고 얼마 전에는 TV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성치가 하늘에 드리운 부처의 손바닥을 향해 솟구치는 장면은 <서유기>가 떠올라 코믹하기도 하지만, 장엄한 손자국이 야수를 건드리지 않고 그 위용만 과시하는 순간, 잊혀진 동양무술의 정신을 불러낸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행동과 마음이 맞아떨어지는, 영혼의 무술. 싱은 김용의 <사조영웅전>에서 가장 사악한 서독 구양봉이 구사하기도 했던 야수의 합마공을 그렇게 다스린다. 독 품은 두꺼비의 초식을 펼치는 합마공을 분쇄하지 않고 품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과거를 소환하는 <쿵푸 허슬>은 CG를 걷어내면 다소 복고적일 수밖에 없다. 아홉살에 <당산대형>을 보고 “나도 쿵후를 배워 나와 내 가족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주성치는 좋아하는 1970년대 쇼브러더스 영화보다도 삼십년을 건너뛰어 1940년대에 내려앉았다. <매트릭스> <와호장룡>의 무술감독 원화평은 주성치가 1930년대와 40년대풍의 쿵후를 요구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촬영장에 일하러 갔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원화평은 1945년생이다). 나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주성치를 말렸지만 그는 지금 관객에겐 오히려 새로울 거라고 고집을 세웠다.” 24억원을 들여 지은 돼지촌 세트도 리칭이 주연한 쇼브러더스 영화 <칠십이가방객>을 토대로 두고 1940년대 중국 남부 분위기를 살린 건물이다. 미술팀은 돼지촌을 세심하게 완성하기 위해 중국 전역을 뒤져 오래된 변기부터 문손잡이까지 소품을 모아야 했다.
주성치는 그 시대를 선택한 이유를 “1930∼40년대는 매우 흥미롭다. 모던한 분위기와 구식 전통이 공존하는 교차로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 무렵은 또한 군벌과 공산당, 국민당, 일본 등이 중국 대륙을 쪼개어 가지고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삼국지>가 묻는 것처럼,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도끼단과 악어단이 도시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도입부는 금주법이 포고된 1930년대 시카고와 닮았지만 흩어진 중국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이소룡을 우상으로 알고 자란 주성치는 “연기와 쿵후는 내게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연기와 쿵후가 뒤섞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이소룡과 직접 관계를 맺는 <신정무문>뿐만 아니라 일종의 로맨틱코미디라고 할 수 있는 <당백호점추향>과 요리영화 <식신>에까지도 쿵후를 끌어들였다. 영화를 보고 쿵후를 동경하게 된 주성치가 온갖 무협영화를 <쿵푸 허슬>에 인용한 것은 타란티노가 <킬 빌>에 동양과 미국 액션영화를 늘어놓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주성치는 이소룡과 쇼브러더스 영화 말고도 수없는 잡종영화를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돼지와 똑 닮은 간판을 단 돼지촌 마당에 둘러세웠다.
전작 <소림축구>를 관통하는 <쿵푸 허슬>
<쿵푸 허슬>이 가장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영화는 주성치 자신의 <소림축구>다. 축구를 하는 꼬마들의 공을 밟고 서서 “아직도 축구 따위를 하나”라고 빈정대는 싱은 하나의 절정에 도달한 다음 또 다른 절정으로 도약하는 고수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서 고수란 싱이 아니라 감독이자 배우로서 주성치가 되겠다. 도끼단은 <갱스 오브 뉴욕>의 뉴욕 토박이 갱단처럼 실크해트를 쓰고 도끼를 휘두르고, 그 실크해트는 주성치가 어린 시절 친구이자 아련한 첫사랑인 퐁을 살짝 눕혀 안는 뒷벽의 포스터,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1935년작 <탑 햇>으로 연결된다. 도끼단원들이 도로 앞에서 전투를 위해 늘어선 대열은 어린 갱단들이 대치하고 있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유명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도끼단 보스 역의 진국곤은 엑스트라를 지도하는 안무가였다가 이소룡을 닮은 외모 덕분에 골키퍼로 뛰는 <소림축구>의 네 번째 사형으로 발탁된 배우다. 제임스 캐그니처럼 성질 나쁜 그는 도끼단원들과 함께 플로어에 서서 춤을 추며 승리를 자축하곤 한다. 오우삼은 액션영화의 궁극은 피를 흘리지 않는 뮤지컬이라고 믿었다. 주성치는 그 경지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아직은, 피가 쏟아져나오는 <샤이닝>의 엘리베이터를 환락가 카지노에 갖다둔다.
그러나 <소림축구> <쿵푸 허슬>이 모두 주성치의 가운데 자 싱(星)을 주인공의 이름으로 택한 건 패러디나 인용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독이나 배우를 그 영화와 동일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해도, 이 두 영화는, 기교를 넘어선 진심이 있다. 주성치는 가난한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로 자랐다.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던” 주성치는 아직도 전설의 고수들이 세상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없다. 그래서 누구와도 다른,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운 주성치의 코미디가 몰아치지만(로드 러너와 코요테의 추격전을 실사로 찍겠다는 결심은 아무나 못한다), 이 영화엔 <소림축구>와 비슷한 비애가 남아 있다. 갱들이 판을 치는 1940년대 상하이, 여래신장을 습득한 고수는, 2000년대 홍콩에 내려온 소림제자처럼 다른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 것이다.
특수효과 스튜디오, 센트로 디지털 픽처스 4인방 인터뷰
“우리는 오리엔털한 우리만의 스타일이 있다”
<쿵푸 허슬>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센트로 디지털 픽처스는 지금까지 <소림축구> <킬 빌> <중화영웅> 등을 작업해왔다. 1980년대 중반 포스트 프로덕션 업체로 출발한 이 회사는 지금 홍콩섬 도심의 코즈웨이 베이와 IT업체들이 주로 입주해 있는 홍콩섬 서부 첨단지구 사이버포트 두곳에 사무실을 두고, TV 광고와 애니메이션, 영화 특수효과, 뮤직비디오, 비디오 게임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방인은 엘리베이터 타는 법도 알아낼 수 없는 초현대 빌딩. 100명 넘는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특수효과 슈퍼바이저 프랭키 청, 애니메이션 디렉터 톰 카이 콴과 돈 마, 프로듀서 토미 톰을 만났다. 전날 촬영 때문에 약간 늦게 도착한 이들은 장동건이 출연하는 첸카이거의 신작 <무극>을 작업하고 있었다.
-<쿵푸 허슬>은 특수효과와 배우의 연기, 그들이 구사하는 쿵후가 한데 녹아 있다. 눈으로 보기에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장면은 무엇이었나.
=쿵후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돼지촌 주인이 보여주는 태극권은 몸 안의 기를 바깥으로 발산하고, 그 아내가 주로 쓰는 ‘사자의 포효’는 사운드를 무기로 사용해서 파워풀하다. 또 쿨리는 다리를, 테일러는 링을, 도넛은 봉을 사용한다. 우리는 무협지와 무협영화, 홍콩과 일본 만화 등을 모두 참고해 컨셉을 만든 다음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해 그것들을 봉합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심금을 울리는 가락’과 돼지촌 주인이 싸우는 장면이었다. 음파가 검처럼 사람 몸을 베는 장면이어서 그림으로 나타내기 힘들었는데 주성치가 음파를 진짜 검처럼 보이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장면은 12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오후 다섯시부터 다음날 아침 일곱시까지 찍었고, 우리도 날마다 그곳에 가 있었다.
-홍콩영화의 특수효과는 할리우드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이 회사만의 장점이 있다면.
=우리는 예산이 적고 스케줄이 빡빡하고 컴퓨터도 좋지 않아 미국보다 뛰어난 특수효과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홍콩은 오랜 쿵후 문화를 소유하고 있다. 괴물이나 우주선이 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문화에 기반한 우리만의 스타일을 개발해왔다. <쿵푸 허슬>에서 주성치는 부처의 손바닥으로 내리치는 ‘여래신장’을 구사하는데, 그것은 1960∼70년대 무렵 무협영화에서 차용한 것이다. 태극권도 중국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우리는 매우 오리엔탈하다.
-<쿵푸 허슬>은 토론토영화제에서 공개된 다음에 특수효과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성치와 돼지촌 여주인이 로드 러너와 코요테처럼 쫓고 쫓기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오우삼 감독이라면 너무 만화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젯밤 극장에 가보니 관객은 다들 웃고 있었다. 컴퓨터그래픽인지 실사인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관객은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어하고, 우리는 새로운 걸 창조하는 일을 좋아할 뿐이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만의, 오리엔탈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주성치가 원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이 있는가.
=주성치는 <소림축구> 이후 4년이 지났기 때문에 더 발전된 기술이 필요한 장면들을 요구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설명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주성치는 싱의 주먹에 맞은 야수가 몇개의 벽을 뚫고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카메라 다섯대로 찍고 싶어했다. 벽을 하나 뚫는 순간마다 야수를 찍고 마지막엔 그 얼굴을 클로즈업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간이 매우 많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지금 스케줄로는 어렵다고 설득했다. 주성치는 수긍해주었고, 그 장면은 카메라 팬으로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