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4년 우리가 놓친 영화 [4] - 영국, 독일
2005-01-11
글 : 이지연 (런던 통신원)
글 : 진화영 (베를린 통신원)

잊을 수 없는 요크셔의 풍광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사랑의 여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졌다. 일어서는 사람들 사이로 조용한 술렁거림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2004년 10월 <사랑의 여름>(My Summer of Love) 개봉 첫날 첫회를 소호의 한 극장에서 보고 난 뒤였다. 같은 날 런던 시내의 다른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친구는 객석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고 했다. 에든버러영화제에서는 최고상을 받았고, 토론토영화제에서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 배급업자들이 경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이 작은 영화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친한 사람들끼리만 소중한 비밀을 나누듯이 그렇게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사랑의 여름>은 두 소녀가 함께 보낸 여름에 대한 이야기다. 펍을 운영하던 모나의 어머니는 죽었고, 10파운드를 주고 엔진이 없는 오토바이를 산 모나는 16살의 여름, 심심하고 무료하고 짜증이 나 있다. 탐신은 그 변두리 타운 근처에 여름 별장을 가진 상류층 소녀. 여름 한철을 거의 혼자서 그곳에서 승마를 하고 테니스를 치면서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두 소녀의 우연한 만남은, 이 지루하고 고요한 여름을 흥분과 사랑과 분노로 달아오르게 한다.

두 소녀 역을 맡은 내털리 프레스와 에밀리 블런트는 이전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배우들. 두 여배우의 뛰어난 연기는 감독 파블리코프스키의 즉흥 연기연출 속에서, 두 소녀, 모나와 탐신을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인물들로 살려내고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또 한 인물, 두 소녀의 관계 속에서 느슨하게 연결되는 인물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개종한 전과자이자 모나의 오빠인 필. 그를 연기한 배우는 감독의 전작 <라스트 리조트>에도 출연한 패디 콘시딘으로, 올해 주목받은 또 다른 영국 인디영화 <사자의 신발>(Deadman's Shoes)에서 무시무시한 복수의 주인공을 연기해서 올해 영국영화의 유망주로 떠오른 배우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어떻게 보면 사악하게까지 보이는 이 배우의 개성과 존재감은 화면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사랑의 여름>은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세 번째 영화. 폴란드에서 태어나 15살에 영국으로 건너온 그는 에서 다큐멘터리영화들을 만들며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명백한 폴란드 출신인 그가 어떻게 영국 감독이고, 그가 만든 영화가 어떻게 영국영화냐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멋진 영화를 ‘영국에서’ 만드는 감독이 있다는 데 대한 기쁨과 자부심을 더 크게 느낀다. <사랑의 여름>에서 그려내는 영국 요크셔 지방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풍광에 경탄하면서 말이다.

파블리코프스키의 두 번째 영화 <라스트 리조트>는 TV용으로 만들어졌지만, 너무 잘 만들어진 탓(?)에 극장에서 개봉됐고, 그 역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개성있고 재능있는 감독으로서의 인지도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영국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날아온 러시아 여인의 이야기인 <라스트 리조트>는 영국의 현재 가장 민감한 이슈인 난민문제를 다루면서도, 다소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공간의 느낌들과 인상적인 감정의 순간들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정치적 이슈를 개인들의 절박한 운명과 감정들로 선뜻 와닿게 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사랑의 여름>에서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그런 이슈들을 떠나서 더욱 자기 완결적인 문학적인 인상의 공간을 여름, 요크셔의 풍광 속에 만들어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저 햇살과 공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순간, 탐신이 모나에게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모나의 대답.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서,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애들을 여럿 낳고, 그 다음에는 폐경기나 암 뭐 이런 걸 기다리게 되겠지.” 신랄하고 유머스러한 미래다. 그렇지만 이 영화로 영국의 대표적인 신예로 부상한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미래는 아마 그보다는 훨씬 덜 신랄하고 아주 많이 풍요로울 것 같다. 그의 다음 영화에서 우리는 그가 단지 뛰어난 영국 감독이 아니라 뛰어난 세계적인 감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여름을 놓치지 말자.

독일영화의 새로운 희망

오스카 뢸러 감독의 <아그네스와 그 형들>

1959년생으로 자신의 모친인 여류 소설가 한나 플란데스의 전기영화 <언터처블>(2000)을 통해 독일 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오스카 뢸러 감독. 그해 이 작품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당시 집행위원장이 경질되었다는 풍문이 떠돌 정도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뢸러 감독이 신작 <아그네스와 그 형들>(Agnes und seine Bruder)로 마침내 자타가 공인하는 독일 영화계의 희망으로 부상했다.

안톤 체호프 작 <세 자매>의 남성 버전이라 할 <아그네스와 그 형들>은 베르너, 한스-요르크, 아그네스라는 3형제가 주인공이다. 권위적이고 무자비한 무기수집광 아버지 밑에서 자란 3형제는 혹독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몸부림치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하고, 절망만 더해갈 뿐이다.

맏아들 베르너는 녹색당 소속 정치가로, 알루미늄 깡통회수법안의 유럽의회 통과를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열혈 환경운동가다. 그러나 깡통과의 전쟁뿐만 아니라 아내와 ‘장미의 전쟁’을 벌이느라 심신이 고달프다. 겉만 멀쩡할 뿐 속은 피폐하고 무력하며 자신감마저 상실한 애처로운 독일 중년 남성의 표상이다. 둘째 한스-요르크(<엑스페리먼트>의 모리츠 블라입트르)의 상황은 더욱 가관이다. 알코올 중독에 섹스 중독 증세까지 보이는 그의 일터가 하필이면 쭉쭉빵빵 몸짱들로 가득한 도서관이다. 성적 욕구를 누를 길 없어 여자화장실 벽 구멍 틈새로 몸짱들의 속살을 훔쳐보다 발각되어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몽유병에 동성애자인 막내는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나름대로 희망을 찾았다. 이름도 여자처럼 아그네스로 바꿨다. 결혼을 약속한 상대에게 버림받는 실연의 아픔을 겪었지만 디스코텍의 고고 댄서로 일하며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연인이라고 믿었던 무식한 막노동꾼에게 또다시 버림받고 만다.

뢸러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독창적이다 못해 기괴하게 보이는 선글라스. 그 선글라스만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독창적이고 기괴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뢸러 감독은 한동안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장르 시도로 재능을 “마구”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그네스와 그 형들>은 그간의 방황, 또는 좌충우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이 작품은 장르와 스타일이 전혀 다른 단편영화 3편을 모아놓은 옴니버스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사회비판적 코미디라 할 맏형 베르너의 이야기, 리얼리즘 드라마의 정수 같은 둘째 한스-요르크의 이야기, 그리고 가슴저린 멜로드라마의 전형인 막내 아그네스의 이야기가 괴물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3형제의 상처라는 고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 얽히고 녹아든다.

대도시 서브컬처를 섬세하게 담아내는 영상과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소외된 자들의 삶을 극단까지 파헤치는 스타일로 “제2의 파스빈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뢸러 감독. 올해 44살인 그에게 “제2의 파스빈더”라는 명예는 지나치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비교가 잘못된 것만은 아닌 게 파스빈더도 뢸러도 자신이 믿는 바를, 자신의 시각을 용기있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뚝심있는 감독들이기 때문이다.

2000년 <언터처블>로 독일 영화계가 뢸러 감독을 환호했을 때만 해도 그가 독일영화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평가를 의심하는 목소리들이 간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체적으로 이 평가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감독 데뷔 뒤 반항아적 기질로 일관해왔던 뢸러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여전히 독창적이고 불편할 정도로 극단적이지만, 극중 인물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애틋한 마음, 내던지고 싶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희망이 묻어나는 영화. 2004년 독일 강추영화 <아그네스와 그 형들>이다.